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대박을 만드는 사람들(1)

벤처 강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벤처 성공확률은 5%를 채 넘지 못한다. 국내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벤처투자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정도의 성공확률로 비유되고 있다. 몇 백억원을 벌었느니, 몇 십배의 투자이득을 얻었느니 하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까지는 실패와 좌절이 따르기 마련이다. ‘노력없는 성공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은 더욱 값지다.

 벤처캐피털리스트를 단지 캐피털 게인만을 좇는 사람들로 규정한다면 착오다. 개개인별로는 각 기업을 키워내는 보람과 전체적으로는 산업을 부흥시킨다는 책임이 더 크다. 따라서 그들을 산업의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벤처 붐을 일으킨 주역 중의 하나가 벤처캐피털리스트라는 것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기 투자에서 기업공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숨은 노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공개후 자금유치에 이르기까지 조력을 아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익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본의 마당’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벤처의 역사 뒤에 숨어있는 벤처캐피털리스들은 조력자로서, 때로는 보이지 않는 리더로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벤처산업을 육성시키고 더불어 투자수익도 올린 트랙리코더를 만나 그들의 역경과 희망을 들어본다.

 

  ○신화창조의 주역들

 ▲실패를 성공으로 만드는 강심장 <조기룡 대신개발금융 이사>

 대신개발금융의 조기룡 이사(46)는 벤처투자의 성공 기억보다 실패한 기억이 더 많다. 지난 89년부터 시작해 13여년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생활을 해 왔지만 스스로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경험은 리타워텍에 대한 투자였다. 약 26억원을 투자해 5배가 넘는 132억원을 회수했지만 자신의 트랙레코드로 내세우기는 꺼려한다. 또 지난 91년 거래소 상장 직후 분식회계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S사의 경우도 100% 이상의 수익을 거두기는 했지만 부끄러운 투자경험으로 남아있다.

 반면 조 이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투자로 기억하는 회사는 지난 89년 벤처캐피털리스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투자했던 인터링크시스템. 프리미엄 투자가 전무하던 당시였지만 조 이사는 자본금 1억원의 이 회사에 100%의 프리미엄을 주고 3000만원을 투자했다. 설립된 지 1년도 안된 기업이었지만 회사의 성장잠재력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이후 유·무상증자를 통해 최종적으로 3억1200만원을 투자했던 이 회사는 지난 97년 코스닥시장에 등록됐고 조 이사에게 35억원의 최종 투자수익을 안겨줬다. 더 반가운 것은 회사가 이 기간을 거치며 착실한 성장을 해줬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레이저공작기기 회사인 한광, 방송 및 통신기기 회사인 한원마이크로웨이브 등이 코스닥시장에 등록되며 조 이사의 트랙레코드로 추가됐다. 또 장외기업인 셀바이오텍 같은 경우는 3억원을 투자, 20억원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조 이사는 현재 40개 업체에 150억원 정도의 투자잔액을 갖고 있다. 이 중에는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의 주식도 다수 포함돼 있다.

 “첫 직장이었던 기업은행에서 2000여개 중소기업들을 방문했던 경험이 가장 큰 재산입니다. 그때 현장을 보는 습관을 만들었다는 게 큰 경험입니다. 많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부딪치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실패를 되돌아 볼 줄 아는 벤처캐피털리스트 조기룡 이사가 이야기하는 투자 노하우다.

 ▲“초심을 잃지 않는 영원한 초병”<이영민 한미창업투자 이사>

 “이전의 트랙레코드가 좋다고 미래의 투자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나 오래된 사람이나 항상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게 벤처캐피털리스트 생활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초심을 잃지 않아야만 합니다.”

 한미창업투자 이영민 이사(36)는 준비된 벤처캐피털리스트다. 이미 사업경험을 쌓기 위해 5곳의 직장을 옮겨 다녔다. 국민은행·앤더슨컨설팅·포항제철·포항공대 연구원 등을 거쳐 지난 94년 4월 한미창투에 합류했다. 한미창투와 인연을 맺은 뒤 이 이사가 제일 먼저 맡았던 업무는 경매. 당시만 하더라도 창투사가 지금과 같은 투자위주의 회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2∼3년간 기존 투자업체 중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의 사후관리, 본인의 말에 따르면 ‘해결사(?)’ 업무를 맡았다.

 이 이사가 본격적인 투자업무를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부터. 당시 엠케이전자에 주당(액면가 5000원) 3만원에 20억원을 투자해 100억원을 회수했다. 또 씨엔아이에도 5억원을 투자, 4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다. 이외에 와이드텔레콤·맥시스템·서두인칩 등의 회사를 공개(IPO)시키는 데 성공하며 꾸준한 신화를 만들어 갔다. 현재 에스넷시스템·팍스넷·신영텔레콤·지식발전소·테크타임 등 유망 회사들의 뒤를 받치고 있다.

