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로라 차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 부회장이 상하이의 한 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자국 내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로도 외국인 투자가들은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A, B시장 중 B시장에만 투자할 수 있으며 투자 대상 기업도 고작 110여 개사다.
중국 당국의 이번 방침은 주식 시장을 앞으로 전면 공개해 나가겠다는 의사로 풀이되어 해외 투자가와 기업들의 관심을 모았다.
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투기(投機)시장에서 투자시장으로.’
WTO 가입에 따른 중국 자본시장의 변화는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된다.
지금까지 중국 투자엔 ‘대박의 꿈’과 ‘쪽박의 함정’이 공존해 왔다.
제멋대로인 법과 제도 운영, 과실 송금에 대한 세무조사, 중국기업들의 비자금, 외국인이 적응하기 힘든 상거래 습관 등이 쪽박의 함정이었다면 그 반대로 외국인 투자가와 기업들의 특혜, 광활한 초기시장 선점 기회 등은 대박의 꿈이었다.
투자와 관련한 중국의 법과 제도는 WTO 가입을 계기로 국제 규범에 맞게 개선되고 투명해질 전망이다.
각종 차별 조치의 폐지로 외자기업도 현지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WTO 가입 이전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산업에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가입 이후에는 입맛에 맞는 자본만 유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전부터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에 ‘하이 리스크’보다는 ‘하이 리턴’을 강조하며 반도체와 같이 투자받기를 원하는 제조업 분야에 대해선 획기적인 조건을 제시해 왔다.
중국 기업과 중국 은행의 대외신용도도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 은행들도 국내외 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 등 자본주의적인 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내년 상반기 중에 개설될 차스닥시장은 외국 벤처자본의 유입 통로로 정착되면서 중국이 사활을 거는 첨단 기술분야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90년대말 들어 본격화한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들의 대중국 투자도 WTO 가입 이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중국내 경쟁 규칙이 투명해져 투자 회수의 위험성이 낮아지는 현지 자본 조달도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인텔·모토로라·지멘스·소니 등 선진 업체들은 제한적으로 진행한 대중국 투자를 앞으로 본격화하기로 하고 현지법인의 상장까지 포함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다.
특히 다국적 통신 서비스 업체들의 중국 진출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WTO 가입 후 6년 이내에 외국기업은 통신서비스분야 지분을 49%까지 소유하고 이동통신 등 부가서비스사업은 51%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을 추진중이다.
중국에 돈이 몰리다보니 현지 산업 수준도 한 단계 높아지게 된다. 전기·전자·통신 등 지금까지 우리가 경쟁우위에 있는 분야에서도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엄청난 시장이 열리게 되는 중국의 WTO 가입을 바라보면서 우리 기업들이 마음 놓고 웃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 확대는 사실 우리나라에 대한 상대적인 투자 축소로 이어질 게 뻔하다.
한국을 중국 진출 교두보로 삼았던 외국기업들이 이제 직접 투자로 돌아서고 있다. 다국적 전자부품 업체들은 한국내 생산라인을 경쟁력이 높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실행에 들어갔다.
우리 업체들까지 가세했다.
삼성·LG와 같은 대기업들도 중국 생산공장을 첨단 제품 위주로 바꾸고 있다.
중국에 돈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투자 여건이 좋아졌다는 방증이다. 당장 중국과 비교해도 우리가 외국 투자 규제와 노사문제에서 중국보다 낫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WTO 가입이 이뤄지면 중국의 투자 가치는 몇 곱절 높아진다.
‘외국인 투자 자유화 확대 및 규제 완화, 노사관계 안정 등 국내 투자여건을 개선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R&D 투자를 확대하고 고급연구개발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우리 수출상품의 품질 향상과 중국상품과의 차별화에 주력해야 한다.’
중국의 WTO 가입이 가시화했던 수년전 마치 수학공식처럼 나왔던 이런 대응방안이 벌써 당장의 현실이 됐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