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년간 지자체 정보화예산 현황. 정보화예산 편성절차.
“도저히 불가능하다. 일반사업에 포함된 정보화예산까지 따지면 한해 수천개에 달하는 정보화사업의 예상 지출규모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도는 해봤지만 팀 직원들 전체가 일년내내 매달려도 못한다는 판단에 포기해 버렸다.”
기획예산처 정보화예산팀 관계자의 고백이다.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적어도 정보화 부문의 국가재정 관리는 낙제점에 가깝다. 한해 정보화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는 국고에서 빠져나가는 일반예산과 기금만을, 각 중앙부처는 자신들에게 배정된 정보화예산만을 알뿐이다. 중앙부처의 소관 정보화사업이라도 해당 지자체나 민간의 출연예산이 합해질 경우 이를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다. 아래로 내려가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광역시나 도에 속한 기초단체의 정보화 예산은 글자 그대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특히 대부분 독자적인 정보화 사업으로 기획되지 않는 한 정보화예산은 전체 사업비에 묻히고 만다. 지난해부터 기획예산처·정보통신부가 선진국 수준인 재정대비 1% 이상을 정보화예산으로 책정했다지만 실상을 끄집어 내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그래서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다 실제 집행이 예산대로 되는지는 아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정부 최대 역점과제 가운데 하나였던 지식정보강국 구현이라는 자찬이 무색한 상황이다. 사실 모든 경제주체를 막론하고 제대로 된 살림살이는 예산에서 출발하는 법. 집행·관리는 고사하고, 한해 지출규모가 얼마나 될지를 예상조차 못한다면 국가정보화 전략은 단순한 탁상지표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현실감 있다. 정보화예산을 둘러싼 실태를 짚어본다.
◇오리무중 지방비·민자=지난해 교육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가 국비·지방비·민자를 합해 책정한 예산은 4512억원. 기획예산처나 정보화추진위 실무 부처인 정통부가 현재 파악하는 공식 수치다. 하지만 교육부 정보화예산 담당관의 말은 다르다. 지난해 전체 교육정보화 예산은 무려 7685억원. 올해도 분과위의 예산은 1899억원에 불과하지만 교육부는 1조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산상의 차이에 대해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당초 2002년까지 예정됐던 교육정보화사업을 앞당겨 시행하느라 예산이 늘었다”는 게 예산처 관계자의 해명이다. 또한 갑자기 늘어난 예산도 대부분 지방비와 민자로 조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실 우리도 정확히 집계하기 힘든 전체 교육정보화 예산을 예산처나 정통부가 알기란 쉽지 않다”면서 “이같은 예산규모도 일일이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수차례 요청을 통해 알아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자체 집계가 정확한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지방 시도교육청의 예산과목 코드이 제각각일뿐더러 일년에도 수십번씩 예산항목간에 이월·전용이 이뤄진다. 지방청의 조직개편에 따른 사업주관도 수시로 바뀐다. 계속사업의 경우 타격이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일반사업에 정보화가 포함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특히 지방청의 예산회기 기준은 매년 2월로 연말인 중앙부처와 달라 당해 년도 정보화 예산을 알려면 다음해 말에 가서야 파악이 가능하다. 교육부가 올해 전체 정보화예산을 ‘추정’만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자체 정보화사업과 직접 연계하고 있는 행자부의 경우 지방비·민자 예산 규모는 아예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국고 예산은 알 수 있지만 역시 지방비·민자 규모를 모르기 때문이다. 행자부 자치정보화담당관실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지방비가 대부분이지만 국고외에 기금을 따내는 경우도 있다”면서 “공문을 내서 파악을 할 수도 있지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내년도 전체 지자체 정보화예산은 내년 상반기에도 알기 어렵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명이다. 비록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데이터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예산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광역지자체별 정보화예산을 근본적으로 밝힐 수 없는 이유는 엄청난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심지어 일부 지자체의 경우 기획당시 예산과 실제 예산이 50% 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행자부가 집계한 올해 전체 지자체 정보화예산인 6624억원도 실제로는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기획예산처가 정보화예산팀을 별도로 꾸린 지난해 이후 중앙부처만이 정보화예산 항목을 공식 분리했고, 지자체들은 아예 예산서에 ‘정보화’ 부문이 없다. 서울시 정보화담당관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만 집계할뿐 정보화예산 계정은 없다”면서 “시 전체의 정보화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파악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자가 다수 포함되는 경우 비록 사업주관은 중앙부처라도 파악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복지부의 경우 올해 국고에서 60억여원의 정보화예산을 책정받았지만, 전체 예산규모는 350억원 정도로 추정만할뿐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건강보험공단 등 산하기관이 실제 추진하는 정보화사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식 주관사업이라도 산하기관의 정보화예산은 통제는 물론이고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실은 정부사업으로 분류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한 부처가 굵직한 단위사업을 다수 수행할 때 사업별 예산을 전체적으로 집계하기도 어렵다. 지방청을 포함, 상당액의 민자가 출연되는 건교부가 단적인 사례다. 건교부 정보화예산 담당자는 “현재 부서내에서 17∼18개 정도의 대규모 정보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지방비나 민자의 예산현황은 집행부서가 파악, 관리한다”고 말했다.
