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부품산업계는 죽음의 계곡을 헤쳐 나오는 심정이었다.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고속성장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던 국내 전자부품업계가 근래 보기 드문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된 까닭은 급작스런 세계 IT경기 위축. 지난해 3분기부터 침체 징후를 보이던 세계 IT경기는 올 1분기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빠졌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 및 전자전문제조서비스(EMS)업체들이 엄청난 부품 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계 전자부품 경기는 급전직하로 급랭했다. 재고누적을 이유로 선발주낸 부품마저 구매해 가지 않는 경향이 심화하면서 부품업체의 재고는 눈덩이처럼 쌓여갔고 그 여파로 부품업체들은 공장가동률 저하에 시달렸으며 사업구조조정이란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여기에다 중국이 세계 전자공장으로 대두되면서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추락하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경쟁적으로 이전, 전자부품산업의 공동화현상을 심화했으며 국내 부품산업기반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비온 뒤 땅은 더 굳어지듯이 국내 부품산업계는 혹독한 시련을 마감하고 재도약 준비를 갖춘 한해로도 올해를 기억할 전망이다. 우선 전자부품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부품소재육성특별법 및 부품소재발전기본계획이 마련됐으며 PCB·커넥터 등 업종별 협회가 탄생, 부품산업을 제도적으로 발전·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가전·차세대휴대정보통신기기·블루투스·광통신제품에 장착될 차세대부품의 개발 및 생산 체제의 완비는 국내 부품업계가 또한번 비상할 수 있는 도약대로 작용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다 연말들어 세계 IT경기가 저점을 통과, 내년부터 회복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도 들려오고 있어 올해 부품산업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감수한 해라 할 수 있다.
산전업계도 사정은 비슷했다. 제조업체의 설비투자 감소로 자동화기기시장이 얼어붙은데다 통신서비스업체의 투자위축으로 계측기업계도 매출감소에 시달렸다. 다만 승강기류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해보다 20% 정도 매출이 늘어나는 호시절을 구가, 여타 산업과 대조를 보였다. 특히 세계적인 인터넷 인프라 구축 열풍을 타고 광케이블 수출이 호조를 보여 광케이블업계는 불황속에 호황을 누린 업종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자부품
◇수동부품=지난해 많게는 100%까지 생산량을 늘린 수동부품업체들은 올해 극심한 수요 감소로 50% 이하의 가동률에 시달렸다. 삼성전기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사업은 손익분기점인 42억개를 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쎄라텍과 필코전자의 칩인덕터, 아비코의 칩저항, 삼영전자·삼화전기의 칩커패시터 등도 단가하락과 수요감소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단가하락은 입찰제가 부추겼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세트업체가 1, 2회 실시한 입찰 때마다 10% 가량의 단가하락이 이뤄졌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 장기적인 전망을 밝게 했다. 삼성전기는 세계 최소크기인 0603 MLCC, 필코전자와 쎄라텍은 0603 칩인덕터를 개발, 생산준비를 갖춤에 따라 향후 열릴 0603시장을 노렸다. 0603 칩부품 생산은 저온소성기술·회로인쇄기술·적층기술 등의 진보를 의미한다.
◇광부품=통신서비스업자의 신규 네트워크 증설이 냉각됨에 따라 광부품업체들의 경기도 급격히 냉각됐다. 광수동부품분야에 의욕적인 투자를 거듭했던 한 부품업체의 중역은 “체감수요는 지난해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광부품시장에서도 가격하락이 기승을 부렸다. 2000년 수요부족으로 호들갑을 떨었던 광페롤 가격도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부품별로 많게는 70%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수작업으로 소량을 생산해도 이윤을 남길 수 있었던 지난해와 달리 광부품분야에서도 대량생산에 따른 단가인하, 소재의 내재화로 수익구조 개선 등의 요구가 강조됐다. 중국 이동통신 중계기 장비에 광모듈 공급을 노렸던 한국단자·포엔티·케이비아이·알포텍 등도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동통신부품=2000년 4억5000만대의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던 세계 단말기 생산이 2001년 3억6000만대로 줄어들어 SAW필터·듀플렉서 등 이동통신부품시장도 냉각됐다. 올해 SAW필터시장은 지난해보다 2억개 가량 줄어든 13억7600만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고 VCO는 지난해 수준인 5억7000만개, TCXO는 4000만개 가량 줄어든 2.5억개로 분석됐다.
이같은 수요감소는 재고의 누적으로 인한 신규주문 감소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반기 이후 점차 회복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게 삼성전기·LG이노텍 등 주요 업체의 분석이다.
기술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진행돼온 소형화와 함께 다중밴드화·모듈화가 진행됐다. CDMA와 PCS·GPS 등을 통합한 다중밴드부품이 늘어났다. 또한 다이플렉서·스위치 등을 하나의 모듈로 묶은 프런트엔드모듈과 파워앰플리파이어모듈 등 모듈화된 소형부품의 수량이 늘어나고 있다.
