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사람이 경쟁력이다-中企시장은 구인전쟁중

 “취업난이라고요. 말도 안됩니다. 사람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차라리 구인난이라고 써주세요.”

 게임개발업체 D사의 김 사장은 쏘아대듯 말문을 열었다.

 김 사장은 종업원을 20여명이나 거느리고 있지만 진짜 쓸만한 인력이 없어 1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게임프로그래머, DB프로그래머, 게임디자이너 등 ‘엔지니어 모시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

 현재 개발중인 게임은 예정대로라면 이미 지난달에 시중에 출시돼야 했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보니 아직 절반도 개발하지 못한 상태. 이젠 게임을 배급하기로 한 업체 관계자나 투자자들 만나기가 겁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사장은 요즘 하루종일 사람구하기에 매달리고 있다.

 “언제 사람이 오냐”고 보채는 팀장들의 성화도 하루 이틀. 김 사장은 사람 만난다는 핑계를 대고 아예 회사밖으로 겉돌기 일쑤다.

 김 사장의 하루는 신문광고를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혹시 취업박람회와 관련한 정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에서다. 그러나 얼마 전 신문을 보다 정보는 커녕 가슴이 내려앉는 소식만 접했다.

 어느 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13개 벤처기업 공동 채용설명회에 10명도 채 안되는 학생들만 참석해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는 기사였다. 그것도 반도체 장비, 인공위성 카메라 등 이른바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대거 참여한 채용설명회여서 충격은 더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벤처열풍으로 고급인재가 몰렸죠. 하지만 불황으로 벤처가 어려워지면서 쓸만한 사람은 안정적인 대기업만 고집하는 것 같아요.”

 김 사장은 그 기사를 보자마자 잡지사와 인터넷 채용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냈다. 또 회사 홈페이지에 ‘인재를 찾는다’는 ‘대문짝’만한 팝업 광고도 새로 제작해 올렸다.

 다행히 광고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게임이 유망한 산업으로 주목받아서인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의 문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 처음 며칠 면접을 보면서 ‘과연 쓸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마디로 함량미달이었습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게임은 기본적인 기술력을 보유해야 합니다. 당장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에 투입될 인력이 필요한거죠.”

 김 사장은 게임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없는 사람을 채용해 교육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나 비용도 문제지만 당장 재교육을 담당할 사람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 사장은 출근하면 밤새 접수된 취업원서에 먼저 손이 간다고 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접수된 사람은 한명도 빠짐없이 인터뷰 시간을 잡는다. 원서접수는 하루에 많아야 두세건이다.

 김 사장은 마침 취업희망자와 인터뷰 약속 때문에 자리를 잠시 비웠다. 그리고 20여분 후에 돌아오며 고개부터 설래설래 저었다.

 “웹디자이너는 왜 이렇게 많습니까. 취업희망자 가운데 십중팔구는 웹디자이너입니다. 정부의 IT재교육 지원정책이 웹디자이너만 양산하고 있다는 기분입니다. 각 분야별로 진짜 필요한 인력이 많을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고급인력이 아니라도 게임 프로그래밍에 대해 정말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채용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김 사장은 “오늘도 이대로 기다릴 수 만은 없다”며 서류가방을 집어 들었다. 인터뷰 스케줄이 없으면 동종업계 사장들이나 지인이라도 만나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때때로 지인의 소개로 대학 동아리나 인터넷 게임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나 친척들에게 구인의뢰를 하는 것도 다반사다. 차라리 그렇게 소개받은 사람이 취업원서를 낸 사람들보다 훨씬 나을 때도 많다. 그렇게 모은 인력도 대여섯명은 된다.

 “남대문에서 김서방 찾는 기분입니다. 매일 서류가방 하나 들고 사람구하러 나가는 심정 말입니다. 며칠 전 동종업계 사장 몇명과 망년회를 같이 했는데 저처럼 사람 사냥꾼으로 바뀐 사장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김 사장은 이제 취업알선업체 관계자와 상담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게임종합지원센터나 게임관련 학원을 찾아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제도 학원을 3곳이나 방문했다.

 “게임관련 학원이 많아요. 하지만 막상 찾아가면 초보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가르치는 수준이 대부분이죠. 그래도 워낙 많으니 혹시나 하고 아직 방문하지 못한 학원들의 리스트까지 뽑아놨어요.”

 신규 인력채용도 문제지만 ‘인력지키기’도 고민이다. 가뜩이나 게임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카우트 바람이 일고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며칠 전 술자리에서 개발팀장이 “사람이 없어 일이 제대로 안돼 답답하다”며 회사를 떠날 빛을 내보여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그동안 쌓아온 정을 내세워 무마했지만 개발팀장을 볼 때마다 언제 다시 ‘폭탄선언’을 할 지 몰라 가슴을 조린다고 김 사장은 귀띔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라고 난리인데 정작 업계에는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으니 이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닙니까.”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 김 사장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한참 일하느라 정신없어야 할 오후 2시. 사무실이 아닌 길거리로 나서는 김 사장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