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방송시대를 연다>(하)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정부와 방송사들의 디지털방송 추진과제

 

 디지털방송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나 방송사 어느 한곳에서만 잘 해 나간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게 방송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부와 방송사, 그리고 가전 및 방송장비 업체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비로소 상업적인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는 지난해 디지털방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와 방송사, 가전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디지털방송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회의를 거듭한 결과 올해 초 ‘지상파TV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이 계획의 기본 골자는 디지털방송 전환의 가장 핵심사항이라 할 수 있는 전환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와 전문인력 양성, 시청자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향후 10연간 2조원 이상이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전환자금 마련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방송위는 지상파TV방송의 디지털전환 비용은 해당 방송사에서 자체수입으로 조달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필요한 경우 방송위원회와 정부 관계부처에서 정책적인 지원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실질적인 지원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상당히 공허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디지털방송 전환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KBS는 시청료 수입으로 운영돼 왔고 MBC와 SBS 등 상업방송은 광고료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새롭게 추가되는 디지털 전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청료를 올리거나 광고료를 인상해야 한다.

 시청료와 광고료 인상은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할 경우 국민과 기업의 반발이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KBS의 경우 본방송 실시가 코앞에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료를 언제부터 얼마나 인상하겠다는 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상업방송사들도 광고료를 인상하고 싶어도 민영 미디어렙이 설립돼 여기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여야간 대립으로 미디어렙 설립이 표류하면서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정부의 디지털방송 계획에 잇따라 본방송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억지춘향식으로 마지 못해 본방송을 실시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방송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 내에 디지털 전환자금을 확보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80년대 컬러TV방송을 시작으로 컬러TV수상기 등 관련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경제대책회의가 열렸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디지털방송을 통해 내수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디지털방송을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구성된 디지털방송추진위원회를 통해 디지털방송장비 수입시 관세감면을 해주기로 한 것이나 가전업체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협찬을 해주기로 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방송 관련 홍보와 붐을 조성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디지털방송이 갖는 엄청난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주도 아래 정치권과 국민이 하나로 뜻을 모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의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송위가 정부기관이나 국회에 대해 큰 소리 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협조를 요청하는 차원에 그치는 바람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송위의 위상이 격상되거나 정부당국과 국회에서 디지털방송의 중요성을 인식, 범정부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지원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송사의 경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동안 각기 수백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해 디지털방송 본방송을 준비해 왔고 예정대로 올해안에 방송3사가 모두 본방송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나름대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방송계 안팎의 지적이다.

 KBS의 경우 정치권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디지털방송 추진계획을 밝히고 시청료 인상안을 내놓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하며 나머지 상업방송사들도 광고료 인상에 앞서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노력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방송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방송계에서는 방송사들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직원 재교육과 전문인력 채용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 경비절감과 새로운 신규사업 개발 등 수익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송사에서 이러한 자구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시청료나 광고료 인상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