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게임 즐기며 `역사의 향기` 느낀다

 “아니된다. 아우, 안돼 숭겸 아우….”

 백제 졸병 복장을 한 왕건이 절규한다.

 “형님 폐하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충신 신숭겸이 사면초가에 몰린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 복장으로 갈아입고 왕건을 대신해 죽으러 나가는 장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드라마의 가슴뭉클한 한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TV가 아닌 게임속 얘기라면 믿겠는가.

 역사드라마가 인기를 모으면서 게임에도 ‘사극’ 바람이 거세다.

 ‘태조 왕건’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출시되는가 하면 조선시대 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상도’는 온라인게임 ‘거상’으로 부활한다.

 또 석기시대에서 23세기 나노시대에 이르는 인류 50만년사를 그린 ‘엠파이어 어스’, 로마·그리스·중국 등 고대문명을 배경으로 한 ‘문명3’ 등 세계사를 소재로 한 해외게임도 잇따라 출시된다.

 ‘허준’ ‘태조왕건’ ‘여인천하’ ‘명성황후’ ‘상도’ 등 TV 사극은 전파를 타기만 하면 시청률 20%대를 훌쩍 넘겼다. 이같은 인기 비결에는 드라마도 보고 역사도 배울 수 있다는 교육적 효과가 한몫 했다.

 ‘역사게임’ 역시 교육적 효과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 게이머가 직접 역사속 주인공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TV 사극의 주시청자가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면 게임은 청소년까지 쉽게 즐길 수 있어 더할나위 없는 ‘역사교재’로 각광받고 있다.

 제작사들은 ‘게임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는 광고문구를 내세워 대대적인 판촉전에 나설 채비다.

 이투소프트가 23일 출시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태조 왕건’은 드라마의 재미를 게임에 그대로 접목시킨 작품.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는 팔공산 전투를 비롯, 견훤의 아들 금강이 한쪽 눈을 잃은 조물성 전투 등 드라마속 명장면이 그대로 재현된다. 신라말 역사적 전장지나 왕건, 궁예, 견훤 등을 사료에 기반해 생생하게 그린 것은 기본이다.

 ‘태조 왕건’이 고려 건국과정을 다뤘다면 조이온이 다음달 선보이는 온라인게임 ‘거상’은 조선시대가 배경. 조선을 중심으로 명나라, 일본을 넘나들며 교역을 벌이는 경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조선시대 유기나 도자기, 비단 등 1000여종의 교역품이 등장, 게임을 통해 값진 우리 문화유산을 하나하나 되새겨 볼 수 있다.

 세계사나 인류사를 다룬 작품도 있다.

 인포그램코리아가 출시한 ‘문명3’는 세계적인 게임 디자이너 시드마이어가 개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수작. BC 4000년 전 로마·페르시아·중국·인도 등 고대문명 발상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게임방식은 보다 내실있는 문명을 일구어 다른 문명을 흡수하는 것. 역사속에 등장하는 건축술, 연금술, 무기제조술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게임내 백과사전이 삽입돼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에 대해 상세히 배울 수 있다.

 한빛소프트가 국내 배급을 맡은 ‘엠파이어 어스’는 50만년의 인류사를 그린 ‘대서사시’다. 석기시대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전쟁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석기시대 원시인의 종족대결, 중세시대 기사들의 혈투, 1·2차 세계대전, 나노시대 미래 가상전쟁 등 인류의 전쟁이란 전쟁은 모두 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역사게임’은 하나같이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 국내 게이머들이 전략게임에 열광하는 것을 감안하면 ‘역사게임 열풍’의 모멘텀은 충분히 형성한 셈이다.

 그러나 전략게임의 대명사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한 게임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흔히 ‘스타크래프트’류 전략게임의 경우 짧은 시간에 무기나 군사를 만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빠른 전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이들 ‘역사게임’은 전투보다는 전쟁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게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엠파이어 어스’나 ‘문명3’의 경우 어떤 종족을 선택하고 어떤 무기와 건물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린다. 무조건 많은 무기를 생산하면 이기는 기존 ‘전략게임’보다는 전략성이 한층 강화된 셈이다.

 ‘태조 왕건’ 역시 왕건, 궁예, 견훤 등 영웅의 경험치와 사기 등이 전투에 크게 반영되는 ‘영웅시스템’을 적용했다. 온라인게임 ‘거상’은 교역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야 군사도 사고 무기도 구입할 수 있다. ‘역사게임’인 만큼 역사적 소재나 사실을 적극 활용하도록 구성한 게 특징이다.

 ‘역사게임’ 개발사나 유통사들은 이같은 차별성이 역사게임의 교육적 효과를 부각시키는 큰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흥행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마이크로스프트는 이런 형식의 전략게임인 ‘에이지오브엠파이어’를 국내 출시했지만 ‘스타크래프트’에 완패한 경험이 있다.

 사학자들은 “인기에 편승한 드라마 사극이 극적효과를 강조하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역사게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에도 역사 드라마의 인기는 좀체로 꺾이지 않고 있다.

 교육성과 차별화된 장르로 승부수를 던지는 역사게임들. 드라마 ‘사극돌풍’이 게임에도 분다면 전략게임의 역사도 새로 써야 할 판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