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식 집계하는 올해 우리나라 정보화예산은 정보화촉진기금을 포함할 경우 2조4000억원. 총 재정규모 대비 정보화예산 비율은 2.3%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선진국 수준인 1%대를 훨씬 웃돈다. 지식정보 강국을 향한 국가적 차원의 의지이자, 정보기술(IT)산업이 미래 국가산업생산성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비전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국가 재정, 특히 예산측면에서만 보자면 ‘정보화’가 독립적으로 취급돼 온 것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 불과하다. 지난 96년 범국가적인 정보화 밑그림인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예산의 편성-집행-관리에 이르는 체계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도 중앙정부가 정보화예산 항목을 공식적으로 별도 집계한 시기는 기획예산처 출범 이후인 지난해부터다.
국가정보화를 고민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난 5년여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새로운 정보화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인프라를 근간으로 소프트웨어(SW)와 삶의 질, 활용, 부가가치 창출, 복지로 국가적인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화예산의 효율적인 집행관리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 정보화예산이 과연 어떤 식으로 편성되고 어디에 쓰였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새천년 정보화대계를 제대로 그리기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일반예산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일반예산으로 편성된 정보화예산은 총 4조1586억원. 매년 평균 1조여원의 예산이 국고에서 배정됐다. 지난해부터 기획예산처는 △정보인프라 확충 △전자정부 구현 △사회 각 부문 정보화 △정보화 역기능 해소 등 크게 4개 부문으로 정보화 용처를 대분류해 왔다. 98∼99년의 경우 이미 편성·집행됐던 정보화예산을 역추산을 통해 재분류했다.
본지가 기획예산처의 4대 대분류를 바탕으로 한국전산원에 의뢰, 중분류를 다시 시도한 결과 기준에 따른 뚜렷한 용처 차이를 드러냈다.
지난 4년 동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분야는 정부공공부문의 정보화사업인 전자정부 구현 항목이다. 총 1조6122억원이 투입돼 민원행정서비스 및 행정능률효율화를 위해 쓰였다. 전체 정보화 살림살이의 38.8%에 달하는 지출이 정부부문의 정보화에 지출된 셈이다. 이어 초고속통신망·정보통신산업기반·정보화촉진·전자상거래활성화 등 정보인프라 확충 부문이 1조1351억원으로 27.3%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교육·토지·환경·문화·산업·농림·보건 등 사회 각 부문 정보화는 8938억원(21.5%), 정보격차완화·해킹방지 등 역기능 해소 부문이 5174억원(12.4%)에 그쳤다.
대분류별 세부 용처에서는 더욱 특징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가장 높은 비중이었던 전자정부 구현에서도 대민행정서비스 분야는 4053억원에 머문 반면, 공공부문 업무 효율화인 행정능률성 향상에는 1조2068억원이나 투입됐다. 전자정부라는 구호가 일반 국민에게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예산편성이었던 셈이다. 정보인프라 확충 부문에서는 예상대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이 5483억원으로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반면 전자상거래 활성화는 지난 4년 동안 총 629억원이 투입돼 정보인프라 전체적으로 5% 정도에 불과했다. 사회정보화에서는 부문별로 비교적 고른 예산편성을 엿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환경·과학기술, 문화관광, 농림·해양수산, 보건복지 등이 4년 동안 1000억원에도 못미쳐 일반 정보화예산 측면에서는 푸대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화관광의 경우 4년 동안 89억여원, 보건복지 부문은 43억여원으로 각각 매년 평균 20억여원, 10억여원 국고가 편성되는 데 그쳤다. 사회정보화예산 실태를 보면 ‘민생’ ‘삶의 질’과 직결되는 부문이 소홀히 다뤄진 셈이다. 지난 4년 동안 5174억원이 편성된 정보화 역기능 해소 부문은 해킹·바이러스 방지 등 국가적인 차원의 정보보호 예산이 미미했다. 지난 4년 동안 462억원에 그쳐 갈수록 늘어나는 정보사회의 위험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지가 의문시됐다. 유니텔 강세호 사장은 “지난 5년간의 정보화전략은 인프라 확충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제는 정보통신기반 측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만큼 실제 국민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응용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예산의 무게가 실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보화촉진기금
지난 96년 정보화촉진기본법에 의해 신설된 정보화촉진기금은 일반 예산과는 별도 편성, 운용돼 왔지만 나름대로의 목적을 갖고 국가정보화에 투입돼 왔다. 지난 96년 2947억원이었던 기금은 올해 9329억원으로 매년 21.1%씩 증가해 왔다. 정보화촉진기금의 용처는 크게 4가지. 정보통신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표준화, 연구기반 조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역시 절대적인 비중은 기술개발(R&D) 부문이다. 기술개발에는 96년 기금의 전액이 배정됐고, 97년 4452억원, 98년 5855억원, 99년 6200억원, 2000년 5670억원이 각각 책정돼 매년 전체 기금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인력양성은 지난해까지 5년간 3082억원, 표준화는 725억원, 연구기반 조성은 874억원에 그쳤다. 기금이 기업체나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을 위한 출연·융자·투자에 집중되는 대신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투자나 기술표준화, 공동 연구시설 설립 등에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규모가 투입된 셈이다.
