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정보기술(IT)기업에 한국기업은 전무.’
미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지난해 11월 26일을 기준으로 매출액·매출증가율·자기자본이익률(ROE)·주주자본이익률(SROE)·수익성 등 5개 항목을 종합평가해 선정한 세계 100대 IT기업 중 한국기업은 1개도 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중 ‘아시아 네마리의 용’으로 불리던 대만과 싱가포르·홍콩의 기업은 각각 7개·1개·1개가 속해 있고 아시아 국가 중 일본과 인도가 각각 6개·1개씩 포함됐다. 특히 대만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기업들이 100위권안에 들어 아시아의 IT강국임을 자랑했다.
한국기업은 다만 순위가 정해지지 않은 101∼200위에 KT와 SK텔레콤이 간신히 들었다.
‘우물안 개구리’ ‘한국내에서의 IT강국’이란 말이 전혀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주는 자료다. 약 10년 사이 그렇게 강조했던 ‘세계화’ ‘글로벌’ ‘해외로 해외로’ 등의 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최근 좁은 국내시장과 함께 중국의 WTO 가입 등으로 해외로의 진출이 아니면 생존까지 위협받을 것이란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도 이른 시일내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함을 더없이 절실하게 만든다.
이에 KT·SK텔레콤 등을 비롯해 한국의 대표적 IT기업의 해외전략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주력해야 할 점과 글로벌기업을 지향하는 한국기업들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현지화 정책=각 기업 해외전략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업진출 지역에 맞는 시스템을 선택하고 현지업체와 인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등 최적의 현지화 정책수립이다. KT 가제모 글로벌사업단장은 최적의 현지화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현지 사업자와의 제휴 등을 통해 윈윈전략을 추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해외정보 수집 및 활용 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해외사업 추진=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하는 조급한 경영마인드가 해외진출과 글로벌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하는 한국기업들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힌다. 특히 한국기업은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와 해외시장에 맞는 지속적인 수익모델 발굴에 인색한 것이 가장 큰 흠으로 지적된다.
◇현지국의 국민성·문화·풍속을 이해하는 현지친화적 사업전개=SK텔레콤의 해외사업관리팀은 진출하고자 하는 현지국에 지역사회의 경제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교육·문화·기술 등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이미지를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더이상 상품이나 이미지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한국기업은 해외 현지문화를 무시하고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해외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가장 경계해야 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해외에서 한국기업간의 과열경쟁 지양 및 상호협력=해외에서 한국기업을 가장 한심하게 볼 경우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욱 부추기는 것이 한국기업간 과열경쟁이다. 동종업계의 한국기업간 과당경쟁은 글로벌기업으로의 도약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진출하고자 하는 곳이 같을 경우 국내 기업들은 서로 적절한 합의와 이해를 통해, 나아가 상호협력을 통해 과열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차별화 전략으로 이미지 부각=현대정보기술은 해외진출시 가장 주력하는 것이 IT 전문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정보기술은 과감하고 적극적인 마케팅과 레퍼런스 사이트 구축 및 활용, 로드쇼와 전시회 등을 활발히 개최해 전문적인 IT기업임을 강하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SK텔레콤도 한국기업만의 차별적인 경쟁요소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가격경쟁력은 중국, 기술경쟁력은 일본 등과 같이 한국기업하면 떠오르는 무언가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있는 핵심기술 확보와 부단한 기술개발이 차별화 전략을 위한 한국기업의 해결책으로 지목한다.
◇기타=전문가들은 이밖에 공통적으로 제품의 현지생산 등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현지 마케팅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하며 부존자원 부국이나 인구가 많은 국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추진해야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또 평상시에 해외사업 관련기관과의 지속적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현재 대다수 한국기업은 필요시 급하게 연락해 협조를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SK텔레콤 중국사업팀은 해외에 설립한 회사를 더이상 지사나 현지법인 개념의 하부조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사나 현지법인일지라도 독립된 한 회사로 현지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토비 와이스 한국CA 사장
“전세계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문화와 습성이 다르지만 결국 제품을 구입하는 목적이나 이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효과는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5%의 차이보다는 95%의 공통점에 더 주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 9월 외국인으로 한국CA의 최고 사령탑에 오른 토비 와이스 사장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토비 와이스 사장은 미국인이면서 일본CA 기술 총괄 부사장과 한국CA 지사장을 겸임하고 있어 한·미·일 3국의 기업문화와 특성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경험상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 문제가 거의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개별기능이나 접근방식 등은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제품을 왜 구매하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라는 목적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역량을 지엽적인 사항에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이같은 공통된 사항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사업역량의 95%를 충분히 투입하되 5%는 다른 업체와 차별화를 꾀하는 무기로 사용하면 백전백승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한국기업은 이것 때문에 안되고, 저것 때문에 안되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같은 사고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한다. 공통된 비즈니스 문제를 충분히 파악·해결하지도 않고 차별성부터 강조하면 사상누각이라는 것이다.
토비 와이스 사장은 그러나 일본보다는 한국기업이 비교적 글로벌화에 더 근접해 있다며 특히 판매·마케팅 관점을 더욱 보강하면 해외시장에서 많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