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반덤핑 사슬에서 벗어나나.’
국내외 반도체업계의 이목이 13일 새벽(한국시각)께 확정될 WTO의 반덤핑 협정 개정안에 쏠렸다.
결정 내용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반도체 반덤핑 공방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등 국제전 양상까지 띤 ‘하이닉스’ 문제에도 전환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첨예한 입장 차이=반덤핑 협정 개정은 이번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다.
미국과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대립하고 있다.
협정에 따르면 덤핑 마진율이 2%만 넘어도 제소할 수 있다. 그런데 공급과 수요 국가가 뚜렷하게 나뉘는 상황에서 반덤핑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시피했다.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반덤핑 동맹그룹은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조치를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소요건을 더욱 명확히 하는 쪽으로 제한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대부분 회원국들이 공감했다.
물론 미국의 반대가 검림돌이다. 로버트 쥘릭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이번 WTO 기조연설을 통해 반덤핑 규정의 개정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워낙 다른 나라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미국도 밀어부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은 2년 동안 반덤핑 협정 개정에 대해 검토한 후 5차 각료회의에서 다시 협상한다는 ‘시간 벌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워낙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기존 협정의 기본 원칙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규정이 개정되는 쪽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업계에 미칠 영향=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반덤핑 소송 압력에 시달려왔다. 특히 하이닉스 사태로 인해 반덤핑과 함께 국가보조금 지급 금지조항까지 곁들여진 통상압력을 받아왔다.
이번에 반덤핑 협정이 완화될 경우 이러한 압력에서 보다 자유로워진다. 특히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한국업체를 대상으로 추진중인 반덤핑 제소 방침은 물밑으로 잠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반덤핑 통상압력도 예전같지 않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 마이크론은 자국 정부와 의회를 통해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제소 요구를 해왔으나 정부는 정작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확실한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대만 D램업체에 대한 반덤핑 제소에서 지난해말 패소한 바 있다.
국내 반도체업체 관계자들은 반덤핑 협정 개정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또 이와는 상관없이 국내업체가 피소당할 가능성도 당분간 낮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반덤핑 제소에서 승소하려면 수입품의 덤핑으로 자국산 제품의 가격이 하락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최근의 반도체 가격 하락은 경기침체에 따른 것으로 덤핑 판매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측의 요구대로 개정안 확정이 유보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반덤핑 제소를 통상압력의 카드로 여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이길 자신은 있으나 미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의 지원정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와 정책당국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번 협상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