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 -장 그르니에 지음 -민음사 펴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 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 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메모:봄날이 가듯 가을이 가고 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내달려 온 이들도 잠시잠깐 가을의 옷자락에 몸을 숨기고픈 시간이다. 경쟁사회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보다 먼저, 빨리, 부지런히 뛰어오다보니 숨이 가쁘고, 행여 외톨박이가 되지 않을까 남들에게 신경을 쓰다보니 자신은 찾을 길이 없어진 이들. 온통 허섭스레기로 가득한 마음의 곳간을 차마 열어볼 수 없어 문 앞에서 뒤돌아서 버린 이들은 없는지.
시대의 흐름에 반기를 들듯 ‘느림의 미학’이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의 시대, 속도의 시대에 치여버린 이들이 적지 않다. 잠시도 멈춰 설 수 없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기엔 너무 불안한, 그러나 여유가 없더라도 뒤죽박죽 처박아 놓았던 온갖 느낌과 생각을 갈무리해둘 시간만은 가져야 할 시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2001년이라는 한해도 두 달여가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에 쫓기며 허둥지둥 2002년도로 몸을 의탁하기 전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엉클어진 생각 속에 길을 내어 설익은 감정을 떨구며 갈피를 잡아나갈 때다.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을 때에.
그렇다면 바람이 더 차지기 전, 길을 나서보는 것이 어떨는지. 마음의 결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비바람에 얼룩진 마음의 창을 말갛게 닦아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는지. 시야에 가득 잡혀 들어오는 풍경 속을 기웃거리며 소풍을 가듯 그리움에 아려오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마음의 옷깃을 여미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쩌면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독한 산보자’의 꿈이, 희망이 깃들 수 있는 그런 빈 자리를.
<양혜경기자 hk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