올해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크리스마스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예년의 경우 메모리 업계는 겨울방학특수에 대비한 PC업체들의 메모리 선주문으로 이른바 크리스마스 효과를 누려왔지만 올해는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인해 썰렁한 겨울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메모리 업체들은 9, 10월께 PC증산에 착수하는 PC업체들로부터 메모리 추가주문을 받아왔다. 그런데 올들어 추가주문을 받은 메모리 업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인 산업경기 침체로 올해 PC공급 대수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데다 9·11 미국 테러참사사건 등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특수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급불균형과 수요미흡으로 촉발된 메모리 가격하락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인텔과 AMD의 CPU 가격경쟁도 수요촉발은커녕 소비자로 하여금 PC 구매시기를 미루게 만들어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8월에만 하더라도 메모리 가격은 제조업체의 감산노력, 겨울방학 PC특수, 윈도XP 등장 등으로 인해 9월말 또는 10월초부터 다소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9월들어 가격하락이 저지되고 수요도 되살아났다.
그런데 느닷없는 미국 테러참사사건은 복병으로 등장했다. 또 PC제조업체들을 통해 소개된 윈도XP도 소비자로부터 기대 이하의 반응을 보이면서 메모리 가격 반등시기는 내년이나 돼야 가늠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산업협회(SIA)의 조지 스칼리스 회장은 “미국 테러사태로 반도체 산업의 회복이 지연될 것이며 당초 올 4분기에 5% 정도 예상되던 반도체 시장성장률은 1% 미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리먼브러더스의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댄 나일스 역시 “새로운 악재돌출과 윈도XP의 인기저조 등으로 V자형으로 예상됐던 반도체 시장 회복패턴은 U자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메모리를 포함한 전세계 반도체 시장은 연간 최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4분기를 맞아서도 3분기 상황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전망이다. 4분기 시황이 오히려 3분기보다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아이서플라이는 “올해 비트 수요 성장률은 36%로 예상되는 반면 비트 공급 성장률은 55%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이미 초과공급된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며 “메모리 평균판매가격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으며 수급균형은 내년 4분기 이전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아이서플라이는 올해 D램 매출이 사상 최악인 67% 감소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예상도 상당수 업체들의 감산과 투자축소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SD램 현물가는 테러사태 발생후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15일 현재 테러 이전보다 평균 5∼7% 하락하는 등 진정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산업경기 호조로 구매심리가 활성화할 경우 메모리를 비롯한 주요 부품의 가격하락은 PC수요촉발에 따른 호재로 작용할 수 있으나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경기불황, 수급불균형, 가격하락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시장상황에서는 새로운 PC수요 또는 업그레이드 수요를 촉발하기 어렵고 더 싼값에 PC를 구입하기 위해 PC구입시기를 늦추는 경향을 부추겨 결국에는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이달초 발생한 128Mb D램과 256Mb D램의 ‘비트크로스(bit cross.인물면 용어해설 참조)’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예년의 경우 비트크로스가 발생하면 1∼2분기가 지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메모리 가격도 오른다.
물론 수요가 꾸준했던 예년과 PC수요가 마이너스인 올해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업계는 비트크로스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는 훈풍이 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