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 누구도 ‘브랜드’란 이름으로 포장된 유무형의 상품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게 됐다. 인간이 매일 사용하는 필수품이 200가지 정도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브랜드만이 기억될 뿐이다.
IT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IT와 연계된 사무환경을 가정하고 우리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마이크로소프트·컴팩·IBM·시스코·어도비·오토캐드·실리콘그래픽스·스리콤·SAP·모토로라·CA·인텔·소니·KT·필립스·오라클 등 세계적 IT 브랜드가 숨어있다.
이들에게 최고의 브랜드가 먼저였는가 또는 최고기술의 제품이 먼저였는가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제로 세계 일류기업의 최고 브랜드와 제품은 사실상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혼동된 채 기업이미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글로벌기업의 일류 브랜드는 세계화에 따라 날로 확산되고 그 힘을 더해 가고 있다. 글로벌 파워를 가진 세계적 IT 브랜드기업들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막강한 인지도와 품질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IT산업환경의 영향아래 있는 컴퓨팅·SW·HW 산업 관계자들에게 브랜드는 스스로의 가치를 확대, 재생산한다. 또 그들을 통해 디지털방식의 생산품이 몇 단계를 거쳐 최종 고객에게 도달한 이후에도 기업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그렇다면 이들을 세계 최고의 IT 브랜드기업으로 만든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세계 최고 기업 특유의 고객선점을 위한 질기고도 치열한 열정에서 나온다.
세계 IT 브랜드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힘의 원천은 고객 제일주의에 따라 이를 실현하면서 고객을 선점하려는 노력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조직내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고객과 대화하고 가까이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다양한 기획과 기술개발, 마케팅, 세일즈 행사 등도 한꺼풀 벗겨 살펴보면 사실상 고객의 구미 맞추기에 집중돼 있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기업들은 최대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노력에 나섰다.
시장점유율 1위의 세계 최고기업이란 영예가 최대고객을 확보해 시장영향력을 극대화한 기업에 내려졌다. 그리고 그결과는 기업에 최고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런 고객잡기는 흔히 창의력에 기반을 둔 부단한 최고제품의 개발노력과 브랜드인지도를 위한 치열한 마케팅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타임워너를 인수해 세계 최고의 인터넷통신회사이자 멀티미디어회사로 성장한 AOL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배경에도 생존을 위한 고객확보란 지상과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인터넷기업으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선발업체인 프로디지, 컴퓨서브 등과 피나는 싸움을 벌인 것도 결국 회사의 존립기반인 고객확보와 직결되어 있었다.
AOL은 이미 지난 95년에 온라인상에서 접속·검색·통신·콘텐츠·인터넷 등을 제공해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돋우면서 전세계업체들의 모델로 떠올랐다. 삼각형 안에 포개진 두개의 반달모양의 디자인으로 각인되는 AOL브랜드를 사용해 인터넷에 접속했던 고객들은 매일 AOL을 통해 이 회사의 위력을 절감해 오고 있다.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가 집착이라 할 만큼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는 것도 소비자 끌어들이기에 다름아니다. M&A를 통해 개발인력과 솔루션을 조기에 확보해 시장에 출하하는 시간(time to market)을 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존 체임버스 회장은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서 공급한다는 실리콘밸리의 법칙을 깨고 고객확보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이는 결국 고객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아닌가. 인터넷을 통해 수시간 내로 회사내의 모든 재무상태 파악이 가능하도록 한 스피드경영도 결국 고객에게 보다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의 반영이다. 이 역시 최고 기업이란 결실로 보상받는다.
PC를 켜는 순간 떠오르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프로그램 배경그림은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윈도 배경창은 적어도 지난 10년 가까이 이 회사의 대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고객에게 각인시켜 왔다. 최대다수의 고객에게 자사를 인식시켜려는 이 회사의 노력은 뒤늦게 뛰어든 인터넷분야업체인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노력까지 벌이면서 최신 기술트렌드 확보에 나서려 했던 것도 고객잡기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후 인터넷익스플로러 무료배포를 통해 1등 넷스케이프사와의 경쟁에서 이기면서 최대 고객확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빌 게이츠의 ‘포용과 확장’이란 모토는 결국 고객 끌어들이기였다.
