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석태
83년 부산대학교 기계설계학과 졸업
97년 부산대학교 지능기계시스템 석사
83년∼현재 LG전자 입사/Cooking Appliance 연구실 책임연구원
90년 복합형 센서 오븐 전자레인지 개발
92∼93년 제빵·바베큐 등 복합기능 전자레인지 개발
97년 직점감지형 적외선 센서 전자레인지 개발
99년 광파오븐 개발
전통적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은 민족이나 문화·과학의 발달에 따라 각각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차이의 가장 큰 원인은 음식의 차이일 것이다. 매일 먹는 음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가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밥솥은 솥바닥에서 전해지는 ‘전도열’이 물과 쌀을 데우고 빵은 오븐의 선반 위에 놓인 밀가루 반죽을 따뜻한 ‘대류열’로 구워낸다. 또한 숯불구이는 불꽃이 없어도 달구어진 숯으로부터 발산되는 ‘복사열’로 고기를 구워낸다.
그 동안 전기솥·전기냄비·전기후라이팬 등 전도열을 이용하는 조리기구와 전기오븐·가스오븐레인지 등 대류열을 이용하는 가열기구는 대표적인 주방 조리기구로 자리매김했지만 복사열을 이용하는 조리기구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제품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기술진에 의해 요리속도를 크게 단축하고 구이 맛도 일품이며 밝은 빛으로 요리되어 요리 과정을 선명히 볼 수 있는 복사열을 이용한 대표적 주방제품인 ‘광파(光波) 전자레인지(light wave oven)’가 상품화돼 주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LG전자가 최근 출시한 광파 전자레인지는 음식의 요리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본래의 맛을 떨어뜨린다는 우려와 요리시간을 몇배씩 단축하는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모두 극복한 제품으로 해외에서 극찬을 받고 있다.
◇광파 기술의 기본 원리=열의 전달 방법에는 전도열·대류열·복사열 등 세가지가 있다. 겨울철 따끈한 방바닥은 전도열이고 머리 위의 훈훈한 공기는 대류열이며 불꽃이 사라진 아궁이의 사그러져가는 빨간 숯에서 얼굴의 화끈거림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복사열이다.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복사열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이자 유지 그 자체다. 겨울철 햇빛을 받고 있을 때와 구름 속에 숨어있을 때 느껴지는 온도 차이는 비록 미세하지만 복사열이 물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예이다.
사실 전도열이나 대류열은 나무·석탄·가스·전기로 이어지면서 이를 이용한 조리기구는 수없이 나타났으나 복사열을 이용하는 조리기구는 극히 적었으며 그 효과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그 원인은 복사열의 효과를 위해서는 아주 높은 표면 온도를 내는 히터가 필요한데 크기와 열효율·수명 등의 문제로 가정용 조리기구로는 적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사열은 ‘스테판-볼츠만 법칙’에 의해 표면온도의 4제곱에 비례하는 열량을 발생시키며 온도에 따라 히터의 표면온도도 달라진다. 자세히 하늘을 살펴보면 별의 색상이 서로 다른 것도 이렇게 표면 온도가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광파(light wave)란 표면온도가 높아지면 적외선 및 빛(光)의 양이 많아져 아주 밝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빛이 요리하는 것으로 보이며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는 현상과도 같다.
복사열은 햇빛이 전달되듯 물체에 빠르게 전달되며 같은 온도에서도 물체가 받아들이는 흡수율이 대류보다 훨씬 좋은 ‘적외선의 효과’가 있어 음식물이 빨리 가열된다.
따라서 강한 복사열을 받은 스테이크 등은 음식물 표면으로 수분이 빠지기 전에 빠른 속도로 익으므로 부드러운 맛을 그대로 유지해 그야말로 ‘빠르고 맛있는 요리’가 가능하다.
광파 오븐의 대표적인 열원인 ‘할로겐 히터’를 가진 모델의 원리와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원리는 히터 주변의 뜨거운 공기는 냉각 팬(fan)으로 식혀 밖으로 배출시키고 투명한 물체를 통해 순수한 광선과 적외선만의 복사열을 투과시켜 음식물을 가열하는 방식이다.
