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어느 가출 소녀 이야기
-조은희
처음 가출을 했을 때, 나는 할머니한테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 같이 나갔던 친구들은 그래도 집에 전화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라도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할머니는 전화를 붙잡고 울고불고 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집 나오기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 병세가 더 안 좋아지신 거랑, 마음 약한 할머니가 나 가출한 걸 알고 얼마나 많이 우셨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난 전화 한번 걸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에 걸친 나의 가출은 시작되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내가 세 살인가 네 살인가 되던 때라고 한다. 아빠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고 엄마는 그렇게 어린 내 곁을 떠나갔다. 아빠 역시 집을 나가 버리셨다. 엄마 없는 집에 있기가 우울하기도 했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특이나 어린 내가 혹시 부모 없이 자란다고 다른 아이들한테 기가 죽을까봐 무척 신경 쓰셨다. 그래서 더더욱 엄하게 나를 기르셨다. 부모 없이 자라 버릇없다는 얘기를 들을까봐서…. 그러나 그런 할머니의 사랑과 관심이 나에게도 무엇보다도 싫고 부담스러웠다. 솔직히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너무 부럽고 내 처지가 많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기를 바랐다.
내가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우리 할머니는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한 형편에 할아버지까지 편찮으셔서 일을 못하셨기 때문에 읍에서 나오는 몇 푼의 보조금으로 우리 세 식구는 살았다. 할머니는 거기에 얼마라도 보태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하셨다.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도록 할머니는 온갖 궂은 일을 하셨다. 물론 지금도 하고 계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번 돈 몇 푼을 나를 위해 쓰신다. 또 내가 몸이 많이 아플 때 할머니는 나보다 더 아파 하셨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나를 간호하셨던 것도 몇 번이나 된다.
그러나 철없던 나는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오히려 지겨워했던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이 지겨워서, 말이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겨워서, 날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간섭하는 할머니가 지겨워서 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서 한 동안은 너무 홀가분하고 행복했다. 집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 걱정도 안하고, 잔소리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난 좋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서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돈도 다 떨어졌고, 계속 이렇게 살수만은 없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연세가 너무 많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가출해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간호하랴 내 일로 학교에 찾아다니랴 많이 힘드셨다고 한다. 더더군다나 내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자고 음식을 제대로 못 드셨다고 한다.
그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한 동안 학교를 쉬다가 고모의 정성과 노력으로 다시 복학을 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지금 현재 내 방황은 끝났다. 물론 아직까지 마음을 완전히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또다시 사고를 쳐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난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내 마음을 꽉 잡아 돌란다. 그리고 내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전해 주셨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리련다. 그건 내가 집 나갔을 때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을 붙잡고 울며 하신 말씀이다.
“선상님, 난 우리 은히 없으면 못 산단 말이요. 지 에미 애비도 없이 이 늙은 것이 그 놈을 세 살 적부터 키웠는디, 그 놈에 새끼 없으면 우리 두 늙은이가 더 살아 무엇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