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원로에게 듣는다(1)-오명 정보문화운동협의회 회장

 ‘IT코리아 세계화’

 영원한 정보통신인 오명 전 장관이 임오년 벽두에 던진 IT코리아의 화두다.

 오명 전 장관은 한국의 IT산업을 세계시장에서 톱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씨를 뿌리고 초석을 다졌던 한국 정보통신산업계의 거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81년 차관으로 부임해 88년 12월 장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8년여를 체신부(현재의 정보통신부)에 몸담으면서 당시로선 생소한 용어인 정보화사회를 선창했던 80년대 통신혁명의 지휘자다. 이후 대전 EXPO조직위원장, KBO 총재, 건설교통부 장관, 동아일보 회장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다양한 이력을 거쳤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정보통신인이라고 부른다.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던 우리의 통신산업을 현재의 세계대국이라는 지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바로 오명 전 장관이다.

 국산전전자교환기(TDX) 개발 및 상용화, 전화적체 완전해소 및 전국자동화, 행정전산망의 도입, 국산주전산기 타이컴 개발, D램 반도체 개발, 컬러TV 방영 등이 그가 체신부에 재직했던 8년 동안 이루어낸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발족, 한국데이터통신(데이콤), 전자통신연구소(ETRI), 통신개발연구원(KISDI),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텔레콤) 설립 등도 그가 그려낸 통신산업의 밑그림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를 전환시대를 이끈 탁월한 행정가, 몇 안되는 성공한 장관으로 주저없이 꼽는다.

 

 ―장관께서는 80년대 초석을 다졌던 우리의 IT산업은 현재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등 선진 통신기술에서는 선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달라진 우리 IT산업의 위상에 대해 감회가 새로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모 일본신문을 보니 ‘정보화부문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5년 뒤졌다’는 칼럼이 게재됐더군요. 그리고 얼마전 전자신문을 보니 일본 NTT가 KT의 브로드밴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정말로 감회가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체신부 차관으로 부임한 81년만 해도 일본은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일본에 비해 10년 또는 5년 뒤진 기술격차를 따라잡자는 게 그 당시 모든 산업정책의 목표였습니다. 체신부 차관 취임 당시 정보화를 선창했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향후 미래에 가장 중요한 정보화에서만은 일본을 앞서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을 앞서는 분야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화에서 일본을 앞섰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대세를 이루었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전자·정보통신산업 육성은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정보화사회 이행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정보화대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70년대 후반만 해도 산업의 중심은 무기와 연관된 중화학공업에 높은 비중이 두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담당자들은 전자산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기술변화속도가 빠른 전자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과연 한국이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이같은 분위기의 전환점은 80년 9월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뤄졌습니다. 그 때 경제수석과 저녁을 같이하며 과학기술과 산업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기서 전자산업 특히 통신산업을 축으로 한 산업전자를 육성하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사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며칠후 경제수석실 과학기술담당 비서관으로 발령났고 전자산업 육성에 관심있는 소장파 학자들과 의기투합, 중화학공업에서 통신산업을 축으로 한 산업전자 육성정책으로 정부 산업정책의 틀을 바꾸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보화사회와 통신대국 건설사를 이야기할 때 장관께서 추진한 TDX 개발프로젝트는 우리 통신산업 발전에 신기원을 이룩한 전례없는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TDX 신화는 오늘날 ADSL, CDMA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TDX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오늘날 초고속인터넷 세계 최대가입자 보유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재의 ADSL코리아는 80년대 이뤄진 TDX 성공신화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TDX 개발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81년 마련된 TDX 개발프로젝트는 연구개발비 240억원의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군장비 개발프로젝트를 제외하면 10억원대의 프로젝트를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TDX 개발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외형이 아니라 당시 삼성·LG 등 재벌들이 최초로 협력해서 성공한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데 있습니다. TDX 성공을 바탕으로 400억원 규모의 4MD램 개발프로젝트가 시작됐고 국산 주전산기 타이컴 개발, CDMA 개발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TDX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나라에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TDX, 반도체, 타이컴, CDMA로 이어지는 개발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 IT산업은 이제 세계에서도 위상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우리 IT산업은 성장이 둔화되는 등 새로운 문제점이 드러나 IT산업의 미래비전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뤄낸 성과는 이제 세계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결국 우리 IT산업의 미래는 글로벌화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는 국제사회가 IT코리아를 인정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만약 세계가 ‘한국=IT리더’라는 등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과는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차원에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외국 정책입안자에 대한 전문교육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정보통신부에서 일부 진행되고 있으나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 발전시켜야 합니다. 특히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정보격차문제에 대해서는 유엔프로그램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이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한국의 IT는 세계의 공인을 얻게 될 것이고 개발도상국은 우리의 경험을 벤치마킹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계 IT시장의 맹주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80년대와 달리 민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민간과 정부의 입장은 일사불란함이 특징이었던 과거와 달리 상충할 때가 많습니다. 정부의 역할도 재정립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사실 국가를 가장 많이 걱정하는 집단이 공무원사회입니다. 그러면서도 최근 공무원사회는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커진 정보통신산업을 옛날식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관료들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규모가 커졌으면 이젠 규제를 풀고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가통제가 필요한 부분 외에는 이제 시장에 맡겨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부가 중장기 플랜을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입장이 중장기 플랜으로 명쾌하게 제시된다면 업체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입니다. 관료들이 먼저 미래를 내다보고 분명한 정책을 제시해야 잡음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들어 IT정책을 둘러싸고 부처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은 이해할 수 있지만 최근의 양상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됩니다. 선배로서 한마디 조언해 주신다면요.