실제 광파에 사용되는 히터는 일반 조명용으로 사용하는 전구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의 ‘할로겐 램프’를 1500∼4500W까지 높여 아주 고온의 열과 밝은 빛을 내도록해 적용한다. 이 빛은 너무 밝아 직접 눈을 뜨고 보기가 어려우며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시험을 해야 눈을 보호할 수 있다.
◇광파의 상품화기술=광파를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주요 기술로는 음식을 가열하는 히터를 소형화시키면서 단위 면적당 열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낼 수 있도록 해 표면 온도를 높여주는 ‘광원부 기술’, 표면에서 나오는 광선과 적외선을 효과적으로 음식물이 있는 곳으로 집중시키는 ‘반사 기술’, 마이크로파는 투과되지 않으면서 복사열을 최대한 통과시키는 ‘필터부 기술’, 고온으로부터 히터와 반사판 등 부품을 보호하는 ‘냉각 기술’ 등이 있다.
또한 여기에 고온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안전 문제를 사전에 제거하는 안심 장치 등도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할로겐 히터는 높은 온도와 아주 밝은 빛을 발산시키는데 막상 히터 자체는 고온에 취약해 특정한 부분을 냉각해야 한다. 고온의 강한 빛을 반사시키는 반사판은 600℃ 정도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반사율을 최대한 높이도록 특수 코팅해 스스로 흡수하는 열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실제 개발초기에 알루미늄계 반사판이 종이처럼 타서 일부가 없어지거나 변형이 심하게 되어 개발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광파를 이용한 조리기구의 장점=광파는 강한 복사열과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를 동시에 사용하므로 현대의 급속히 증가하는 냉장· 냉동식품에 적합하도록 설계돼 있다.
실제 서양 음식은 수십년간 오븐을 사용해 빵이나 피자를 굽고 각종 조리를 즐기며 해왔으나 최근에는 식품공장에서 반가공 또는 완전가공하여 냉동 및 냉장 보관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조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고 남녀노소가 간편한 조리방법을 원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이런 식생활 문화의 변화로 인해 간단히 데울 수 있는 전자레인지가 현대인의 생활 필수품이 됐으나 일부 전자레인지에서는 음식이 딱딱해지는 등 원래 맛을 충분히 내는 요리를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오븐의 경우 냉동식품을 녹이고 가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요리시간의 단축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다. 전자레인지처럼 빠르고 전기 오븐에서처럼 맛있는 조리가 숙원 과제였다.
또한 연일 쏟아지는 가공식품을 쉽게 조리할 수 있으며 자동으로 최적의 맛을 내도록 열을 가감해주는 마이콤(Micom)에 의한 알고리듬도 필요하게 됐다.
종래에는 오븐요리를 위해 오랜 경험으로 적당한 가열 시간을 선정하지만 마이콤을 이용하면 현대의 각종 식품들에 맞게 수백가지의 요리가 자동으로 조리할 수 있어 재료만 준비되면 누구나 쉽게 조리할 수 있다.
기존 광파기술을 활용한 조리기구의 장점을 보면 요리의 속도가 거울로 빛을 집중하듯이 음식물에 흡수율이 좋은 복사열을 집중시키므로 무려 4∼8배 정도 빠르며 강한 열로 빠른 시간 내에 조리되므로 수분의 손실이 적어 맛이 좋다.
또한 각종 요리 메뉴를 자동화해서 마이콤에 기억시켜 두어 주부들이 요리책이나 사용설명서를 보고 시간을 조절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요리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원하는 요리가 있으면 사용자가 좋아하는 조리 코스를 기억시켜두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요리책에 나오는 사용 설명내용이 표시되므로 굳이 책을 보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최근 몇년간 미국의 ‘키친 앤드 배스(Kitchen & Bath)’ 등 대형 주방기기 전시회에서는 LG전자의 광파 조리기구가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까지 다른 경쟁 회사에서는 출시된 적이 없는 독보적 제품으로 획기적인 요리 시간의 단축 때문에 ‘스피드 쿡(speed cook)’의 대명사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