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를 잘 마감하고 신년을 새로운 각오로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
사상 유례없는 IT산업의 불황으로 그 어느때보다 혹독한 시절을 보냈던 IT업계는 올 한해를 마감하면서 영업활동을 최종 점검하고 새해 사업전략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올해 막바지 영업활동 점검과 새해 사업전략 수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올 한해를 잘 갈무리하는 일이다. 한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업계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신년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데 꼭 필요한 절차다.
컴퓨터업계는 올해 극심한 IT불황속에서도 다양한 이슈들과 사건이 쏟아져나와 IT업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HP와 컴팩의 합병과 같은 메가톤급 뉴스에서부터 버추얼 스토리지, 블레이드 서버 발표 등 기술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업계에는 어느해 못지 않은 뉴스거리들이 분출했다. 올해 컴퓨터업계에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으며 의미는 무엇인지 분야별로 5회에 걸쳐 점검해 본다. 편집자
올해 중대형컴퓨터 업계의 최대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IT)부문만은 15∼30% 가량 성장하리라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올해 중대형컴퓨터 업계는 전체적으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업종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경기부진을 극복하려는 노력 역시 그만큼 치열했다.
◇HP·컴팩 합병 발표=올해 컴퓨터업계를 뒤흔든 가장 큰 이슈로 기록됐다. 25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합병인데다 두 회사의 연매출로 따지면 911억달러 규모를 넘어선다. 국내에서도 지난 9월 본사 합병 발표 이후 한국내 컴퓨터 부문 2, 3위 업체인 두 한국지사의 합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HP 창업자인 휴렛과 패커드 가문이 반대하고 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합병의 시너지효과. 컴팩 컨슈머부문과 SI부문의 강점과 HP 엔터프라이즈 부문의 통합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양립하는 것도 사실이다.
◇재해복구센터 구축=9·11테러 이후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동안 재해복구센터 구축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용이 최대 걸림돌로 부상, 관심권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금감원이 강제규정화할 움직임과 함께 금융권을 중심으로 도입러시가 일었다. 정부 또한 행자부와 정보통신부를 주축으로 정부 기간정보시스템의 백업센터에 나서면서 재해복구센터 구축은 기업들의 비즈니스의 안전장치로 인식되게 됐다.
◇버추얼스토리지 부상=스토리지업계의 최대 이슈로 자리매김한 아키텍처다. 버추얼 스토리지 테크놀로지는 각각의 서버에 실제 저장장치가 있는 것처럼 가상의 저장장치를 설정, 리소스(데이터)를 공유하는 가상의 디바이스 개념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데이터를 공유한 후 실제 저장장치에 데이터를 저장하게 된다. 스토리지의 구매비용을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KISTI 슈퍼컴사업자 선정=지난해 하반기부터 선정작업에 들어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고성능컴퓨터시스템(벡터형)과 대용량시스템(스칼라형) 사업자 수주전은 단일 컴퓨터 공급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벡터형(600만달러)으로는 NEC가 선정됐고 스칼라형(2700만달러)으로는 한국IBM이 공급자로 최종 선정됐다.
◇PC서버 가격붕괴=경기부진과 닷컴몰락으로 인해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이 대량으로 확보해 놓았던 새제품에 가까운 서버와 중고서버들이 시장에 대거 유통되면서 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또 화이트박스가 기존 PC서버시장에 침투하면서 가격하락에 한 몫을 했다. 인터넷을 통한 중소서버 판매방식은 특히 가격 오픈 효과를 가져오면서 로엔드서버의 가격하락을 부채질했다.
◇IA64서버 출시 붐=IA64서버가 거의 모든 업체들로부터 쏟아져나왔다. IBM·HP·컴팩 등 거의 모든 업체와 삼성전자·디지털헨지 등 국내 업체들도 제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IA64서버 출시에 따른 기대감과는 달리 애플리케이션·운용체계(OS) 등 주변환경의 미비로 인해 공급실적은 미미했다.
◇대형 유닉스서버 봇물=한국HP가 지난해말 출시한 ‘HP9000 슈퍼돔’의 인기몰이에 힘입어 올해 국내 유닉스서버시장 정상을 탈환함에 따라 한국IBM·한국썬 등 업체들이 앞다퉈 제품을 내놓았다. 지난 10월 한국IBM이 사상 최고 성능을 지닌 제품이라며 ‘p690’을 출시하자 이에 뒤질세라 한국썬은 ‘메인프레임급 서버’라고 내세우며 ‘썬파이어15K’를 발표했다.
◇메인프레임 선전=유닉스서버의 성능이 갈수록 개선됨에 따라 한국IBM만이 누려온 메인프레임 강자의 입지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히려 홀로 남은 한국IBM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비록 몇몇 대형 금융사이트를 유닉스 진영에 넘겨주기는 했으나 한국IBM의 메인프레임사업은 작년대비 80%(예상)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리눅스, 대형 레퍼런스 사이트 확보=대기업의 도입사례가 없어 안정성을 의심받던 리눅스는 올해 대형 레퍼런스 사이트를 확보하며 주가를 올렸다. 대한항공·포스코·드림볼 등에 리눅스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중소기업이나 닷컴기업이 운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린 것으로 평가됐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