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실리콘밸리의 韓人들-스타회사 만드는 `25시의 벤처맨`

 새너제이의 식당에는 사우더빵이 자주 식탁에 오른다. 시큼한 맛이 인상적인 이 빵은 원래 실수로 우연히 만들어진 후 사랑을 받게 됐다. 온화한 기후에 걸맞게 새너제이는 실수도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넉넉한 땅의 힘을 가지고 있다. 창의적인 엔지니어들과 냉철한 투자자들이 어우러져 미래의 스타 회사들을 품어낸다. IT산업의 침체기라는 지난해 말에도 새너제이에는 기회와 희망이 메마르지 않았다. 건물을 내놓는다는 간판도 많아졌지만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공사터도 줄어들지 않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심지어는 실패한 회사의 CEO가 실패학 컨설팅으로 예전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그 기회의 땅에 한국인들이 뛴다. 국내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로, 벤처 회사의 대표로, 강단에 선 교수로, 외국 기업의 연구원으로 열심히 뛰고 있는 그들의 밝은 얼굴을 만나봤다.

 오전 7시 30분, 새너제이 노스 퍼스트 스트리트 삼성전자 사옥. D램 마케팅 강영호 부장(41)은 출근과 동시에 e메일부터 체크한다. 한국·동남아·유럽지점의 D램 가격추이를 살피기 위해서다. 유럽지점과의 전화통화까지 마친 강 부장은 미국 각지의 판매사무소와 마케팅 전략을 논의한다. “D램 시장을 분석해서 가격과 물량을 결정하는 게 제 일입니다.” 강 부장은 경쟁사·컴퓨터 업체·딜러들이 숨가쁘게 물려있는 시장 상황속에서 256MD램 가격을 5센트 올리는데 성공한 11월 6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2달러30센트에 D램 가격이 고정돼 있을 때 2달러35센트에 5만개 물량을 과감히 던졌는데 그게 제대로 먹혔다”는 강 부장은 덕분에 당시 미국을 방문한 이윤우 사장, 황창규 부사장 일행에게 “장대한 미래의 시작”이라고 큰소리도 칠 수 있었다. 강 부장의 과감한 모험에서 시작된 D램 가격 상승은 이후 4달러선까지 치솟아 올랐다.

 시스코 라우터개발팀 이혁준 박사(33)의 출근 시간은 8시에서 8시 30분 즈음으로 일정하지 않다. 그래도 항상 15명의 팀원 중 2등 아니면 3등이다. 팀원 중에는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느슨한 팀 분위기를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이 박사가 속한 팀은 3년 뒤 상용화될 최고 기술의 라우터를 연구한다. 새로운 기술을 선도하기 때문에 치열한 연구의 연속이다. 라이벌로 떠오른 주니퍼사와의 경쟁도 연구에 불을 질렀다.

 ‘어떤 아이디어로 보다 많은 용량을 보다 빨리 보낼 수 있을까.’ 이 박사는 퇴근 후에도 부인이 그만하라는 은근한 협박을 하기전까지는 연구에 몰두한다. “팀장이 준 과제만 수행한다면 시간이 부족하진 않겠지만 나만의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일 욕심이 생긴다”는 이 박사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회의 때면 서로 경쟁적으로 내미는 아이디어가 그야말로 난무한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음식을 들고와 컴퓨터 앞에서 해결한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인 이 박사는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스탠퍼드로의 유학을 택했다. 조용한 말씨, 얌전한 외모와 달리 도전과 개척을 즐기는 이 박사는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벤처를 설립하고 싶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국 벤처 인큐베이터 아이파크에는 단암 USA의 허인규 박사(31)와 김용섭 박사(38)가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서울대와 미시간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허 박사와 서울대, 조지아테크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김 박사는 몇 가지 연구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순전히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어서 실리콘밸리를 택한 두 사람은 몇몇 대학, 연구소와 함께 통신시스템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허 박사는 학교를 졸업한 후 창업을 계획하던 중 회사를 만나게 됐다며 “본사쪽에서 믿어주기 때문에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창업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한다. “기술 트렌드를 면밀히 살핀 후 앞선 아이템을 제시, 연구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는 김 박사는 “경기침체로 프로젝트 수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좋은 아이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작품’은 2∼3년이면 성공과 실패 여부가 갈린다.

 넥시트 이은성 이사(42)는 지난 99년부터 케미스의 미국 판매법인을 이끌고 있다. 기업의 전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키는 패키지를 판매하는 이 이사는 최근 샌머테이오 카운티 정부에 수십만달러 규모의 판매계약을 성사시켰다. 현재 제품을 제안해 놓은 시 정부만 20여 군데다. 벽에 붙여놓은 칠판에만 수십개의 새로운 타깃과 진행상황을 적어 놓았다. 올해에만 70여개의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겠다는 이 이사는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만 성사되면 미국 사무소에서만 200만∼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예전에 즐기던 운동도 일년에 한번밖에 못하고 매일같이 피곤한 하루지만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거래처에 신이납니다.” 이 이사는 피곤이 가득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열정에 찬 얼굴로 말했다.

