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보다는 겨울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11월, 몸과 마음이 함께 추워지는 계절이다.
추위를 녹이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안방이나 거실에 앉아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나 잔잔한 감동을 주는 비디오를 보는 것이 제격이다.
11월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비디오 세 편이 선보인다.
러시아 혁명 전후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섬세한 감성을 지닌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가 겪는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그린 추억의 명작 ‘닥터 지바고’와 취향이 전혀 다른 남녀가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프랑스 멜로영화 ‘타인의 취향’, 그리고 섹시스타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멕시칸’.
‘타인의 취향’은 프랑스 세자르상 4개 부문을 휩쓴 작품. 카스텔라는 탄탄한 사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자기식대로 하려는 부인의 타박에 시달리는 처량한 신세다.
그는 부인의 손에 이끌려 조카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갔다가 영어 개인교사 클래라를 무대에서 발견한다.
카스텔라는 클래라에게 반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장과 전람회장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아끼던 콧수염까지 밀어버리지만 클래라의 태도는 쌀쌀하기만 하다.
‘닥터 지바고’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명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러시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아카데미 각본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오마 샤리프가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로 분해 섬세한 감성과 순결한 지성의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하는 복잡한 심정을 뛰어난 연기로 잘 보여준다.
‘멕시칸’은 심장 문양이 새겨진 값비싼 권총 ‘멕시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액션이 뒤섞인 로맨틱 코미디물. 제리(브래드 피트)는 마피아에 잡혀 있는 심부름꾼으로 ‘멕시칸’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의 애인 사만다(줄리아 로버츠)는 제리를 만류하다가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멕시칸은 한마디로 장르를 구분하기 어렵다. 마피아의 총잡이가 등장해 피를 튀기는가 하면 좌충우돌하는 제리의 천진스러운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진실은 무엇일까에 대한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최근 한국영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 장안의 화제가 됐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세이 예스’도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전지현·차태현 주연으로 올 여름 전국 50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엽기적인 그녀’는 순진한 복학생 견우(차태현)와 엽기녀(전지현)의 황당한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견우는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채 대자로 뻗어버린 ‘그녀’의 남자친구로 오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업고 여관까지 가게 된다. ‘소나기’ ‘터미네이터’ 등을 패러디한 영화 속 영화도 배꼽을 쥐게 한다.
‘세이 예스’는 박중훈이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잔인한 살인마로 연기 변신한 작품.
정현(김주혁)과 윤희(추상미)는 결혼 1주년을 맞아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휴게소에서 마주친 정체불명의 사나이 M(박중훈)을 차로 들이받는 바람에 그의 마수에 걸려들어 결혼기념여행은 악몽의 여정으로 바뀌게 된다.
액션물로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진주만’과 자동차 경주를 다룬 스포츠 액션 ‘드리븐’,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액션 ‘에볼루션’이 볼 만하다.
‘진주만’은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방대한 스케일로 화제가 됐던 작품.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빨래가 펄럭이고 마을 한켠에서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놀던 어느날 어디선가 빨간 원이 그려진 비행기들이 날아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은 일본 전투기로 뒤덮이고 지상의 낙원 하와이가 불길에 휩싸인다. 이곳에 있던 젊은이들은의 운명도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드리븐’은 드라이버의 지존을 뽑는 CART(Championship Auto Racing Teams) 월드 시리즈를 무대로 스피드에 목숨을 거는 레이서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
‘에볼루션’은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유성 속에 에이리언이 함께 딸려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하게 그렸다. 대학 지질학과 교수 캐인(데이비드 듀코브니)과 동료 해리(올란도 존슨)는 사막에 떨어진 운석에서 하루 만에 진화하는 에일리언을 발견한다. 그러나 정부가 지질학자 알리슨(줄리언 무어)을 주축으로 한 유성탐사팀을 파견하자 캐인 일행은 이들과 사사건건 대립한다.
애니메이션 장르에서는 월트디즈니의 간판 작품인 ‘백설공주’와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별주부 해로’ ‘콘체르토’가 돋보인다. 세 편의 애니메이션은 제각각 특색을 갖고 있다. ‘백설공주’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
‘별주부 해로’는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으로 전래 동화 ‘별주부전’을 현대적 감각을 살려 각색했다. 바닷속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에 나온 거북이(해로)가 토끼(토레미)를 꾀어내 용궁으로 데려오는 것까지는 원작과 같다.
왕의 자리를 노리는 곰치와 상어의 음모, 친구에게 ‘왕따’당하는 토레미의 사연, 신비의 열매를 찾기 위해 숲속 친구들과 펼치는 모험 등은 새롭게 추가된 에피소드다.
‘콘체르토’는 본격 성인 애니메이션물. 천재라 불리우는 보이스 트레이너 장우민의 특별 레슨의 정체는 바로 섹스다. 장우민은 섹스를 하면서 내는 교성을 매력적인 목소리로 완성해 나간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