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남녀가 어우러진 흥겨운 파티장.
20대 후반의 커리어우먼이 파티장에서 만난 새 남자친구를 껴안고 이 장면을 스카이 휴대폰으로 찍어 남자친구에게 영상메일로 보낸다. 이 메일을 받아본 남자친구의 표정은 황당해지고, 여인은 남자친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티를 즐긴다.
이쯤 되면 남자들의 코는 납작해질 수밖에 없다. SK텔레텍의 ‘SKY’ 광고가 말해주듯 요즘 광고는 이처럼 쇼킹하고 파격적이다.
최근 광고를 이끌어가고 있는 테마는 여성파워와 재미, 궁금증이다. 광고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를 반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들여다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신문, TV, 잡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매체와의 경험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 시대의 주류와 이슈가 어떤 것인지를 한 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을 간단하게 집약, 표현하는 것은 없을까.
바로 광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눈과 귀속으로 파고드는 10여초 남짓한 광고 속에 가장 객관적이고 진솔한 우리들의 삶이 나타나 있다.
물론 광고란 광고주에 의한 아이디어, 상품, 서비스의 비대인적 제시 및 촉진행위로 정의될 만큼 지극히 상업적이다. 그러나 광고는 상업적인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할 수 없으며 소비자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사실이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역사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면 온통 나라 정책과 살림이 여인네들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또 시바스 리걸이 신세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광고에서도 여인의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때론 사냥꾼도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카피에서 느낄 수 있듯이 거침없는 애정표현으로 여자들을 사냥(?)하던 남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히딩크 감독을 밀어내고 삼성카드의 모델이 된 고소영은 어떤가. 고소영은 남자들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치며 거리를 활보한다. ‘만져보고 싶을 만큼’ 엉덩이 선이 맵시 있다는 이 광고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 성희롱의 피의자로 표현될 정도다.
여성들이 흔히 입속에 중얼거리는 ‘누군가 내게 말했어∼♬ 그것만이 내가 세상을 당당하게∼♬’라는 LG카드 광고에서는 쇼핑, 헬스, 당구, 미팅 등을 즐기는 이영애의 모습을 통해 여성도 남성 못지 않은 당당한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같이 광고업계가 여성을 ‘약한 성(性)’이 아닌 ‘강한 성’으로 묘사하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또 다른 남녀차별’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지만 당분간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액션이나 첩보영화의 형식을 빌린 광고도 자주 등장한다. 이들 광고가 노리는 것은 바로 재미. 재미 없는 것은 안본다는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다.
실제 제작비도 소규모 영화 못지 않다는 영화 같은 광고가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액션영화와 비교하기에는 다소 어설픈 면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차별화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LG전자 ‘싸이언 컬러폴더’ 광고는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유지태와 이요원이 등장해 오토바이와 헬리콥터를 이용한 추격·탈출장면을 담아낸다. 이어 최첨단 컬러폴더를 이용해 납치당한 동료를 구출한 이들 뒤로 헬리콥터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구성도 독특해 영화 예고편처럼 하이라이트만을 담은 광고를 맨처음 방영한 후 후속편이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대우차 ‘드림넷’ CF도 마찬가지. 도심 정체가 심각한 곳에서 매그너스 운전자에게 자동차에 장착된 ‘드림넷’ 아가씨는 “안심하세요.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외화를 더빙한 듯한 성우의 목소리가 눈에 띄는 이 광고는 ‘영화 같은 현실’을 영화와 닮은꼴로 제작한 ‘영화식 스타일 광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대체 뭐야, 저건?’ 하는 궁금증 유발 광고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가끔 짜증스러울 정도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 같은 광고들은 오히려 몇초간 편안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SKT의 ‘NATE’ 광고는 ‘NATE’라는 단어만이 화면을 꽉 채운다. 방사형으로 퍼지는 유리파편은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느낌을 준다. 티저광고라 불리는 이 같은 궁금증 마케팅은 과거 미국의 유명한 담배회사인 카멜에서 제작한 ‘카멜이 온다’를 원류로 하고 있다.
궁금증을 극도로 자극시킨 네이트 광고는 최근 유리가 깨진 그 너머 광활하고 신비롭게 펼쳐진 곳에서 한 아이가 여유롭게 저글링을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준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