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인생을 생각하고, 사랑의 추억에 잠겨 보고···. 그러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면 이런 책을 한번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 이 책은 30대 이상에게만 줘야 한다.
10대나 20대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가는 ‘이게 뭐야’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꺼벙이’ ‘도깨비감투’ ‘두심이 표류기’ ‘5학년 5반 3총사’ ‘로봇 찌빠’ 등등.
30대들에게 이 만화 제목들은 옛 추억이다.
바다출판사는 최근 한국 어린이 만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엄선한 ‘바다 어린이만화’ 시리즈의 일환으로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감투’,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 박수동의 ‘5학년 5반 삼총사’, 김소진의 ‘로봇찌빠’ 등의 작품을 다시 출간했다.
바다출판사는 이들 작품 외에도 이희재의 ‘악동이’, 김동화의 ‘요정 핑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70년대 한국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 명랑만화들은 우리만의 독특한 그림체와 정서로 당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색상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만화영화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이 만화책들을 보면 재미없다며 당장 손에서 놓고 말겠지만 과거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이들 만화는 어떤 것보다 소중한 추억의 선물이 될 법하다.
기계충 파먹은 머리의 꺼벙이는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훈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장난과 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온갖 말썽을 일으키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당시 어린이들의 자화상이었다.
또 머리에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으로 변해 어른 악당들을 물리치던 도깨비감투도 어린아이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주며 인기를 끌었다.
‘로봇찌빠’는 조금은 로봇답지 않게 덜 떨어진 로봇 찌빠가 팔팔이라는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겪게 되는 생활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그리고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지만 마음만은 ‘천사표’인 풋고추, 칠떡이, 뚝배기 등 5학년5반 삼총사, 세계여행을 떠나는 천방지축 두심이와 꼴지, 꼴방이. 이들을 다시 만나보는 것은 수십년간 헤어졌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다.
지금 서점에 가서 이 책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몇권을 손에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자. 마음 가득 아련한 옛 추억을 안고서.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