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기고-벤처캐피털의 역사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부호 이사

 

 우리나라에서 벤처캐피털 업무가 시작된 것은 한국기술진흥(KTAC)이 설립된 지난 74년. 이 회사는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연구결과를 기업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이후 84년까지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KTDC)와 한국개발투자주식회사(KDIC), 한국기술금융주식회사(KTFC)가 설립됐는데 소위 말하는 신기술금융 4개사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척박한 국내 벤처캐피털 인프라속에서 정통적 벤처캐피털 업무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투자금을 회수할 자본시장도 미비하고 벤처기업들의 경영마인드나 기술수준도 보잘 것 없고, 경험있고 전문적 소양을 갖춘 벤처캐피털리스트도 없었으니 모양만 벤처캐피털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지난 86년 4월 상공부와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제정하고 투자업무 위주의 창업투자회사의 설립을 주도, 그해 부산창투를 비롯한 11개사가 창업투자회사로 등록했다.

 한편 재무부는 상공부가 의원입법으로 벤처캐피털회사를 제도적으로 관장하게 되자 서둘러 ‘신기술사업금융지원에관한법률’을 만들어 86년 12월 신기술사업금융회사 4개사의 인가를 내주었다.

 나라마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듯 이렇게 국내 벤처캐피털은 한가지 산업에 두가지 법률,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원화 체제로 시작됐으며 이들의 성공과 좌절은 닮은 듯 하면서도 크게 다르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금융시장은 고금리와 담보로 특징지어 질 수 있었다.

 비교적 업무통제가 느슨한 신기술금융회사들은 융자·리스·팩토링 등의 기존 금융기관과 다를 바 없는 업무비중을 늘려가면서 비교적 안정적 영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창업투자회사들은 강제적 투자의무비율에 억눌려 설립부터 10여년간 이익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10여년간 단 한건의 제대로 된 회수도 못했던 창투사들은 90년부터 등록이 취소(래믹스·고려창투 등)됐으며 일부 회사(동원·삼도·벽산)는 합병되기에 이르렀고, 또 어떤 임직원들은 유서까지 써놓고 벤처캐피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국내 금융환경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IMF를 전후한 기업들의 부도사태 그리고 이후의 저금리 정착과 대기업위 주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등은 벤처캐피털산업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동안 융자위주의 안정적 영업을 해온 신기술금융회사들은 모두가 경영 주체가 바뀔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을 보였다.

 은행·증권 등의 대형 금융기관도 부도가 나는 판에 이들의 아류와 다름없는 영업을 한 신기술금융사가 설 땅은 더욱 없었다.

 반면에 투자위주로 자산을 운용한 일부 창업투자회사들은 기업들의 부도 사태에도 버틸 수 있었고 코스닥 시장의 출범과 벤처기업육성에 관 한특별조치법의 제정 등에 힘입어 그동안 못다한 대박의 꿈을 실현하게 됐다.

 이후 재경부는 리스·카드·할부·신기술금융사 등의 회사들을 통합해 여신전담금융회사로 출범시켰고 90여개의 여신전담금융회사 중 20개사 정도가 신기술금융회사의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기술금융회사응 투자업무가 크게 강조되고 또 비중을 늘려가고 있어서 예전의 신기술금융사와는 크게 다르다.

 창업투자회사는 99년과 2000년 사이에 신규 설립붐을 이루면서 모두 150여개사가 설립됐는데, 이제는 신기술금융사와의 경쟁과 협조를 통해 국내 벤처 및 벤처캐피털산업 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