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2:새해 청사진-국내기업편>불황 터널 지나니 `희망의 빛`이 보인다

 ‘다시 뛰자.’ 우리 IT기업들이 흐트러진 몸을 추스리고 다시 한번 일어섰다.

 국내 IT기업들은 지난해 사상 최악의 경기 불황을 맞아 만신창이가 됐다. 매출은 2년 전으로 뒷걸음쳤다. 수익도 곤두박질해 적자 투성이다.

 정리해고·사업매각·시장퇴출 등이 난무했다. 마치 IMF체제 직후로 되돌아간 듯하다. 불과 1년 전에 호황을 경험한 이후라 그런지 충격은 IMF때보다 더하다.

 “한달이 1년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보냈는지 까마득하다”며 한 대기업 전자회사 사장은 이렇게 지난해를 되돌아봤다.

 해가 바뀌었다고 크게 나아질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지난해와 같은 극심한 침체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기대를 걸 뿐이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국내 전자산업 경기가 불황에서 벗어나겠으나 회복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종별로는 통신기기·통신서비스·가전 등이 10% 안팎 양호하게 성장할 전망이다. 컴퓨터·반도체 등은 마이너스 성장에선 벗어나지만 5% 안팎의 성장에 그쳐 2년 전의 수준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경기 침체는 상반기까지 지속되고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IT기업들도 이에 맞춰 새해 전략을 짜고 있다. 상반기엔 구조조정 등 체질을 강화하고 하반기부터 공격적인 경영을 전개할 계획이다.1차 목표는 2000년 수준의 경영 목표를 회복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은 대기업들의 제일성은 ‘내실경영’이다. 삼성은 지난해에 비해 5.7% 늘어난 130조원의 매출 목표를 세워놓았다. SK도 3.7% 성장한 55조원의 매출이 목표다. 그러면서도 삼성과 SK는 올해 세전이익 목표를 34.8%, 20%로 각각 늘려 잡았다.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이 먼저다.

 올해 기업 경영전략의 또다른 특징은 유연성이다. 지금까지 1년 또는 6개월 단위의 경영 목표를 세우고 세부 전략을 세웠던 기업들은 이제 분기, 심지어 월별로 경영전략을 짠다. 이만큼 우리 기업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1년 전 우리가 불황의 터널 입구에 들어섰다면 이제 그 터널의 중간을 넘어섰다. 흐릿하기는 하나 멀리서 희망의 빛도 보인다.

 간판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가격도 점차 회복세를 타고 있다. 기다렸던 월드컵도 열려 IT 경기 회복의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자산업의 시름거리였던 하이닉스반도체 사태도 어떤 형태로든 매듭짓게 돼 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얼마만큼 기초체력을 다졌놓았느냐이다. IMF 졸업 때만 해도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친 우리 기업들의 내성(耐性)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봤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지난해 불황에 대해 기업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선진기업들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정도로 불황은 심각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선진기업에 비해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아 체질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낳았다.

 전자정보기술 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초체력을 단련시키기 위해 원가에서 인력까지 경쟁력 전반에 걸쳐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혁신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경쟁력이 문제다. WTO에 가입한 중국이 세계 IT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중국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가격 경쟁력이 뒤지는 것은 물론 내로라할 만한 브랜드가 없어 고부가가치 시장을 고스란히 선진업체에 내주고 있다.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꼽으라면 휴대폰·메모리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몇 가지다. 이것조차 후발 경쟁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 대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이 없는 제품은 중국 등지로 과감히 생산라인을 옮기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승부해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내수시장도 하루빨리 활성화시켜야 한다. 수출이 어려울 때엔 어느 정도 내수시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내수시장은 수출 상황에 따라 요동쳤다.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정부도 뒤늦게 이를 인식, 내수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특소세 인하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값을 낮추는 것보다 소비자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는 게 소비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이다. 전자업계는 특소세 인하보다 소득세 인하가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전과 통신업체들은 기존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서 PDP TV나 3세대 휴대폰과 같은 차세대 제품은 내수시장을 활성화해 초기 투자부담을 조기에 회수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IT업계는 또 우리 미래 경제의 엔진인 IT벤처기업에 ‘돈’이 몰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처붐은 ‘묻지마 투자’라는 악평과 각종 ‘게이트’와 관련돼 정치사회 문제로도 부각됐으나 IMF탈출의 일등 공신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벤처 투자자도 성공에 대한 욕구만큼 실패도 인정할 줄 알며 실패한 벤처 기업가도 언제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본연이 벤처 투자 풍토를 정착시키면 벤처기업은 맥빠진 국내 IT산업에 큰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다. 다행히 벤처 거품이 한번 걷혀 옥석이 구분되고 있다. 투자가치가 있는 우량 벤처기업들은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수출 제조산업에 대한 관심도 새삼 높아지고 있다. 지독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자관련 제조업체들은 살아남았다. 통신부품 등 일부 기업은 오히려 세계적인 불황을 틈타 점유율을 높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경쟁력을 공인받은 셈이다.

 전자 제조업체 경영자들은 올해에도 ‘수출 제일주의’를 내걸고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닐 각오다. 이들에게 더욱 많은 투자자금이 몰려 경쟁력을 높일 때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의 기초는 더욱 튼튼해진다.

 새해가 밝았다. 그리 순탄하지는 않으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말 지는 해를 아쉬워할 정도로 보람된 한 해를 만들기 위해 우리 경제의 첨병, IT기업들이 이제 막 뛰기 시작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