126년 동안 통신분야에 집중해 온 스웨덴 에릭슨의 모토 역시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창립자 라스마그너스 에릭슨은 1870∼80년대에 부유층에게만 이용되던 전화를 일반에게 보급한 공로자였다. 이후 이러한 정신은 세계 어느 통신인프라에도 에릭슨의 장비와 단말기가 함께 하도록 만들었다. 최근들어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주니퍼 등과 제휴하면서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 모바일환경솔루션과 장비제공을 위한 모든 기반을 갖추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통신회사의 성장요인 역시 고객제일주의의 창업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웃 일본의 소니같은 회사는 고객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최초의 제품인식에서부터 편리한 기능과 품질을 제공하면서 신뢰감을 심어온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개발을 비롯, 이 회사의 세계 최초의 제품 개발 행진은 트리니트론 컬러TV, 컬러비디오카세트, CD플레이어, 디지털VTR,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등은 최고를 지향해온 이 회사의 컬러를 분명히 해 준다. 창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 회사는 자신있게 말한다. “시장조사를 아무리해도 일반 소비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며 창조적 마케팅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기업을 통해 이동통신단말기를 제조,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모토로라 역시 마찬가지다. 두개의 뾰족한 제비가 나는 듯한 모습의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이 회사의 로고는 말 그대로 통신분야에서 고객들에게 보다 나은 통화관련기기를 개발하면서 만들어간 역사다.
2차대전 중 세계 최초의 워키토키를 개발해 낸 이 회사는 창립후 80년 가까이 통신중심의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운영해 왔다. 지난 56년 세계 최초의 무선호출기를 생산했고 지난 69년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시에도 통신망을 제공했던 이 회사는 82년 휴대폰을 첫 상용화한 회사다. 이같은 화려한 개발역사를 갖고 있지만 전세계 소비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독자수행하지 않고 이동전화서비스에서 앞선 우리나라에 휴대폰설계센터를 두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당초 조그마한 회사였으나 이제는 세계적인 SW업체로 성장한 독일의 전사적자원관리(ERP)SW업체인 SAP사도 마찬가지다.
초기 연간 매출 800만달러 수준의 중소기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이제 연간 수백억달러의 매출업체로서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세계 최고의 쟁쟁한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SAP가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고객인 기업이 최적의 효율적 업무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온 이 회사는 결국 유럽에 세계 최대의 ERP업체를 일으켜 세웠다.
파워브랜드의 결정판(The Ultimate Book of Business Brands)’이란 책의 저자인 데스 디어러브는 최고 기업의 브랜드 특성에 대해 보편성, 단순성, 정보제공성, 글로벌지향성, 산업전체를 재창출하는 힘 등으로 요약한 바 있다. 세계 IT산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은 고객끌어들이기의 수단으로서 이같은 브랜드인지도와 최고기술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제품 가운데 컴퓨터 HW나 SW 그리고 그안에 내장되어 있는 칩까지도 모두 잘 빚어진 브랜드다. 그리고 그 세계 IT 브랜드를 갖춘 기업들은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이 시간에도 세계시장 주도를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 역시 그들 기업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만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도 마이크로소프트·인텔·컴팩·IBM·모토로라·소니 같은 세계적 기업들을 더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국내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동전화단말기 등 HW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명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병행돼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국의 AOL이나 일본의 NTT도코모 같은 IT관련 서비스 분야의 세계적 초일류 기업들을 서서히 배출시킬 때가 됐다.
알카텔·시스코·루슨트·에릭슨 같은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에 버금하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만들기 위해 벤처기업이란 싹을 키워야 한다. 오라클· CA·SAP·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세계적인 규모와 시장주도적인 회사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좁은 한반도의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전세계시장의 글로벌 고객을 만족시킬 만한 제품과 브랜드를 키우는데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