◇허술한 관리체계=정보화예산을 둘러싼 이같은 실태는 결국 엉성한 관리체계에서 기인한다. 재정에서 정보화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국가적인 중요성이 점증하면서 예산처는 지난해부터 정보화예산팀을 신설,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 각 부처에서 올리는 정보화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 중복투자를 막는 등 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위해서다. 하지만 타 부처와 관계기관들의 협조가 없는 한 한계는 뚜렷하다. 학계·연구소 등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정보화예산심의반을 비상설적으로 구성하고는 있지만, 6월께 제출되는 각 부처 정보화사업을 두달여만에 심의해 내년도 정보화예산에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심의반에 참여했던 중앙대 행정학과 김동환 교수는 “각 부처의 정보화사업을 제대로 심사해 중복투자를 막자는 취지였지만 사실 모든 정보화사업을 훑어 보기도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나마 각 부처가 차기년도 정보화계획을 먼저 수립한 뒤 예산을 편성하던 관행이 시행계획과 연계한 예산 반영으로 바뀐 것도 올 들어서다. 여기다 예산처도 사업명칭에 ‘정보화’가 포함되지 않으면 일반사업예산으로 편성한다. 예산편성이 이런 실정이니 결산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산처는 지난해 7개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11개 분야 60여개 주요사업을 한국전산원 등과 공동 평가했지만, 사업단위별 접근에 그쳤다. 결국 대다수 정보화사업의 결산은 해당 부처에 맡길 수밖에 없고, 감사원도 총액 개념의 정보화예산 평가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이 관리하고 있는 정보화촉진기금은 성격상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힘들다. 기획단계에서는 책정됐다가 본 사업에서는 빠지기도, 추가되기도 한다. 실제 배정과 집행시기가 다를 우려도 있다. 연구진흥원 관계자는 “국고 통장에서 빠져나간 때를 집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금을 받는 주관기관의 집행여부는 실시간 파악이 안된다”고 말했다.
◇개선방안=클린턴 행정부 시절 부처별 최고정보책임자(CIO) 협의회를 구성했던 미국은 행정단위별 정보화사업의 폐해를 이미 경험했다. 지금은 전 부처의 예산을 관할하는 관리예산처(OMB)가 부처별 정보화사업을 코드화, 일괄 관리하면서 기획-편성-집행-평가-개혁을 연계하는 예산사이클을 구현하고 있다. 한국전산원 서삼영 원장은 “모든 정보화사업은 성과와 기대효과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 투입대비 산출효과를 낼 수 있도록 예산과 평가를 연계할 때가 왔다”면서 “특히 이제는 정부부문의 개별 단위사업을 늘리기보다는 유사 단위별로 묶어 예산배정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별 소요예산 책정에서 성과주의 예산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정보화전략 추진체계의 재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유니텔 강세호 사장은 “국가정보화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는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부처별·사업별 정보화사업은 비효율적인 예산편성 관행을 거듭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청와대 내에 국가CIO(NCIO)를 임명해 부처간 조율과 국가정보화 전략을 재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모든 정보화사업을 코드화해서 집행과 관리·평가가 면밀히 수행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회계제도도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