 노베라옵틱스 김병윤 사장(49)은 KAIST 교수로 재직하던 중 지난해 현지에서 1억달러에 이르는 펀딩을 받아 창업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창업했다는 김 사장은 인텔리전트 증폭기의 핵심부품인 광모듈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김 사장은 현지 벤처캐피털에 투자유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 광모듈을 사용할 증폭기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벤처캐피털들이 기술적인 자문을 구할 심사위원을 직접 설득키로 한 것. 설득을 거듭한 끝에 증폭기 회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뒤 상황은 달라졌다.

 펀딩에 성공한 김 사장은 지금도 펀딩을 받고자 하는 한국의 지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쁘다. 김 사장은 “현지 벤처캐피털들이 가끔 한국 창업자에 대해 문의를 해온다”며 “어떤 사람이냐, 잘 알려진 사람이냐를 묻는 질문에 잘 몰라도 ‘알아봐 주마’고 적극적으로 대답해준다”며 웃었다. 호기롭게 출발한 노베라옵틱스도 지금은 잠시 주춤한 상태. 회사내에는 여기저기 빈공간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광 시스템 시장이 냉각돼서 생각보다 회사의 성장이 느린 상황이지만 올해 안으로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김 사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순수한 한국기술로 펀딩을 받아 현지에서 시작한 회사라는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새롭고 확신있는 기술을 제시하고 승부를 거는 것이 벤처정신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오라클 본사가 있는 레드우드시티. 호수를 끼고 있는 흰색의 3층 건물에는 싱가포르계 벤처캐피털 버텍스매니지먼트에 근무하는 음재훈씨(33)가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벤처캐피털들이 투자 대상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 즉 CEO의 능력입니다.” 음재훈씨는 1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대상을 찾는 일을 한다. 업무만큼 냉철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음재훈씨는 따뜻한 사람이다. 중국, 뉴욕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새너제이에 자리잡은 음씨는 인도계, 중국계 엔지니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고 한국계 엔지니어의 모임인 KASE 부회장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투자를 결정하는 일에 어느 나라 사람이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직 기술과 사람, 시장의 가치만으로 판단할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 투자 받는 것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음재훈씨는 투자유치를 원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회사라는 색깔을 없애고 실리콘밸리의 룰에 따를 것, 기술을 포장하는 능력·언어능력 등을 강화해야 할 것, 괜찮은 CEO를 내세울 것”을 충고했다.

 스탠퍼드대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차상균 교수(44)는 세계적인 DB업체 오라클이 주목하는 사람이다. 메모리 상주DB를 개발해 티아이엠시스템이라는 벤처를 설립하기도 한 차 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매주 DB관련 심포지엄을 진행중이다. “오라클의 한 간부가 제 발표를 듣고는 회사에 와서 강의해 줄 것을 부탁하더군요.” 차 교수는 미래의 라이벌 회사에 가 숱한 질문을 받으면서 기술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다음 발표때 오라클의 연구진이 몰려와 주의깊게 살피더라는 것. 차 교수는 스탠퍼드대에 머물며 현지 자금 투자를 받은 후 국내 연구진과 함께 티아이엠시스템을 제대로 키워볼 생각이다.

 어둑해진 저녁, 사업 파트너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아이파크를 나서는 강태환(가명·33)씨는 자유로운 복장이다. 강씨는 지난 여름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몇몇 회사의 프로그램 기획을 도와주면서 창업을 준비중이다. 처음은 아니다. 강씨는 지난 98년 한국에서 XML 프로그램을 개발, 창업한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까지 시켰다.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강씨는 ‘더 늦기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모든 것을 훌훌 던져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강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사업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했다.

 첫째는 인맥. 강씨는 실리콘밸리 CEO들의 모임인 처칠클럽의 회원으로 참여하며 가트너의 전 부사장 게리 브루더 등과 안면을 텄다. 강씨는 모임에 참여하며 사업 가능성, 문제점 등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묻는다. 한국인 모임인 KIN에서 만난 피터는 훌륭한 사업 파트너가 됐다. 둘째는 비전 제시. 벤처캐피털에 사업 계획을 제시한 강씨는 2차 미팅까지 순탄히 진행시키면서 가슴에 품었던 희망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강씨는 한국에서 함께 사업했던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까봐 이름이 나가는 것을 끝내 거절했다. 미국 생활 2년여가 지난 얼마전, 아이가 생긴 강씨는 기회의 땅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새너제이(미국)=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