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우리는 사이버 戰場 누비는 `386 쌈장`

 ‘술, 담배, 고스톱, 포커, 골프….’

 “이제 뭐 색다른 것 없을까?”

 인생이라는 고개의 정상을 넘어선 불혹의 나이, 우리 시대의 중년은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술, 담배는 몸을 생각하니 걱정이 따르고 고스톱을 치거나 바둑 한판을 두고 싶어도 파트너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골프를 치러 나가자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 방안에 누워 TV를 벗삼는 것뿐.

 하지만 생각을 바꿔 집안 한구석에 외로이 놓여 있는 컴퓨터를 켜본다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게임, 영화, 음악, 전자책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사이버공간은 이미 디지털시대의 테마파크로 자리잡은 지 오래. 그 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은 최근 세대를 뛰어넘는 레저문화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발빠른 30∼40대들은 대부분의 중년들이 휴일마다 소파를 벗삼아 TV 속을 헤매는 동안 이미 한게임, 엠게임, 위게임 등에서 고스톱과 바둑을 즐기며 여가를 보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만나 네티즌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기도 하고 온라인게임 속의 캐릭터를 이용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타크래프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리니지, 포트리스2 등 10대 게임 마니아들이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 게임 랭킹 부문에서도 최근 상위권에 올라서며 프로게이머 못지 않은 기량을 갖춘 386세대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총무처 소속의 교도관 곽동근씨(42)는 디지털시대를 대표하는 중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PC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동호회인 ‘BGM’ 클랜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곽씨는 낮에는 미결수들을 호송하는 엄중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밤이 되면 ‘에이지’ 게임의 네트워크 대전을 펼치는 MSN(http://www.msn.co.kr) 사이트를 호령하는 전사로 변신한다.

 불혹을 넘긴 곽씨가 게임을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전국에 PC방 열풍이 몰아칠 무렵, 곽씨는 PC방이라는 곳이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 집 근처 PC방에 우연히 들른 것이 계기가 돼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

 곽씨는 그곳에서 처음 접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 이내 매료됐고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에이지’ 동호인들을 모아 ‘BGM’이란 길드까지 구성했다.

 고된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클랜 홈페이지(http://www.bgm.pe.kr)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하는 곽씨는 “게임은 더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유달리 강조했다.

 ‘헬브레스’를 즐기는 강영훈씨(34)는 아내와 함께 게임을 즐기며 부부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케이스다.

 베타테스트 때부터 헬브레스를 즐겼다는 강씨는 올해 여름 장마 때는 집에 물이 찬 것도 모르고 게임을 즐기다가 급하게 게임에 접속한 아내가 ‘집나간 청바지님을 찾습니다’라는 애처로운 글을 보고 집에 달려갔을 정도로 헬브레스에 빠져있다.

 강씨는 “게임을 하다 보면 상당수 유저들이 실제 생활과 혼동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는데 게임은 단지 취미생활로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아내와 함께 키워온 캐릭을 3살바기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라며 ‘헬브레스’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에 빠져 수년간 준비해온 고시공부를 버리고 게임세계에 몸을 던진 386세대도 있다.

 화제의 주인공인 양경호씨(35)는 지난 95년 대학 졸업 후 줄곧 사법시험, 법무사시험 등에 전념하던 고시생. 양씨는 고시원 지하의 게임방에 머리를 식히러 들렀다가 우연히 포트리스2를 배운 것이 계기가 이제는 수험서를 던져버리고 PC방 경영에 나선 행동파다.

 현재 포트리스 최고계급인 금왕관에 오른 양씨는 게임동호회까지 운영하며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무려 88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어 ‘국민게임’으로 통하는 ‘포트리스2 블루’의 금왕관은 알파, 베타, 감마 등 3개의 서버에 각각 1명씩만 있다. 한 마디로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 외엔 하루종일 게임만 해야 할 정도.

 이에 대해 양씨는 “나는 게임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게임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양씨의 올해 목표는 동호회 동료들과 함께 정식 프로게이머로 변신하는 것. 그는 “포트리스2 게임이 세계로 널리 퍼져 외국인들과 당당히 겨뤄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게임이 컴퓨터와 익숙하지 않은 30∼40대에게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전국 곳곳에 산재한 2만5000여개 PC방의 공이 크다. 그리고 마니아 중심의 어려운 게임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이 출시되고 있는 것도 게임 유저층이 확대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술, 담배, 고스톱 등 전형적인 오프라인 성인문화에 익숙한 30∼40대 중년의 게임바람이 우리 성인 놀이문화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