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거래 관련법률 정비 이대로 좋은가>(5)정부 부처간 영역 싸움의 결정판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이 표류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영역문제와 분쟁조정, 전자상거래 진흥과 소비자 보호 관련 등에서 부처간 이해가 엇갈리고 입장차도 커 지난 22일 정무위 법안 심사소위에서 상정이 보류됐다. 본 회의를 앞둔 26일 다시 법안을 재심사하겠다고 하지만 이견 조정이 큰 만큼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법안이 처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까지 이해가 엇갈려 복마전처럼 얽혀 버린 이 법안은 소비자 보호라는 중차대한 목적은 뒤로 한 채 한동안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안의 주요 골자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의 확대와 이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소비자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됐다.

 우선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안에는 사업자가 소비자의 사전동의를 얻지 않고 전자문서를 송신하는 것에 대해 해당 전자문서에 의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소비자가 조작 실수 등 의사표시 착오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했으며, 전자결제업자는 반드시 소비자 의사표시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했다.

 대금지급과 관련, 정보 보안 유지의무를 강화하고 배송과 관련한 분쟁 발생시 배송사업자가 분쟁 해결에 협조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사업자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했다.

 사업자가 개인정보의 위변조·도용 및 제3자로부터의 수집을 금지하는 등 개인정보 보호 의무도 강화했다.

 이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피해보상을 위한 보험계약, 소비자 피해보상금의 지급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기관과의 지급보증계약 등을 사업자에게 권장할 수 있도록 하고 각종 위법행위를 직접 조사·제재할 수 있도록 직권조사·시정명령·과징금 제도를 도입했으며 시도지사의 처분에 대한 불복 절차를 이관받도록 하며, 사업자에 대한 평가·인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및 단체에 대해 평가 및 인증에 관한 기준이나 방법을 공시토록 하는 등 공정위의 영역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

 ◇법안 표류의 이유

 전자거래기본법부터 정보망법·전자서명법 등 기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안들을 굳이 새로운 법을 제정해 중복되게 하거나 이중규제 등의 문제를 야기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공정위는 개인정보 보호가 개인의 명예·프라이버시 보호나 정보망 이용의 안전 확보 차원을 넘어 거래의 신뢰 확보 및 거래에 참여하는 소비자 보호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므로 전자상거래와 관련한 개인정보 보호업무를 정통부가 아닌 자신들이 직접 주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보망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서 주관 부서인 정통부의 역할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향후 교육·의료 분야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정보망을 이용한 개인정보의 전송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허용 기준은 해당 부서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이에 대해 업무의 중복 및 개인정보 보호가 직제상 정보통신부 업무에 속한다는 사실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미 정보망법에서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및 제공, 이용자의 권리 및 분쟁조정 등에 관해 포괄적·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정통부가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일괄추진해야 업무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는 재화 등의 구매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보호문제와는 별개라는 것이 정통부의 주장이다.

 결국 바이러스 등으로부터의 보호, 기타 정보망의 기술적 안전성 확보 및 정보망 이용자 보호의 일반적 원칙에 관련된 사항은 정보통신부가 담당하고 개별 거래 분야 특성을 감안한 개인정보 보호 관련 사항은 개별 부서가 각각 담당한다는 조정안이 마련됐지만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또한 이 법의 제정으로 사업자를 지나치게 규제해 인터넷 전자상거래 확대라는 정부정책 방향이 흔들리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국내 전자상거래의 전반적인 현황 및 실태를 고려할 때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안은 지나친 기업 규제로 이어지며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규제 최소화와 전자상거래에 있어 범세계적인 추세인 민간자율규제의 원칙과도 상충된다는 논리다. 규제와 진흥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법제간 상충문제도 논란거리다.

 전자문서와 관련, 보호법에서는 사업자가 소비자의 사전동의를 얻어야만 전자문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한 반면 전자거래기본법에서는 전자문서의 효력을 B2B·B2C의 구분없이 송신의 의무만 다하면 폭넓게 인정되도록 하고 있다.

 보호법은 또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특정한 전자서명 방법을 강요하거나 제한할 수 없도록 했으나 전자서명법은 안전한 전자서명에만 법적 효력을 부여토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소비자피해분쟁조정기구에 분쟁조정을 요청토록 한 것도 기존 약관규제법과 배치되는 점이다. 약관규제법에는 거래 당사자가 선택적으로 거래를 요청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결해야 하나

 건전한 전자상거래를 유도함으로써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문제에 대해서는 기업 규제보다 소비자의 권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소비자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따라서 전자상거래 등에 관한 소비자보호법 제정의 토대는 공정한 거래의 촉진과 함께 소비자와 사업자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자율적인 소비자 보호시스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외대 이은영 교수는 “전자상거래로 표현되는 온라인 거래는 아직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기존 오프라인 거래와 같다”며 “따라서 아직은 규제나 처벌보다 사업자의 정확한 정보제공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나아가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기존 오프라인에서는 명확했지만 온라인화되면서 복잡하게 얽혀 버린 부처간 업무영역을 어떻게 조정해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 부처들이 시장선점 논리에 치우쳐 소관업무를 독차지하려는 시도보다는 적정한 분야에서 영역을 전문화하고 확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 추진 일지

 날짜 추진 내용

 2000년 6월 9일 법 제개정을 위한 연구용역 시행

 2000년 6월 법률안 시안 작성 및 전문가 자문 등 추진

 2000년 11월 25일 법 제개정을 위한 토론회 개최

 2000년 12월 7일 제정안 국회 제출

 2001년 1월 관계부처 이견조정을 위한 ‘21세기 전자상거래 포럼’ 구성

 2001년 4월 17일 김민석 의원 대표 발의

 2001년 6월 18일 국회 정무위에서 공청회 개최

 현재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 계류 중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