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박항구 신임 대한전자공학회장

 

 박항구 신임 대한전자공학회장(55)의 족적에는 TDX10 전전자교환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 이동통신 등이 아로새겨진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30여년간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통신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기술들의 국산화 작업에 발자국을 남긴 것. 그래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보통신인으로 통한다.

 박 신임회장은 2002년 33대 대한전자공학회 선거에서 투표없이 당선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기 마련인 선거과정을 평정한 셈이다.

 그는 서정욱, 윤종용 씨에 이어 대학교수가 아닌 산업계 인물(현대시스콤 대표이사)로서 대한전자공학회장에 선출된 세번째 인물로 기록된다.

 대한전자공학회는 56년째 살림을 꾸리고 있으며 회원수도 2만3000여명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통신·반도체·컴퓨터·신호처리·시스템제어 등 5개 소사이어티와 스위칭 및 라우팅·인공지능신경망 및 퍼지시스템·제어계측·멀티미디어·음향 및 신호처리·마이크로파·반도체 재료 및 부품·영상처리 및 텔레비전·회로 및 시스템 등 16개 학술분과위원회로 구성된다. 주요 업무는 국내 전자정보통신 관련 논문을 심사해 발표하고 첨단기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회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논문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겠습니다.”

 박 회장이 2002년 대한전자공학회에 불어넣고자 하는 작은 변화다. 특히 논문의 접수, 심사과정을 온라인화하는 정보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긴급심사제도를 활성화하고 논문 적체를 줄이기 위한 논문지 1호당 논문 게재 편수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박 회장은 지난 97년 8월 현대전자산업 통신부문장(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연구원 생활을 접었다. 연구원으로서 쌓아온 경륜을 살려 산업계에 투신, 자신이 그려온 정보통신 이상향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같은 해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직을 맡음으로서 산·학 공조체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했다.

 이같은 박 회장의 이력에 비춰 대한전자공학회는 정부기관, 산업계와의 협동체제를 더욱 내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박 회장은 전기학회와의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유관학회, 산업계, 연구계, 정부기관 등과의 유대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을 가졌다. 일사불란한 산·학·관 협력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계의 공통분모를 늘리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에게는 또 하나의 당면과제가 있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현대시스콤(http://www.hysyscomm.com)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

 현대시스콤은 지난 7월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분사한 이동통신시스템 전문기업이다. 그러나 분사시점이 늦어지면서 KTF로의 동기식 차세대이동통신 초기모델인 cdma2000 1x 시스템 공급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까지도 현대시스콤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박 회장은 “올해 현대시스콤이 11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오히려 소폭의 흑자를 기록할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지난 7월 이후로 눈에 띌 만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현대시스콤이 적자 없이 해를 넘기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실제 KTF로 공급되지 못한 cdma2000 1x 시스템 기자재 재고부담이 600억원대에 이르렀고, 공급이 재개될 희망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경기 이천에 자리잡은 현대시스콤 연구소의 밤을 밝히며 cdma2000 1x 시스템 개발 완료를 독려하는 한편 정부(정보통신부)와 KTF의 문턱을 닳도록찾아다녔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곧 적지않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 박 회장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는 다만 “현대시스콤의 cdma2000 1x 상부 네트워크장비(HPDN)가 이미 KTF의 전국 광역시 통신망에 깔려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내년 4월경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시스콤은 비동기식 차세대 이동통신(WCDMA) 관련 코어(Core) 네트워크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초기단계에서 ETRI가 마련한 대용량 비동기전송모드(ATM)교환기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3세대 이동통신시스템사업에서 현대시스콤의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코어 네트워크 기술이 없다고 해서 3세대 시장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소용량 교환기와 기지국 분야에서 현대시스콤만의 강점을 살려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현대시스콤을 2∼3년내에 연간 매출 1800억원대 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cdma2000 1x 기반의 이동통신 발전모델인 HDR(High Data Rate)시스템과 무선 인빌딩(In-Building)시스템에 주력할 방침이다.

 두 제품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인빌딩시스템은 미국 최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인 스프린트로부터 제품공급업체로 선정돼 수출전망이 밝은 편이다.

 이같은 계획은 현대시스콤이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분사되는 과정에서 사업에 공백이 발생, 내수시장 기반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다. 이미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의 cdma2000 1x 시스템 구축이 완료단계에 접어들어 틈새가 엿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박 회장이 국내시장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업의 초점을 해외로 맞추는 것이 현대시스콤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다.

 박 회장은 지난 70년 이후의 우리나라 정보통신 30년사를 지켜봤고 참여했다. 이제 50대의 연륜으로 차세대 통신산업을 주목한다.

 골수 CDMA 주창자인 박 회장이 앞으로 써나갈 정보통신의 새로운 역사에 눈길이 모아진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1946년생/1970년 한양대 전자공학과/1985년 고려대 대학원 전자공학과 박사

 1970 금산전자/1972 한국과학기술연구소/1977 한국통신기술연구소/1981 한국전기통신연구소/1985 한국전자통신연구소/1997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1997 현대전자산업 통신사업부문장/1997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1999 하나로통신 비상임이사/2001 현대시스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