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노소동락 인터넷백일장>손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장원

제목:날개 잃은 천사 재영아

-이병희

 무성한 나뭇잎들이 햇빛기름을 바르고 짙푸른 여름으로 달려 갈 즈음 불의의 사고로 엄마는 병원에, 너와 오빠는 이 할미 품으로 날아들었지. 코흘리개 어린 마음으로 엄마를 밤마다 찾던 네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구나.

 대견하고 자랑스런 재영아! 네가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미술시간에 엄마 얼굴을 그리라고 했을 때 너는 할미의 얼굴을 그렸었지? 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해 “누구를 그렸니?” 하고 물었을 때 “우리 할머니 얼굴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생님! 우리 엄마예요”라는 말을 남기고 울음을 터뜨려 선생님이 놀라 메모 편지를 이 할미에게 보내 왔었지.

 항상 명랑하고 활발한 네가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해 보고싶은 마음에 커다란 그리움의 길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널 데려 오던 날 너는 무척이나 쇠약해 보였단다. 할미가 네 아빠의 전화를 받고 부평에 갔을 때 너는 지척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와서 머리를 할미의 가슴에 대고 앉아있었지. 할미 가슴에 안겨있는 것이 좋았던지 빙긋이 웃는 모습이 힘이 하나도 없는 날개 잃은 천사 같았어. 길게 늘어진 머리에는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아 엉겨있는 것을 빗질해 뒤로 묶어 주며 볼우물 진 네 얼굴이 너무 예뻐서 할미는 뺨을 네 볼에 대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 주었어.

 두돌을 갓 넘긴 너를 데리고 오던 날 폐렴 초기라는 말을 듣고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고 약을 타 가지고 오는데 너무나 안쓰러워 할미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재영아! 넌 어려서부터 워낙 영리해서 엄마, 아빠의 마음속에 무지개를 그려 넣는 천사였단다. 네 엄마는 처음에 아들을 낳고 다음으로 딸인 우리 재영이를 낳았는데 너무 기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댔단다. 오빠는 잘 생긴데다가 의젓하고 너는 예쁘게 생겼으니 엄마가 자랑할 만도 했지. 왠지 고슴도치가 제 자식 자랑하는 것 같은데, 이 할미가 보기에도 예쁜걸….

 너희들이 어렸을 때 엄마는 이틀이 멀다하고 너희 자라는 모습을 전화에 담아 할미에게 보냈었지. 그때마다 이 할미는 오빠와 네가 자라는 모습을 허공에 대고 그렸었단다. 그리고 일기장에 써 보기도 했지. 가끔은 온 집안식구들이 밖으로 열려진 문을 향해 모두 외출해 버리고 할미 혼자 남게 되면 지금도 꺼내보는 빛 바랜 삶의 그림자들이란다. 너희들의 것은 이 할미에게 무엇이든 소중하지. 재영아! 너 기억하고 있니?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축하해 주려고 엄마가 병원에서 잠깐 외출하여 너의 교실을 찾아갔을 때 엄마의 얼굴을 기억 못하고 모르는 아줌마가 너를 데려가려고 온 줄 알아 울었다면서….

 재영아! 네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엄마도 너를 그리워하며 병과 싸우고 있단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살피고 있고, 너희들은 할머니가 보살피게 된 거야. 언젠가는 예전처럼 다시 온 가족이 모여 웃으며 살 날이 있을 게다. 조금만 참고 더 밝고 고운 모습으로 자라줬으면 하는 것이 이 할미의 바람이야.

 재영아! 너 유아원 다닐 때 네게 울보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 기억하니? 율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네가 재롱잔치가 끝날 무렵엔 항상 시무룩하고 눈물을 흘리곤 했었지. 사정을 모르는 엄마들은 네가 울보라서 그런 줄 알았던 거야. 네 마음은 혹시나 엄마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다 실망을 하여 울었던 것이지. 할머니는 속 깊은 너의 마음을 읽으며 가슴으로 늘 울곤 했단다.

 가끔 넌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 할미를 꼭 껴안고 “할머니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나. 자꾸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말 할 때마다 “그래 할미도 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단다”하고 위로했지만 울음을 참으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네가 너무 가엾었단다. 재영아! 이 할미가 숙제 선생님이 되어 재영이에게 국어와 수학을 가르칠 때 집중력이 강한 너의 모습을 보고 놀라곤 한단다. 할미도 글을 쓰면서 조금 잘 안되면 포기하고 한쪽으로 치우는데 넌 알 때까지 매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이 다음에 뭔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갖고 있어.

 참 시간은 빠르게 사람을 움직이는 구나. 네가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오빠는 5학년이 되었구나. 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할미는 네게 컴퓨터의 워드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 그런데 지금 너는 학교 선생님이 내 주시는 숙제의 자료도 인터넷에서 뽑아 프린트 해 가고 있더구나. 머지 않아 자격증도 따겠더구나. 하나를 배우면 응용해서 사용할 줄 아는 네가 이 할미는 정말 자랑스럽다.

 재영아! 이제 네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구나. 집에서 식사를 할 때 식탁에다 식구들의 수저와 식수를 준비하는 것은 이제 네 몫이 되었구나. 그 뿐인가, 따뜻한 너의 성품은 저녁에 할아버지, 할머니 잠자리를 깔아 놓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안마를 해주며 “우리 때문에 고생이 많지요”하며 할머니 마음을 보듬기도 해 손녀가 아니라 너의 엄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마를 하며 “할머니 등이 굽은 것 아냐?”하며 종이를 펴듯 만지작거렸지. 그래, 할미의 등은 요즘 들어 조금씩 휘어지는 것이 눈에 띄는구나. 네가 세살, 오빠가 다섯살 때부터 키 작은 너희들 손을 잡고 십오분 거리에 있는 유아원을 데리고 다닌 것이 벌써 팔년, 너희들이 혼자서 할 수 있을 만큼 자라는 동안 할머니의 허리도 그 만큼 나이를 먹은 것이지.

 재영아! 그런데 할미의 부탁하나만 들어줄래? 모든 것을 다 잘 해 낼 수는 없겠지만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읽고 나서 제자리에 꽂아 두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정돈은 사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습관이며 정신일거야. 그래서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 할일도 척척 해내는 것을 보게 된단다.

 재영아! 가끔 우리가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지. 너는 학교에서 배운 춤을 추고 할미는 경로대학에서 배운 춤을 출 때 할미는 마음이 행복해 진단다. 왜냐하면 너와 할미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네가 피아노를 치고 할미가 찬송가를 부를 때는 하늘의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아 너를 천사로 착각하기도 한단다. 너와 오빠가 할미 집에 있어서 집안에 웃음이 가득하고, 아빠를 기르며 주지 못했던 사랑을 너희들에게 쏟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런데 너희들 마음은 늘 빈자리가 있겠지. 조금만 참자. 머지 않아 엄마도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다고 하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나. 그동안 할미 품에서 자란 시간이 너희들 가슴에 소중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할미는 벌써 이 가을처럼 이별 연습을 시작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