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나노기술 현장을 찾아서>(1)프롤로그-꿈의 기술 정복..

 나노기술(NT)이 올해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세계 각국은 나노기술을 장기적으로 집중육성해야 할 핵심기술로 삼고 예산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 민간기업들도 나노기술이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의 기반기술인 점을 감안, 나노기술을 산업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기업들도 지난해부터 나노기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전자신문사는 무한기술투자·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전세계 각국의 나노기술 현장을 탐방, 선진국의 기술개발 추세와 우리나라 정부 및 연구기관이 수립해야 할 정책·연구방향을 모색해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지난해 말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지는 한해를 정리하면서 나노컴퓨터기술을 2001년 한해 가장 주목할 만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로 평가했다.

 이 잡지는 “컴퓨터를 작게 만드는 분야에서 성취한 이 기술이 앞으로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며 “세포정도 크기의 컴퓨터가 현실화되면 환자의 몸안에 투입해 인슐린수치나 약물의 농도 등을 감시하고 때로는 약을 인체내 필요한 부위까지 직접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나노(Nano)’란 그리스어의 나노스(난쟁이)에서 유래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에 해당한다. 다소 큰 분자의 크기가 수십나노미터 정도고 다소 작은 분자는 1나노미터며 원자의 크기는 약 0.1∼0.3나노미터인데 나노기술은 이러한 분자나 원자를 조작해 새로운 소재·기수·기계·소자 등을 창출하는 기술을 통칭한다.

 미래에는 나노기술을 이용해 원자핵 주변의 전자 한두개를 움직여 작동하는 소자, 몇 개의 암세포도 검출할 수 있는 초고감도센서, 우리의 몸속을 탐사하는 초미세 로봇, 철강보다 5분의 1이나 가볍지만 10배 이상 강한 신소재 등이 나노기술에 의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초소형화의 개념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지난 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리처드 파인먼이다. 그는 59년 미국 물리학회 강연에서 원자 하나하나 마음대로 배열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언은 그 당시로서는 가설에 불과했으며 이후 80년대초 원자의 구조를 보고 조작할 수 있는 주사형검침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이 개발되면서 나노연구에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90년 IBM연구소가 니켈 금속판 위에 크세논 원자를 하나씩 늘어놓아 ‘IBM’로고글자를 새긴 것은 나노기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며 원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기를 마련했다.

 현재로서는 나노기술 적용이 가장 유망한 분야는 반도체 소자다. 기존 반도체 기술은 이미 기술적으로 제조상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노기술뿐이다. 나노기술로 만든 CPU는 펜티엄보다 100만배 성능이 뛰어나며 나노메모리소자는 단위면적당 1000배 이상 정보저장 용량 확대로 각설탕 정도의 크기에 미의회 도서관 전체자료를 저장할 수 있다.

 원자나 전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크기가 작아지면 에너지효율이 증가한다. 원자나 전자는 움직이고 작동하는 데 에너지가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 휴대형 슈퍼컴퓨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원자나 전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미래의 컴퓨터는 고장이 났을 경우에도 완벽히 재생이 가능하다.