 ▲육고초려(六顧草廬)의 끈기로 승부한다 <조병식 한솔창투 상무>

 한솔창업투자의 조병식 상무(44)는 ‘육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로 벤처캐피털업계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95년 미래산업과의 첫 인연 때문이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설비 분야에 처음 뛰어든 조 상무는 미래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투자하기 위해 방문했지만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을 만나기는 고사하고 정문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던 것이 무려 여섯번이다. 이런 노력끝에 당시 미래산업과 인연을 맺게 됐으며 그 후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구주인수부터 시작한 것이 미래산업에 대한 조 상무의 첫 투자였다. 이후 미래산업이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필요한 모든 증자에 참여, 16억원을 투자했다.

 조 상무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 미래산업은 최고의 트랙레코드로 남아있다. 2년 전에 투자회수에 성공한 자금만 무려 600억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까지 고려한다면 850억원으로 투자원금 대비 무려 50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조 상무의 화려한 트랙레코드는 조만간 해외에서도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지난해 초 20억원을 투자한 미국의 음성인식 전문업체 ‘컨버세이(Conversay)’가 올 하반기 나스닥 상장을 추진, 최소 400억원 이상의 투자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 상무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덕목으로 ‘지식’ ‘네트워크’ ‘경험’을 꼽는다. 컨버세이에 대한 투자도 네트워크의 힘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 상무가 후배 캐피털리스트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투명성’이다. 투명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업계의 살아있는 신화

 벤처캐피털업계의 귀재를 꼽으라 하면 단연 I&D창투 김신천 부장(33)을 첫 손으로 꼽는다. 그가 벤처캐피털업계에 신화를 남긴 것은 적자투성이의 회사를 알짜기업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의 첫 투자는 지문인식 관련업체인 네스트라는 회사다. 시장조사는 물론 회사 사람들과의 면담을 수없이 반복, 사장 자녀들의 학교까지 알 정도였지만 첫 투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결국 상장회사에 M&A시키며 50% 정도의 수익을 얻는 데 그쳤다. 첫 투자의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김 부장은 국제전자(현 유니모)·코리아링크·쓰리소프트 등에 투자를 하며 화려한 트랙레코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코리아링크의 경우 3억원을 투자해 500억원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거뒀다. 99년 3월 I&D창투로 자리를 옮긴 이후 엔씨소프트에 투자를 하면서 김 부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당시 10억원을 투자했던 엔씨소프트는 15배의 수익을 안겨줬다. 또 같은해 투자했던 시큐어소프트는 장외에서 20배의 수익을 거뒀다. 이런 투자수익으로 인해 부채가 500억원에 달하던 I&D창투를 2년 만에 순자산가치가 더 높은 회사로 만들었다. 또 대주주였던 대웅제약과 이수화학으로부터 지분을 인수, 임직원에 의한 사업분할(MBO)형태의 종업원 지주회사로 만든 것도 사실상 김 부장이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올해의 경우 한국반도체소재·새롬엔터테인먼트·쇼핑넷 등이 상반기중 코스닥시장에 등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를 간다 <한국기술투자 민봉식 소사장>

 ‘아무도 가지 않은 처녀지만을 간다.’ 한국기술투자 소사장제의 초대 사장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은 퍼스트벤처의 민봉식 소사장(41)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삶이 벤처캐피털리스트 길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고달프고 영광 또한 크다는 뜻이다. 그는 사회 첫발을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시작해 중도에 사업가로 변신, 성공했으나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생활을 못잊어 다시 도전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투자기록 중 지금까지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한글과컴퓨터. 해외매각의 위기에 몰린 한글과컴퓨터에 투자를 단행, 기업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물론 한국의 자존심을 살려낸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밖에도 기술벤처의 대명사가 된 핸디소프트, 바이오벤처기업의 대명사로 떠오른 마크로젠 등을 발굴해 화려한 트랙레코드를 만들었다.

 민 사장이 그동안 투자한 업체 가운데 마크로젠의 경우 55억5800만원을 투자해 557억1300만원을 회수, 501억5400만원의 이익을 얻었으며 한글과컴퓨터에도 50억원을 투자, 154억4900만원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광우병 수혜주로 부상한 하림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고비 때마다 코리아펀드·IFC 등 외부자금을 수혈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민 사장이 한 일이다.

 민 사장은 지금까지 약 200억원을 투자해 얻은 이익만도 1000억원에 이르는 화려한 트랙레코드를 보유하고 있다. 벤처 생태계의 중심부에 위치한 벤처캐피털의 큰 손으로 자리잡아가는 민 사장의 다음 행보가 관심을 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