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및 유럽 대형 정보기술(IT)업체의 실적경고가 이어지면서 국내외 주요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뉴욕증시는 13일(현지시각)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IT주의 실적경고로 나스닥지수와 다우지수가 각각 대세상승의 고비로 여겨지던 2000선과 10000선이 붕괴됐다.
14일 국내 증시도 미국 증시의 약세 여파로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등 대형 IT주를 중심으로 1100억원을 팔아치우는 등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방어에 나서 각각 9.60포인트, 1.36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날 뉴욕증시의 하락은 통신장비주의 실적경고로 촉발됐다. 네트워크장비업체인 루슨트테크놀로지스는 1분기(10∼12월)중 매출 31억∼34억달러, 주당 영업손실 0.23∼0.25달러로 실적전망치가 나와 월가의 기대치(매출 45억달러, 주당 영업손실 0.17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9월 결산 네트워크장비업체인 시에나도 이번 분기에 기업들의 설비투자 감소로 지난 분기보다 판매수익이 30∼40% 가량 하락할 것으로 발표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는 전체 인원의 10% 가량인 1700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장비업체의 실적경고는 IT주에 대한 투자심리를 크게 악화시켰다. 아멕스네트워킹지수가 무려 33.53포인트(9.64%) 하락했는가 하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6.78%), 골드만삭스하드웨어지수(5.44%), 골드만삭스인터넷(3.61%) 등 주요 IT지수들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나스닥시장도 전반적인 IT주의 약세로 전날보다 64.83포인트(3.22%) 하락한 1946.55로 마감하며 어렵게 회복했던 2000선을 힘없이 내줬다.
미국 증시전문가들은 이달들어 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IT업체들이 기대만큼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실망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높은 상승세를 보였던 반도체주는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푸르덴셜증권은 이날 마이크로프로세서업체인 AMD의 투자등급을 매도로 제시, 반도체주의 하락폭을 키우기도 했다. 아시아 증시에서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대다수 반도체주들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유럽에서도 IT업체의 실적경고가 터져나왔다. 유럽 최대의 IT컨설팅업체인 캡제미니는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치를 하향조정하는 동시에 1900명의 추가 감원을 실시한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4.2% 하락했다. 영국의 IT서비스업체인 로지카도 실적을 하향조정하면서 14.0%나 급락했으며 통신그룹인 버새틀도 실적부진 전망으로 13.3% 하락했다.
국내 증시전문가들은 미국 IT업체의 실적이 기대를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나홀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준 굿모닝증권 연구원은 “아직까지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이 긍정적인 것은 감지되지만 미국 IT업체의 실적부진은 투자심리 차원에서 외국인 매수세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