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나노기술 현장을 찾아서>(1)기고-나노기술과 IT의 미래

◆토마스 테이즈 박사(IBM 물리과학 부문 연구 총괄이사)

 

 IBM의 싱크탱크인 웟슨연구소 과학기술자들은 정보기술(IT)의 기본요소가 궁극적으로 원자 및 분자 크기로 축소되고, 미래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범용 컴퓨터가 오늘날의 슈퍼컴퓨터보다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나노기술(NT:NanoTechnology)이다. 첨단 전자현미경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던 수 옹스트롱(Å:10의 -10 m) 단위의 미세 구조(1㎚는 10의 -9 m)의 설계 및 제조 방법을 연구하는 나노기술은 최첨단 전자공학은 물론 물리·화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 지식을 총동원해야 가능하다. 그런 만큼 앞으로 이 기술을 접목하면 컴퓨터는 물론 통신 각 분야에도 또 한 차례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응용분야 또한 무궁무진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정보기술(IT)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은 실리콘으로 만든 트랜지스터였다.

 특히 컴퓨터는 각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줄여서 하나의 칩에 보다 많이 집적시키느냐에 따라 성능이 결정됐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메모리 칩의 가격 하락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또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동시에 속도도 향상돼 왔으며, 새로운 PC가 구형 모델보다 처리속도가 빠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향후 10년에서 20년 내에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더욱 축소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업계에서 만들 수 있는 최소형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수백만개의 원자를 집적할 수 있겠지만 향후에는 보다 적은 원자 수를 보유하면서도 정보 프로세싱 기능을 가진 새로운 장비가 실리콘을 대체할 것이 분명하다.

 IBM은 아직은 연구소 수준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 트랜지스터를 이미 개발했으며, 현재 업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탄소 나노튜브는 탄소 원자로 구성된 소형 원통형 구조로서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탄소 원자가 배열된 방법에 따라 나노튜브는 반도체 혹은 금속이 될 수 있다. IBM 연구진은 반도체 성격을 띤 나노튜브를 이용해서 트랜지스터와 심지어 최초의 간단한 논리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IBM은 단일 탄소 나노튜브로 만든 트랜지스터 2개로 구성된 회로를 선보인 바 있다. 또 현재 업계에서 만들 수 있는 최소형 실리콘 트랜지스터보다 더 작은 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앞으로는 나노튜브 트랜지스터의 속도가 어느 정도 빨라질 수 있는지가 관심사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나노튜브 트랜지스터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만약 나노튜브 트랜지스터나 기타 새로운 나노장비가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대체할 경우 컴퓨팅 성능의 가격대가 향후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격대를 더 낮추기 위해서는 관련된 부품의 크기를 축소 제조하는 기술도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 현재 컴퓨터 칩을 제조할 때 설계자들은 칩 상에서 각 와이어 및 트랜지스터의 부품에 대한 위치·규격을 지정해야 한다. 그러나 원자 및 분자 크기의 작은 장치를 만들게 될 경우 화학 분야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탄소 나노튜브는 화학 합성에 의해 만들어지며 (엄청난 정보량을 차지하는) 각 원자의 위치를 지정할 필요가 없다. 정확한 촉매제 및 반응 조건만을 제공하면 튜브는 스스로 만들어진다.

 미래의 컴퓨터 칩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수백만개 또는 수억개의 동일하고 세밀하게 장착된 나노튜브를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이러한 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IBM 과학기술자들은 믿고 있다.

 그 결과 컴퓨터 활용 비용은 앞으로 더욱 저렴해질 것이 분명하다. 또 앞으로는 사람의 음성명령을 인식할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컴퓨터를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휴대형 장비는 물론 냉장고와 벽지, 심지어 입고 다니는 옷 속에도 넣고 다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들 기술은 미래에 우리가 일하고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을 포함한 모든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 분명하다.

 또 디지털 정보를 구성하는 비트(0과 1)도 개별 원자로 표시할 수만 있다면 컴퓨터 저장 밀도는 제곱인치당 1000조비트(1페타비트)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최고급 마그네틱 스토리지에 비해 5만배 이상 큰 규모다. 10만개 이상의 다양한 DVD 수준의 양질의 영화를 손목시계 하나에 저장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IBM은 80년대 나노기술의 첫 탄생에서부터 그 후 이를 육성 발전시키는 데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나노기술은 지난 78년 IBM 취리히연구소에 근무하는 두 명의 IBM 과학자 게르드 비니그(Gerd Binnig)과 하인리히 로러(Heinrich Rohrer) 박사가 스캐닝터널링현미경(STM)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전세계 연구소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들 두 과학자는 원자 하나하나를 보다 명확히 관찰하고 최초로 원자를 마음대로 이동시키는 STM 발명으로 지난 83년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IBM 취리히연구소 과학자들은 최근 정보저장에 대한 새로운 나노미케니컬(nanomechanical) 접근법인 밀리패드(milipede)를 연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STM의 경우 원자를 움직이는 1개의 헤드를 가진 것과는 달리 밀리패드는 하나의 실리콘 칩에 연결된 1000개 이상의 소규모 헤드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헤드는 저장 매체로 구성돼 있는 얇은 폴리머 필름에 매우 얇은 자국을 만듦으로써 정보를 작성할 수 있다.

 밀리패드는 비트당 1개의 원자 비율로 정보를 저장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최신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달성한 밀도보다 훨씬 높은 밀도로 정보를 쓰고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IBM 알마덴연구소와 웟슨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기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밀도 한계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나노구조 자기장 재료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이 모든 분야에 대해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현재 연구실에서 진행중인 단계며, 향후 5∼15년 동안 가시적인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IBM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 모든 예비 연구 작업은 향후 10년과 그 이후의 정보기술 미래상을 내다보는 데 크나큰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또 많은 새로운 나노구조 재료들이 이미 상용화되고 있으며 조만간 화학 및 생물학적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센서가 등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BM의 밀리패드 정보 저장장치도 향후 수년 내에 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또 IBM은 이미 현재의 칩 제조에도 많은 나노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실리콘 트랜지스터의 기본 규격도 머지않아 100나노미터 이하 크기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노기술을 통해 컴퓨터 산업이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인가. IBM 과학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 나노기술의 여러 측면에서 연구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IBM 비즈니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나노기술이 컴퓨터 칩 및 스토리지 기술에 어떤 발전을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가능하더라도 나노기술의 전반적이고 구체적인 미래 영향력은 여전히 미지수다.

 애니악(ENIAC) 슈퍼컴퓨터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46년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연구진이 만든 애니악은 엄청난 크기 때문에 건물의 여러 층에 이르는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리고 당시로는 가장 빠른 컴퓨터였고 거인의 두뇌(Giant Brains)라는 제목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멜로디 카드의 성능이 과거 애니악과 같은 수준이다. 애니악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거대 슈퍼컴퓨터 성능이 생일축하 멜로디 카드처럼 작아지고, 또 단 30초 동안 이용된 후 폐기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도 나노기술이 앞으로 우리 생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결코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리=서기선부장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