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1:디지털IT 패권 분수령-월드컵>열두번째 한국 대표선수는 `IT`

 한 때 축구 실력과 그 나라의 경제력은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논리가 월드컵을 통해 확인되곤 했다. 월드컵 4강의 단골 멤버만 따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정도인데 이 가운데 앞의 세나라는 모두 경제위기로 IMF 구제 금융이라는 쓰린 경험을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2 한일 월드컵은 개최국 한국이 IMF 경력자여서 이번에는 어떤 신조어가 생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드컵은 세계 32강이 모여 최강의 팀을 가리는 축구 경기이지만 이처럼 다양한 경제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개최국에는 경기 활성화와 브랜드 인지도 제고라는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고 참가국 역시 축구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신경제의 핵인 IT쪽으로 시각을 좁혀 보더라도 내로라 하는 초일류 기업들이 저마다의 기술력과 상품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또다른 기술 경연장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IT 전분야에 걸쳐 차세대 기술과 제품이 상용화되는 시점에서 열린다는 시기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이 신기술 혹은 검증된 제품의 홍보에 기여했다면 이번 월드컵은 그 의미의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2002월드컵은 향후 10∼20년간 IT분야의 헤게모니와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진영간의 싸움이다. 어찌보면 숨어 있는 ‘IT패권 경쟁’이 그라운드의 열기를 훨씬 능가할 것이며 우승팀 맞추기보다 오히려 여기에 주목해보는 것이 진정한 2002월드컵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굳이 ‘IT패권을 겨냥한 진영간의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속에 세계를 리드할 국가간 이해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IT가 경제축으로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월드컵이니만큼 이를 통해 좀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IT 제세력간의 혈투는 이미 시작됐다. 복합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기술 추세를 감안할 때 진정한 IT 승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국가간·업체간 혹은 세력간 경쟁이 뜨겁다는 것이다.

 2002월드컵에서 선보일 기술은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3세대 이동통신, 디지털방송, 무선인터넷 등 차세대군이 그것이다. 문제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능과 기술이 차세대 IT주력군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가름이다. 표준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IT메가 트렌드의 격전장이다.

 우선 통신 분야를 보자. 개최국 한국과 일본은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를 실시한다. 3세대는 동기식과 비동기으로 각각의 기술 표준이 나뉘어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동기를 대표하는 한국과 비동기 진영의 일본(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유럽식 비동기와는 달라 일본식 변형으로 불러야 한다)이 격돌한다. 전세계인들 앞에서 우열을 판가름 받게 된다. 그 결과는 향후 기업들의 투자나 기술표준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지털 방송 역시 마찬가지. 한국은 북미방식을 내세워 서비스에 돌입한다. 이 분야는 표준이 관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담길 콘텐츠, 브라우저 등의 각축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TV가 바보상자의 허울을 벗고 명실공히 정보단말기로 거듭나게 되는 디지털 TV는 인터넷과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

 기존 PC와는 달리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친숙한, 소위 사용 친화력이 압도적인 TV가 어떤 모습으로 IT시장 질서를 재편하게 될지 그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월드컵이다. 더구나 여기에 실릴 각종 콘텐츠와 브라우저 싸움은 황금알 시장을 누가 선점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광대역 인프라를 통한 인터넷 방송과 서비스도 한 단계 발전한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간 거대 지상파의 위세에 짓눌려 있던 인터넷 방송은 월드컵 기간 동안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내용을 제공할 것이다. 월드컵 마케팅과도 결합해 이전에 없었던 틈새시장 창출도 기대된다.

 그러나 2002월드컵이 진정한 IT패권 내지는 메가 트렌트 경연장으로 불리는 것은 이같은 분야별 경쟁을 통해 21세기 최후의 정보단말 승자를 가리는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통신시장에서 불기 시작한 광대역 서비스는 전화가 단순 음성통화를 탈피, TV와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모두 포함한 휴대용 정보단말기로 변하게 했다. 3세대 이동통신은 실시간 데이터 송수신은 물론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뱅킹 등 모든 모바일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MP3로 다운로드해 CD수준의 음질로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통신 단말기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통의 강자 TV는 물론 PC까지 제압, 21세기를 지배하는 정보단말기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업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동전화 단말기보다는 휴대성이 뒤떨어지고 사용하기가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무선랜 등을 통해 이동성을 보강하고 저장기능과 복잡한 업무처리 능력을 강조, TV-이통단말기와 건곤일척의 승부에 나선다.

 TV의 경우 더욱 절박하다. 지난 50년간 안방의 맹주로 군림해 왔지만 PC에 치이고 이통단말기에 밀리면 끝장이다. 그래서 디지털TV를 내걸고 정보, 지능의 옷을 입혔다. 본래의 친화력만 유지한 채 정보기능을 보강한다면 21세기에도 TV는 천하무적이란 입장이다.

 월드컵에서 나타날 성적표는 IT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것이다. 공이 둥글듯, 지금은 누구도 승부를 점칠 수 없듯 어떤 정보단말기가 유리할지 그래서 어떤 나라와 기업이 세계 시장을 리드하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아니면 지금처럼 공존 혹은 3자 정립 구도가 계속될지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이같은 IT 메가 트렌드의 격돌은 어떤 월드컵에서도 없었다.

<조윤아 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