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미래: 로마클럽 보고서/기아리니·리트케 지음/동녘 펴냄
오늘날 직업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계기능과 사무기능이 고도화되면서 근로환경·작업과정·노동조직·관리양식·보상체계 등이 과거와는 판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기계기술이 전통적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기술이었다면 컴퓨터 및 전자통신 기술은 새로운 산업사회를 특징짓는 기술로 간주할 수 있다. 생산활동에 대한 신기술의 적용으로 생산성이나 상품의 질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또 소공간에서 대량의 정보를 신속히 수집·정리·축적·공급할 수 있는 정보처리 능력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산업활동이 정보화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기술이 직업세계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과거의 대량생산 체계를 유연생산 체계로 전환시켰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소위 ‘유연전문화’라고 지칭되는 생산체계의 변화상은 공장 및 사무실 모두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으로 최근 날로 가속화되는 추세는 노동세계에 ‘기회냐, 위협이냐’라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로마클럽이 새천년 특별기획으로 만든 ‘노동의 미래’에서는 최근 우리 직업세계에서 관찰되는 이같은 현상을 △노동의 사회적 가치 △노동의 수요와 공급 △산업혁명과 노동 △현대 서비스 중심사회의 생산노동 △사회발전을 위한 정책제안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고찰했다. 그리고 고용의 딜레마와 가중적 실업압박으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노동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신기술 발전에 의한 노동세계의 가장 명시적 변화란 아마도 산업구조나 노동력 구성과 같은 구조적 단면이 아닌가 싶다. 많은 관련 연구가들이 기계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제조업 부문의 쇠퇴와 지식정보산업의 시장규모나 인력증가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술발달에 의한 고용구조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자동화 전산화 과정을 통한 인력성장부문과 쇠퇴부문의 상대적 크기로 결정된다. 생력화를 촉진하는 생산기구의 등장과 함께 고용인력이 장기적으로 축소된다는 전망은 지금까지의 가장 유력한 정설이었다. 그같은 주장은 제조업부문의 퇴조를 강조하는 ‘탈(脫)산업화론’에 의해서도 지지돼온 것으로 문제는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의 주류가 소정의 경력이 있으면서도 기술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취약한 중견근로자들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렇듯 신기술은 노동세계에 새로운 선택과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연화를 촉진하는 첨단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생활에 대한 노동의 의미나 가치도 급진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다. 지난날의 노동은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기본적인 틀이었다. 그러나 고효율 첨단기술의 도입과 함께 생존이나 소정의 인간적 삶을 위한 노동의 양이 축소되면서 또다른 생활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차츰 확대되고 있다.
자유시간의 창출은 원천적으로 근로활동의 효율성에 비례한다. 보다 적은 시간에 상품 생산을 하게 되면 보다 많은 자유시간이 보장된다. 이때 자유시간에 어떠한 활동을 하느냐가 관건이 되는데 그것은 노동이 아닌 여가활동일 수 있고, 강제나 의무가 아닌 또다른 노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래사회의 노동은 생산중심의 전통적 노동을 넘어서서 새로운 과업이나 여가를 지향하는 쪽으로 확산돼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80년대 이후 서구 선진국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이같은 경향을 간파한 저자들은 향후에는 자아실현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노동 및 여가활동의 재구성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 그러한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자유시간이 증가해 노동과 비(非)노동의 경계가 약화될 미래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여가활동을 어떻게 조직화하느냐가 총체적 삶의 질을 가늠할 핵심적 선택사항이 될 것으로 예견한다.
필요의 제약을 초극한 행복한 삶은 오래 전부터 인류가 꿈꿔온 이상이었다. 그러나 자유시간의 창출이 객관적으로 보장된 상황에서 노동활동의 재조직화가 주제화되기 시작한 것은 생산기술의 발달이 비약적으로 촉진되고 있는 근자에 이르러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저자들은 사회구성원 각자에게 최소한도의 지불생산 활동이 제공되는 첫째 단층, 수많은 계약제 직업들이 부가되는 둘째 단층, 자급적·자발적인 비(非)지불 활동으로 구성되는 셋째 단층이라는 다층적 생산활동 모형을 통해 완전 고용정책을 향한 정책적 기초를 제시한다. 비록 ‘무(無)실업 상태’는 현실세계에서 관망하기 힘든 희소한 상황이라 해도 그들이 제시하는 ‘노동의 미래상’은 생산적 복지에 관심을 지닌 지식인이나 일반 독자층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 pkim8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