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위원장 천성순)는 현 연구회 체제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이공계 출연연 및 연구회 운영 개선 방안’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자문회의는 연구회의 주요 임무가 소관 출연연의 유사·중복기능의 조정·정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할이 미흡하며 출연연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연구회 체제의 개선 및 개편이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지적했다.
자문회의가 이처럼 연구회 체제 개편을 공식화함에 따라 출범 2년 8개월째를 맞은 연구회 체제의 개편 여부와 범위·시기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계 인사들은 현 연구회 체제에 대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볼 때 연구회 체제의 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연구회의 설립 취지는 출연연이 직접 상대하던 정부 조직을 연구회가 담당, 연구원들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즉 각 부처에 속해 있던 출연연을 총리실 산하 연구회의 울타리로 끌어들여 출연연이 관련 부처의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공중분해 직전이다.
연구회가 예산편성 등의 실권이 없고 연구개발예산비 지원은 해당 정부 부처에서 하다 보니 출연연은 여전히 R&D 관련 부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개편 범위다. 일부에서는 아예 연구회를 해산하고 소속 출연연을 다시 해당 부처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현 연구회 체제는 옥상옥일 뿐이므로 차라리 출연연을 해당 부처에 이관한다면 효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구회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과학기술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편이다.
또 현재 총리실 산하 연구회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두는 방안도 대두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정부 각 부처의 연구개발사업을 심의·의결하고 연구개발 예산·평가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스템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국과위가 상설부서가 아니라는 것이 맹점이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연구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연연의 한 기관장은 “명목상으로만 동반자 관계인 연구회와 정부 부처간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회가 연구예산 책정 및 배분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회 체제 개편은 국가기술자문회의가 공식적으로 문제점을 제기한 만큼 곧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우선 12월에 개최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출연연의 기능정립 방안을 의제로 다룰 예정인데 연구회 개편 문제도 추가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연구회 체제의 모태가 된 독일의 막스프랑크처럼 정부 간섭이 전혀없는 자율시스템으로 거듭나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