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중국 `WTO 가입 이후`](3)달라지는 중국기업

‘승진을 원하는 직원이 승진신청을 내면 회사는 승진을 신청한 사람들을 현직 관리와 공개 경쟁시킨 뒤 평가점수가 가장 좋은 사람을 현직의 관리로 앉힌다. 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생산성과 실적이 좋은 사람은 최고 3배까지 임금을 더 많이 받고 개인의 실적과 생산성을 매달 게시판에 공개한다.’

벤처기업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중국가전업계를 대표하는 하이얼사의 인사제도로 세계시장에서 중국 가전업체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뜨리는 장면이다.

이 같은 파격적인 제도 덕분인지 하이얼은 소니·마쓰시타·삼성·LG전자와 같은 일본·한국업체를 누르고 중국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는 미국시장에까지 진출하는 무서운 저력을 보이고 있다.

하이얼뿐만 아니라 쿵카, 창훙 등의 가전메이커들도 이제 싸구려가 아니라 전세계 선진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기업으로 성장했다.

냉장고·TV·세탁기 같은 가전산업의 생산량은 이미 한국과 일본을 추월했으며 컴퓨터(PC) 산업의 경우 토종업체인 ‘롄샹(Legend)’이 지난해 200만대의 PC를 판매, IBM·델·컴팩과 같은 세계적인 업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백색가전 사업은 이미 중국이 세계 1위이며, 디지털가전과 정보통신 분야도 5년 이내에 한국과 대등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10년여 만에 세계 전자산업을 휘어잡을 정도로 급성장한 데는 ‘13억명의 인구가 만든 거대시장’ ‘한국의 10%에 불과한 저렴한 인건비’ ‘한국의 70∼80% 수준에 불과한 원재료비’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급성장한 중국의 전자업체들이 최근 WTO가입이라는 새로운 촉진제를 맞게 됐다. WTO가입으로 인해 중국 가전제품은 대외무역수출을 확장하고 더욱 큰 국제시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또 현재 외국으로부터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도 대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게 됐다. 이미 최대 가전제품 생산국임과 동시에 수출대국이던 중국은 수출국의 각종관세와 비관세장벽 제한을 많이 받아왔으나 이제 그 족쇄가 풀리게 된 것이다.

또 중국 내부적으로도 가전제품산업구조와 상품의 우수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경쟁력이 없는 가전제품은 중국 국내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라 보호를 잃고 경쟁중에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외국사의 합작을 통해 기술을 전수받아 더욱 빠른 발전속도를 보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윤윤중 연구원은 “그 동안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중국의 기업들이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영방식을 도입하면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건 지 20여년 만에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7%를 보였으며 수출신장세도 매년 13.6%씩 늘었다. 여기에 중국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7.3%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계획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10년 후인 2010년 중국은 현재보다 2배 더 커지는 것이다.

중국경제의 엔진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다시 한번 변신과 더불어 도약의 기회를 갖게 됐다.

하이얼(海爾)은 중국 최대의 백색 가전업체로, 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이 주력제품. 최근에는 이동전화에 컴퓨터분야까지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하이얼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선두그룹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이미 하이얼이란 브랜드는 잘 알려져 있다. 1984년 칭다오에서 독일의 냉장고 생산기술을 이전 받으면서 시작한 하이얼은 1984년 약 348만위안(42만달러)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400억위안(약 48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한 업체다. 하이얼은 WTO가입을 배경으로 이제 본격적인 세계기업으로의 도약 기점을 맞이하게 됐다.

1958년에 설립된 창훙(長虹)은 중국 내 최대 컬러TV 생산업체로 연간 1200만대의 컬러TV를 생산한다. 또 에어컨 생산능력도 120만대 수준이다. 최근 이 업체는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 하이테크 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중이다.

쿵카 역시 휴대폰과 TV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업체다. 지난 97년에는 350만대의 컬러TV를 생산한데 이어 조만간 450만대의 컬러TV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 9000여명의 종업원으로 중국의 전국 동서남북 4개 거점지역에 각 100만대의 생산능력을 가진 TV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쿵카는 최근 AS에 대한 대폭적인 변화를 단행하고 있다. 전국의 AS망도 1000개 이상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 쿵카의 시장점유율은 급속히 늘고 있다.

 유선사업자인 차이나텔레콤, 이동전화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과 차이나유니콤을 앞세운 통신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통신업체들은 WTO가입을 계기로 새로운 변모를 갖춘다는 복안이다. 특히 통신서비스 분야 3강을 토대로 쥐룽(巨龍), 다탕(大唐), 중싱(中興), 화웨이(華爲) 등 이른바 ‘거대중화’ 통신장비기업군들과 상하이벨, 서우신(首信) 등이 알카텔, 노키아 등으로부터 습득한 이동통신 장비기술을 앞세워 중국 통신산업의 저변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