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1:세계로 향한다>지식정보 강국 `통일IT코리아`로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지 1년 6개월여가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진행된 남북한간 교류는 지난 10년, 아니 분단이래 50년간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로 활성화됐다. 무엇보다도 남북 경제협력에서 이뤄진 교류는 수십 년 동안의 성과를 훨씬 넘어섰다.

 경의선 복원공사는 남방한계선 바로 앞 비무장지대 철책 근처까지 완공돼 유럽·아시아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을 현실로 바꿔 놓았다. 또 개성공단 조성 계획과 경의선이 통과하는 비무장지대를 활용한 경제협력단지 설립 구상도 꿈틀대고 있다.

 그러나 화해의 기운이 몰린 곳은 뭐니뭐니해도 정보기술(IT)을 매개로 한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이다. 민간부문 IT협력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성과들이 숨가쁘게 이어지면서 반세기 넘게 단절돼온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앞장섰다.

 이미 지난 한해만도 수백 명의 IT기업·전문가들이 북한의 문턱을 넘었다. 교류 논의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남북 합작IT개발회사가 처음 문을 열고 남북한 기술자들이 함께 공동 개발에 참여하는가 하면 남한의 강사가 북한 기술자를 재교육시키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또 평양에서는 남북IT협력산업단지가 올해 완공을 목표로 첫 삽을 떴다.

 게다가 지난 89년 남북 경제협력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남한기업이 현지 기술력을 활용해 생산한 컴퓨터용 모니터를 북한 내수시장에 판매하게 되는 큼직한 성과도 거뒀다. 또한 남북이 공동으로 평양에 정보과학기술대학을 세워 북한 IT인력을 양성키로 하는 등 민간 IT협력사업은 남북 교류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남북한이 서로 협력해 동북아시아는 물론 넓게는 세계로 진출할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남북이 IT를 중심으로 힘을 합치는 ‘통일IT 코리아’는 비단 한반도 내에서만 영향이 그치지 않는다. ‘통일IT 코리아’는 동북아시아의 파고를 뛰어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반면, 북한은 아직까지 인터넷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이 꽉 막혀 있다. 이처럼 IT인프라에서 남북은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IT에 대한 육성 정책과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에서는 똑같다.

 북한의 경우 IT산업을 ‘강성대국 건설의 핵’으로 삼을 만큼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중국 상하이의 푸둥지구를 둘러본 뒤 “21세기는 IT 시대고 앞으로 IT 발전 없이 경제발전은 없다”며 IT 육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북한은 또 IT산업 육성을 경제난 극복을 위한 돌파구로 인식하는 한편 IT분야에서 남한의 강점을 인정하고 대남 IT협력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남한은 언어장벽이 없는 북한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기반기술이 갖춰져 있지 않은 북한 시장을 초기투자로 선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북 IT협력사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결국 북한의 우수한 기초과학 기술·인력을 남측의 자본력·상용화 기술과 합칠 경우 커다란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 출범과 테러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IT 분야만큼은 상대적으로 예외인 것은 이 분야의 교류·협력이 가장 현실적이고 생존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인식을 남북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IT 교류협력이 남북 모두의 목적을 달성하며 상생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류의 수준을 남북간 정보 격차 해소 단계에까지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IT교류협력이 경제적인 이익 실현 외에도 상호 산업·기술 차이를 줄이고 민족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북 경협 전문가는 “지금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IT교류협력의 성공모델을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남북 관계가 한 단계 비약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평양에서 만난 최주식 평양정보쎈터 총사장 역시 “정보지식산업의 시대인 21세기에 북과 남이 IT분야에서 협력해 나가야만 우리 민족의 장래가 있다”고 말한다.

 ‘통일IT 코리아’는 남북이 세계적인 지식정보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첫 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과 북이 공통의 이익 아래 경제협력을 수행하는 것은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한 시금석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연속선상에서 이룩되는 통일만이 남북의 균등하고 번영된 삶을 보장할 것이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기고> -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2002년의 남북관계는 기로에 서 있다.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신뢰의 구조가 무너지고 불신의 구조로 돌아갈 것인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지금 할 수 있는 수준과 할 수 없는 수준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새해에는 우선 쉬운 분야부터 풀어나가는 실용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의 IT 협력은 상생의 모델이다.

 남북한의 정치 불신과 군사적 긴장으로 경제협력 분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비롯한 IT교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최근들어 고속성장을 하고 있지만 인건비 상승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 역시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 IT분야를 새로운 성장주력분야로 육성하고자 한다. 북한의 우수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이 결합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남북한 IT교류 어디까지 왔나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IT교류는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유망 분야가 되었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협력은 북한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시설과 부품산업의 미발전, 그리고 투자환경의 불안정으로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여전히 직접투자의 시대는 멀기만 하다. 이에 비해 정상회담 이후 IT교류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물론 IT교류 역시 보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먼저 북한의 기술수준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북한 인력 수준을 평가해 보면 긍적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높은 책임의식과 북한내에서 기초과학 및 전문분야의 산학협력 및 전문가 집단과의 공조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나 제3국과의 IT 분야 협력에서 나타나는 연구인력의 높은 이직률과 비교해 볼 때 북한은 개발 인력이 안정화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렇지만 단점 또한 만만치 않다. 첫째, 북한의 기술수준이 국제사회의 기준에 미흡하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와의 교류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고 프로그램 개발 자체가 시장환경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마케팅·효율(생산성)·지적재산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아직은 해외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해외 시장 동향과도 거리가 있으며 마케팅 경험도 거의 없다. 셋째, 개발 관련 장비가 부족하다. 북한은 전략물자 반출 제한 국가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비롯한 개발 장비가 들어갈 수 없다. 향후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테러국 지위 해제, 군사적 전용 가능성 불식 등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통신 개방에 대한 북한의 자신감이다. IT산업의 성공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변화의 신속성과 급속히 변화하는 시장에서의 수요 대처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정보 네트웨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개방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IT협력,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투자환경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시간과 단계가 있다. IT협력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경제적 투자환경 수준을 고려하는 단계적인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남북한의 기술격차를 고려할 때, 북한 인력에 대한 교육을 통해 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북한은 소프트웨어 분야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잠재적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강좌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협력의 방향과 관련해서는 우선적으로 전략적 우위 분야의 접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한의 IT산업은 외국 브랜드 의존도가 높고 외화비용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초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기초 분야 중 북한의 우수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협력의 환경을 점차적으로 넓혀나가는 자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