 나노기술은 비단 컴퓨터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화학·전자공학·생명공학 등 과학의 전분야를 뒷받침해주는 기반기술이 되고 있다. 나노기술을 퓨전과학으로 지칭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나노기술이 2010년경에 기술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견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 대통령 연두교서를 통해 나노기술을 인터넷·생명공학과 함께 21세기 국가 3대 중점연구과제로 선정했다. 또 2000년 3월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National S&T Council)를 주관으로 국가나노기술진흥사업(NNI: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계획을 수립했다. NNI의 착수로 미국은 그동안 여러 부처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나노기술관련 사업들을 범부처 차원에서 조정하고 감독할 수 있게 됐다. 이 계획은 현재 나노구조체와 나노공정에 대한 기술이 시기적으로 산업계가 관심을 갖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으므로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계까지 정부가 원천기술 개발 부문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공개경쟁의 형태로 진행돼온 나노기술 관련 연구의 비효율성을 제고하고 모든 연구자원을 나노기술 관련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 사업의 발표와 함께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증가해오던 나노관련 연구비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 나노분야에 2억7000만달러를 투입했던 미국정부는 NNI를 발표한 다음해인 2001년 나노분야에 무려 4억22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어 2002년에는 4억8500만달러를 NT분야에 투자하기로 하는 등 나노분야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더욱이 민간을 포함, 미국의 나노기술 총 투자액은 2000년 20억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본도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은 미국 못지 않다. 일본의 경우 2000년에 통상산업성 1억4500만달러, 과학기술청 1억2100만달러 등 총 3억2000만달러를 나노기술 지원분야에 투입했다. 2001년에는 전년대비 41% 늘어난 3억96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나노관련 프로그램은 통상산업성이 2001년 수립한 ‘재료나노기술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7년까지 나노재료의 기반적 기술의 연구개발을 행하고 그 성과를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화 및 표준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비해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에서 기술적 약세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노기술에서만은 확실한 우위확보를 위해 소자와 재료 등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미국 및 일본과 다소 다른 나노기술개발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나노기술을 국가연구개발자원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신기술분야로 인식하고 장기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EU는 나노기술을 현재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술로 인식하고 기존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기술단계를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즉 EU의 나노기술개발정책은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달가능한 범위에 있는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하는 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전체 유럽정부가 나노기술에 투자한 규모는 1억8400만달러였으며 유럽연합 단독으로는 29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밖에 제3국에서도 서서히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2000년에 13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대만은 1500만달러, 호주는 1200만달러, 싱가포르는 1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나노기술을 차세대 핵심기술로 집중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동안 몇가지 연구개발사업을 통해 나노기술을 육성해왔다. 2000년 7월부터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소자분야인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을 선정, 향후 10년간 연간 154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이 사업은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2010년경에 예상되는 반도체 개발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반도체 분야의 선진국을 고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99년부터 차세대신기술개발사업으로 ‘고기능나노복합소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보통신부는 93년부터 선도기반기술개발사업으로 ‘나노구조반도체제작’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기술평가센터(WTEC)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나노기술 연구개발 능력은 선진국 수준의 25%에 그치고 있다. 분야별로 보면 우리나라는 나노구조체합성·소자·소재에서 각각 10점, 나노바이오 등에서 각각 6점을 받아 미국에 비해 3분의 1과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나노기술관련 논문수(1988∼1996년)에서도 우리나라는 총 30건으로 미국 2062건, 일본 649건, 독일 547건, 프랑스 505건, 영국 249건, 러시아 219건, 스페인 162건에 비해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 지난해 7월 정부가 범부처적인 차원에서 마련한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안은 10년후의 세계를 내다보며 미지의 기술과 첨단산업에 야심찬 도전을 벌이는 국가종합계획이다. 이 계획은 나노연구개발·인력양성·시설 및 장비구축의 3대 추진전략을 뼈대로 향후 10년간 정부 및 민간기업이 1조485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신기술 및 소재개발, 연인원 1만3000여명의 나노기술인력을 양성 및 재교육하고 공용연구시설 및 장비를 구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내역량를 고려해 1단계(2001∼2004년)에선 시급한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2단계(2005∼2007년)에서는 다른 분야에의 파급효과가 큰 연구에 착수하고 민간참여를 유도하며 3단계(2008∼2010년)에선 기술개발결과의 산업적 활용과 상품화에 착수키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계획이 10년후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상정해 놓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여론과 미래를 이끌 신기술을 육성시키기에는 ‘새발의 피’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도 하다.

 아직 나노기술을 활용한 대량 소비상품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10년후, 20년후에는 나노기술을 빼놓고는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보기술이나 생명기술이나 어느 것이건 간에 기술적인 키워드는 나노다. 따라서 나노기술 없이는 컴퓨터혁명이나 바이오혁명도 일어날 수 없다.

 나노기술은 비록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무궁무진한 파급효과와 응용이 가능한 기술의 보고이기 때문에 새로운 벤처 비즈니스의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