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1:IT백년대계를 세우자>변화에 걸맞는 법제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은 사회 전체를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단지 컴퓨터 환경뿐 아니라 주거 환경, 교육, 상거래 심지어 성문화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사회상은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었지만 인위적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분야도 있다. 바로 법이다.

 법은 사회의 반영이다. 따라서 사회가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한다. 만일 법이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회에서는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미국 음반업계를 넘어서 사회문제로 번진 ‘냅스터’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냅스터 소송은 아날로그 시대의 법이 디지털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법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IT 관련 각종 법제는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특히 전자상거래 관련 법령의 정비는 매우 시급하다. 세계경제가 전자상거래로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관련법이 현실적이지 않으면 국내경제는 물론 수출 등 국제경제 환경에서 우리나라가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업계의 초점이 맞춰진 전자상거래 관련법은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안, 전자서명법 개정안,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 제정안,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등이다. 그리고 전자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아직 당정간 이견 절충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자거래 관련법령 정비가 ‘전자상거래의 제도화와 이를 통한 활성화 유도’라는 당초 취지는 살렸지만 내용적으로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여전히 전자거래 관련법령 체계와 관련된 기본틀에 대한 원칙과 합의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현행 전자거래 관련법령의 체계는 전자거래기본법을 모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전자거래기본법은 말로만 기본법이지 전자서명법, 전자거래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법률은 물론 민법 등 다른 일반법에 대해서도 우월적 지위를 지니지 못한다.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이러한 현실은 관련 부처간 업무조정에도 효과적이지 못할 뿐더러 앞으로 법 해석에 대한 분쟁의 소지를 안고 가는 것이다.

 

 ◆개정 법률과 문제점

 ◇전자거래기본법=올해 마련된 개정안은 전자상거래의 필수도구인 전자문서와 전자문서의 송수신 시기를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 기본법의 허술함을 극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 전자문서의 적용범위가 모호해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기존 기본법에서 ‘이 법은 전자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에 적용한다’고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규정대로라면 상거래행위에 수반되는 전자문서가 아닌 각종 전자문서는 법적인 효력을 지닐 수 없게 된다며 전자시대에 걸맞게 전자문서의 효력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이 법은 모든 전자거래에 적용한다’고 바꾸었다.

 문제는 전자거래의 정의. 이 법에서는 전자거래에 대해 ‘재화나 용역의 거래에 있어서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전자문서에 의하여 처리되는 거래’라고 정의해 여전히 재화와 용역을 주고받는 상거래에 국한된다. 따라서 위임·임치·현상광고·리스계약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자거래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다면 해석이 분분해질 수 있다.

 이같은 문제는 부처마다 자신의 소관업무에 한정해 법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구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산자부가 소관하는 전자거래기본법은 이번 개정과정에서 법무, 정통부 소관 영역인 전자서명과 관련된 조항들이 모두 삭제됐다.

 기본법이 자신들의 소관영역을 침범했다는 비난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래의 정의를 확대하다가는 기본법 자체가 와해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처간 영역다툼이 법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든 셈이다.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당초 거창한 목적과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사업자에 대한 근거가 불확실해 목적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정 의욕에 비해 디지털콘텐츠와 저작권 및 프로그램보호법 등 연관사항에 대한 치밀한 해석이 부족, 혼란이 우려되며 이로 인해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사업자의 보호나 육성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이 법안의 핵심 개념인 ‘온라인콘텐츠’의 정의와 한계가 모호하다는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

 온라인콘텐츠는 협의로 해석하면 통신망을 통해 뿌려지는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지만 광의로 해석하면 모든 디지털콘텐츠를 통칭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관계부처와의 주도권 다툼으로 비화될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명확한 개념정의가 필요하다.

 이 법안에 의하면 또 오프라인 콘텐츠 등은 육성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막대한 규모의 정보화촉진기금이 한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어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에 역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다.

 온라인콘텐츠제작자에 대한 5년간의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한 조항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과연 5년이라는 기간이 권리보호 기간으로 타당한 지에 대해서는 보다 폭넓은 이해집단의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자서명법=전자서명법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처리되는 전자문서의 안전과 신뢰성을 확보함으로써 전자상거래 활성화와 전자화폐 이용·전자정부 구현 등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 99년부터 시행돼 온 법이다. 하지만 미국·EU·일본 등 주요 국가의 전자서명 입법이 잇따라 이뤄지고 유엔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에서도 전자서명모델법 제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에서는 그동안 문제로 제기돼 온 비공인인증기관에서 발급한 인증서에 대한 법적효력 인정 등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고 법안의 자구수정에 치중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인인증기관 지정제도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정통부장관이 공인인증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공인인증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지정의 의미다. 지정이라는 말이 행정법상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 법적인 효과는 어떠한지 계속 문제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등록이나 허가라는 일반적 용어를 쓰지 않고 지정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등록과는 달리 정부에서 심사를 해 자격을 제한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고 허가와는 달리 비록 지정을 받지못했다 해도 인증기관의 인증행위가 법적으로 하자가 있지 않다고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공인인증과 상호인정제는 한국적, 또는 대륙법적 특성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범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글로벌한 제도를 추구해야 하는 국경없는 전자상거래의 특성과 배치돼 국제간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질 경우 또다시 논란의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바른 개정방향=상당수 전문가들은 법률 입안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향후 개선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촉구한다.

 경원대 손진화 교수는 “헌법이 보장한 의회의 입법기능과 현행 법률 소관부처 관행에 따른 중앙부처의 의욕은 꺾을 수 없다”며 “다만 부처의 이해관계와 의원의 실적주의 경향에 떠밀려 관련 법률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거나 해당 법률이 입법과정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도 “부처별로 관할법이 있으면 확실한 책임성이 생긴다는 이점도 있다”고 전제하고 “전자상거래 등 유관부처가 다수 존재할 경우는 부처간 의견충돌로 인한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상거래(EC) 등 전문분야에서는 깊이있는 식견보다 의욕이 앞설 경우 해당 산업이나 국민생활에 적지않은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입법관행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뿌리깊은 국내 입법·행정체계에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고 부처간 발의를 중재할 수 있는 강력한 중간 조정기구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미국의 경우 민관 전문가협의기구인 통일주법위원회(NCCUSL)가 다수의 이해가 상충하는 법률을 적극 조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 대안으로 법제처가 이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정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정책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상시적으로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