특히 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한 R&D 분야의 경우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융자지원 현황은 최근 5년간 국내 IT업계의 기술개발 현주소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지난 9월말 기준으로 96∼2001년의 분야별 기술개발 융자지원 실태를 보면 SW 기술이 404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통신시스템 기술 2500억원, 멀티미디어 기술 2104억원 순이었다. 이에 비해 정보보호 기술 256억원, 반도체 기술 478억원, 컴퓨터 및 주변기기 기술 636억원, 데이터베이스(DB) 기술 646억원, 전파방송 기술 784억원 등으로 비교적 민간 지원규모가 적었다. 촉진기금 융자의 경우 기업들의 전반적인 자금사정과 무관하지 않지만 대체로 매년 수십∼수백억원이 분야별 기술개발에 투입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R&D 분야의 기금 활용이 이제는 백화점식 지원보다 ‘선택과 집중’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한다. 한국전산원 서삼영 원장은 “5년, 10년을 내다보고 기반기술과 응용기술을 각각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특히 현재 우리가 강점을 지닌 분야와 향후 시장성을 감안해 필수적으로 보완해야 할 분야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비·민자·기타
국가 정보화예산 가운데는 일반예산과 정보화촉진기금을 제외하고도 매년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예산과 민간기업들이 출연하는 민자다. 그러나 지방비와 민자를 정확히 집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수많은 광역·기초 지자체와 일반 사업을 대상으로 정보화 부문만 별도로 추려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지방비와 민자 규모를 어느 정도 추산할 수 있는 잣대가 국무총리 산하 정보화추진위원회의 23개 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 예산이다. 전액 한국은행의 자체 예산과 민간 금융기관들의 출연예산으로 구성되는 금융정보화분과위원회를 제외할 경우 22개 분과위는 대부분 국비·지방비·민자로 정보화예산을 편성한다. 일례로 지역정보화분과위의 경우 지난해 2718억원의 예산 가운데 645억원을 국비(일반예산·기금)으로, 나머지 2072억원을 지방비로 조달했다. 교육정보화분과위는 지난해 4512억원의 예산 중 3262억원을 지방예산으로, 260억원을 민자출연으로 충당했고 나머지 989억원만이 국비였다. 사회간접자본(SOC)정보화분과위도 전체 2305억원의 예산 중 지방비와 민자가 1286억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처럼 지방비·민자로 출연되는 정보화예산은 특히 지역·안전관리·교육·문화·농림·산업·보건복지·산업인력·SOC 등에서 두드러진 비중을 나타낸다. 정부의 공식 정보화예산 집계에는 빠진 국방·공안·보안 관련 정보화예산도 정보화추진위원회 사업예산에는 드러난다. 전액 국비로만 충당되는 이들 분야에서 지난해 국방정보화는 3378억원, 공안분과 21억원, 보안분과 163억원을 각각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에 따라 국비(일반예산·정보화촉진기금)와 지방비·민자 등 모든 재원을 정보화예산으로 계산할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 정보화 살림살이 규모는 공식 발표와 달리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예산처는 기금 7000억원과 일반예산 1조2155억원으로 총 1조9155억원을 정보화예산으로 밝히고 있지만 여기에 기밀사항인 국방·공안·보안부문과 전액 민자인 금융부문, 자치단체의 독립 정보화예산을 합친 추정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