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테러사건 직후 한국통신 이상철 사장은 뉴욕의 정보통신업체에 편지를 보냈다. 느닷없는 사고로 인해 시설은 물론 인명피해를 당한 뉴욕지역의 정보통신업체에 대해 같은 정보통신업체로서의 위로와 격려의 서신이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미 한국통신에서도 비슷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뉴욕 정보통신업체의 심정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1994년 종로5가 통신구 화재와 2000년 여의도 통신구 화재를 통해 통신망 사고에 대한 심각성과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종로5가 통신구 화재 당시 한국통신에서 수행한 복구작업은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30만 회선 이상의 통신케이블이 불타는 대형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3일만에 복구를 완료,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신속하게 마무리되었지만, 현재 테러로 인한 뉴욕의 통신사고는 한동안 계속 되어야 한다는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이번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인한 정보통신산업의 피해에 대해 리서치업체 ‘컴퓨터 이코노믹스’에서는 60억달러 상당의 정보통신 인프라가 파괴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테러 직후 IT업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 정보통신업체들이 중단된 통신서비스를 재개하는 데에만 당장 17억달러와 2만5000명의 인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그 피해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보통신업체인 버라이즌은 이번 테러로 유선전화 회선 20만 회선과 데이터 회선 300만 회선이 손상됐다고 발표하고, 휴대전화 서비스 역시 기지국이 대거 파손된 데다 전력 부족 현상까지 겹쳐 불편현상이 한동안 이어졌다고 밝혔다.
은행과 증권사 같은 엔드유저(end-user:통신서비스 소비자) 업체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전망으로, 월가 금융기관들이 각종 전산 시스템과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선 약 81억달러를 쏟아 부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1993년 이번에 테러를 당한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6명이 사망하고, 천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해규모는 5억달러. 하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는 인명과 재산 피해 이상으로 큰 재앙이 뒤따랐다. 테러 발생 후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있던 350개 기업 중에서 150개 기업이 도산한 것이다. 단순한 폭발물 때문에 도산한 것이 아니라 폭발로 인해 전산시스템 및 통신망, 데이터베이스 등이 함께 유실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의 피해가 교훈이 되어 각 기업마다 백업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 이번 테러로 인한 건물 붕괴 시에도 데이터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정보통신의 시설이 파괴되는 순간 누군가가 정보통신 시설에 인위적인 테러를 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빈 라덴이 좀더 정보통신매체와 네트워크에 전문성을 가지고 첨단 정보통신 매체를 테러와 조직관리에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경제의 핵심이 되는 월스트리트의 각종 금융 데이터에, 아무도 없이 방치된 전산실과 백업 시스템에 계획적인 테러를 수행했다면 세계의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는 1996년 9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전자신문에 장편소설 ‘맨홀’을 연재 했었다. 1994년 발생한 종로5가 통신구 화재를 모델로, 그 사건에 인위성을 가미한 추리 소설이었다. 단순한 해킹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네트워크에 테러를 가하여 데이터를 변환시키고 가공하여 대규모의 돈을 인출하는 사건으로, 손가락 열개와 키보드 하나로 세상을 장악하고 평정하려는 한 젊은이의 야망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은행의 본점과 지점간 통신망에 사전에 모니터를 수행하여 거래 내역을 파악한 후 화재 직전에 지점 쪽 통신망을 끊어 차단시킨다. 이어 미리 준비해 놓은 데이터를 본점 쪽으로 송신한 후 통신구에 불을 질러 그 흔적을 없애버린다. 본점의 컴퓨터로 입금처리된 많은 돈은 다음날 모두 인출되지만, 그때까지 지점의 통신망은 복구되지 않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해킹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소설에서는 그 주인공보다 더 똑똑한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지만, 언제든 이러한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소설을 연재했었다.
이처럼 만일 정보통신을 잘 아는 전문가가 이번 뉴욕을 테러한 집단과 연계하여 그 혼돈 상황에서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테러를 가했다면, 모든 은행데이터를 가공하고 증권거래 내역을 가공하여 이미 무너진 건물의 손상된 데이터를 대체하게 되었다면 뉴욕과 세계경제는 치명타를 맞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었어도 회사가 돌아가고 금융시장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현행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듯, 인명보다도 데이터가 우선되는 세상에서 정보통신을 이용한 데이터에 대한 테러의 피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미국 네트워크어소시에이츠의 테리 벤젤 부사장은 지난 10월 10일 하원 청문회 증언에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사이버 공격을 해온다면 가공할 사태가 올 수 있다며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특별보호를 촉구했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전력, 천연가스, 석유 생산 및 공급, 텔레콤, 수송, 상수도, 금융, 긴급서비스 등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컴퓨터 체계가 붕괴될 경우, 현대사회의 모든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네트워크보안 전문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벤젤 여사는 가장 가공할 시나리오는 물리적, 사이버적 공격을 통합한 ‘캄보 테러’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파괴 규모는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수준에 이를 것이며 컴퓨터 보안에 관한 정보를 기업과 국가가 무조건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테러시에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대한 테러도 함께 진행하는 ‘캄보 테러’ 형태였다면 그 파괴력은 더 컸을 것이라는 경고다.
필자는 테러 진행과정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만일 필자의 소설이 뉴욕 테러현장에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열 손가락과 키보드 하나로 모든 세상을 평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소설속의 주인공은 언제든지 우리주변에서 만들어 질 수 있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테러리스트들도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들이 조직적이고 정교하게 정보통신시설에 ‘캄보 테러’를 가했을 때 세계경제는 물론 세계질서가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 건재, 워싱턴과 뉴욕에 탄저균 확산, 미국 패닉 현상. 파키스탄 성당의 총기난사, 성전 참여를 위한 수만명의 파키스탄인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
세계는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손잡이를 휴지로 닦아내고 잡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우편물은 공포 그 자체이며, 그 공포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조차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정보통신 시설에 대한 테러까지 일어난다면 그 어떤 인명 살상과 건물에 대한 테러와는 다른 영향을 받게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색동굴 속으로 함몰되기 시작한 역사를 밝은 빛 아래로, 그림자지지 않는 빛 아래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오직 정보통신 매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정보통신은 세상을 통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한국통신 과학관장)
<고은미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