◇PCB=올해 PCB업계는 사상 유례없는 일감 부족에 허덕였다. 올초만 해도 전년 동기보다 30% 정도 늘어난 2조5000억원 정도의 생산고를 올릴 것으로 기대됐으나 급작스런 세계 IT경기 위축으로 2조원도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특히 국내 PCB의 주력 수출선인 미국 네트워크·통신시스템업체들이 재고누적을 이유로 주문(오더)을 대폭 감소시킴에 따라 대형 PCB업체들의 공장가동률은 60%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다만 휴대폰 빌드업 기판의 경우 휴대폰 수출에 힘입어 나름대로 국내 PCB산업계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같은 와중에 그동안 세계 PCB시장에서 변방의 위치를 차지해온 중국 PCB업계가 과감한 생산설비 증설 및 일본·대만 PCB업체의 적극적인 현지공장 건설에 힘입어 세계 PCB시장에 본격적으로 가세함에 따라 국내 PCB업체들은 일감 부족에다 중국의 물량공세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2차전지=올해는 국내 2차전지가 산업으로 자리잡은 기반을 마련한 해로 평가된다. 지난 99년부터 LG화학·삼성SDI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2차전지산업은 이제 회사마다 400만대 이상의 생산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제법 경제단위의 규모를 구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2차전지의 대형 수요처인 외국 대형 휴대폰업체와 장기베이스의 공급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선진국인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과 LG가 내년부터 대규모 설비 증설을 계기로 이들 대형 휴대폰업체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보여 내년을 기점으로 국내 2차전지산업은 본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산업전자
◇승강기분야=올해 승강기시장은 설치·유지보수 등을 포함해 전년 대비 15% 성장, 1조5000억원 규모를 넘어서는 호황을 누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성숙기를 지난 승강기시장이 이례적인 성장세를 누린데는 ‘저금리효과’의 덕이 컸다.
시중금리가 바닥을 기면서 시중 유동자금이 대거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고 재건축열기가 반짝 살아나면서 소규모 단타성 승강기 주문이 쏟아졌다.
이로 인해 LG오티스·동양에레베이터 등 대형업체의 승강기 생산능력을 넘어 중소 승강기업체까지 골고루 매출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에스컬레이터·무빙워크 등도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한편 미쓰비시전기는 올들어 고층 주상복합빌딩의 고속승강기 수요를 싹쓸이한 데 이어 최근 사내영업팀을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란 독립법인으로 격상시켜 내수시장 판도를 4강구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계측기분야=첨단계측기시장은 더이상 나빠질 게 없는 한해를 보냈다.
끝모르고 치솟던 정보통신산업의 침체 여파로 국책연구소·기업체의 연구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값비싼 첨단계측기 수요가 잇따라 유보되거나 중단됐기 때문이다. 애질런트·텍트로닉스 등 주요 계측기업체는 세계적인 IT경기침체로 인해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큰 폭의 매출감소를 겪었고 경비절감·조직축소를 위해 허리띠를 동여매야 했다.
3세대이동통신·광통신 분야의 신규투자나 신기술 상용화가 계속 지연되면서 이미 개발해둔 첨단계측기기의 후속 출시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내년도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계측기 수요가 활발해질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편 국산계측기업체의 원조격인 흥창이 계측기사업에서 손을 떼고 경영위기에 빠진 것을 비롯해 국산계측기기의 입지가 보급형시장에서도 계속 좁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자동화분야=자동화시장은 사회 전반의 설비투자 감소로 침체단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장자동화시장은 각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로 PLC·인버터·센서 등 주요 자동화기기가 10% 이상의 매출감소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존 설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개량 수요는 계속 늘고, 특히 SW분야의 매출 증가도 두드러졌다.
특히 CDMA·무선랜을 이용한 원격제어기술이 자동화분야에 잇따라 접목되는 가운데 원자력발전소, 수처리 관련 제어공사가 전년 대비 크게 늘어 관련업체는 착실한 성장세를 누렸다.
빌딩자동화시장은 대형사무용빌딩·IDC 등 대형건물의 신규건설이 뚝 끊어진 가운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로봇분야에서 산업용 로봇은 주력시장인 자동차산업과 반도체산업이 대폭적인 설비투자 감소에 들어가 어려움이 가중된 반면 비산업용 로봇 시장은 적극적인 정부지원에 따라 신규투자가 대폭 활성화한 한해였다.
◇ITS분야=ITS시장은 당초 월드컵 특수와 맞물려 많은 성장이 기대됐으나 외화내빈의 결과로 나타났다. 주요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ITS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예산집행은 지지부진하고 그나마 떨어지는 고물도 대형 SI업체들이 독식해 전문 ITS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특히 DSRC분야는 수동식·능동식에 따른 업계간 표준다툼으로 기술상용화가 계속 지연돼 관련기술을 개발해온 ITS업체들을 맥빠지게 했다.
반면 텔레매틱스시장은 SK와 대우자동차가 독자적인 상용서비스를 시작함에 따라 활기를 띠고 전용단말기시장도 대중화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 차량용 카내비게이션은 전년 대비 100%의 시장성장세를 기록했다.
<산업전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