 ▲IT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IT가 적용되지 않는 부처가 없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제 정부조직을 어떻게 효율성에 맞추어 재정비할 것이냐에 모아집니다. 어느 한 장관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정부 CIO를 분명히 해줘야 합니다. 만약 정부 CIO를 총리실이나 청와대에서 맡아준다면 주요 정책이 부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대원칙은 맡을 수 있는 조직, 능력이 있는 조직이 IT정책을 끌어가야 합니다. 중첩되는 부분은 정부CIO를 중심으로 위원회 형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재직 당시 추진했던 통신현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신기술을 토대로 한 신산업육성은 집권자 의지가 가장 밑바탕이 됩니다. 이제 또다시 우리 사회는 서서히 대선정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기 대통령은 정책의 주안점을 어디에 둬야 할까요.

 ▲간단한 이야기지만 일본은 IT화를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IT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IT를 충분히 이해하고 IT를 모든 정책의 중심점에 놓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작지만 강한 정부, 부정부패 없는 정부도 IT화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IT를 이해하는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좋습니다.

 ―한국 통신혁명의 산파, 한국의 대표적인 기술관료, 정보화사회의 선구자, 미러클 맨 등 많은 별명이 붙여져 있습니다. 숨가쁘실 정도로 한평생을 살아오셨고 많은 것을 경험했으며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향후 어떤 활동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원로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원로라는 표현에 걸맞은 후견자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특히 새해에는 정보통신장관모임 같은 정보통신 원로의 만남을 주선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보겠습니다. 원로모임에서 나온 의견을 꼭 정부와 민간에 전달할 것입니다. 정보통신 원로들의 모임을 기대해 주십시오.



1940년생

 1958년 경기고/1962년 육군사관학교/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2년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교 전기공학과 박사

 1966∼1979년 육군사관학교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1980∼1981년 대통령 경제비서관

 1981∼1987년 체신부 차관

 1987∼1988년 체신부 장관

 1989∼1990년 민정당 국책평가위원회 위원

 1993∼1994년 교통부 장관

 1994∼1995년 건설교통부 장관

 1996∼2001년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

 2001년 2∼7월 동아일보 대표이사 회장

 현 정보문화운동협의회 회장 

 

 *상훈

 ―제1회 전자대상 1988

 ―벨기에정부 대십자훈장 1989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1993

 ―금탑산업훈장 1994

 ―아태정보산업기구 공로자상 1995

 ―제2회 한국공학기술상(기술경영부문) 1998

 ―제6회 윤경상(산업기술부문) 2000

 

 *저서

 ―레이저응용(공저), 청문각, 1983

 ―정보화사회 그 천의 얼굴, 한국경제신문사, 1988

 ―엑스포와 미래이야기, 목양사, 1993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