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전자에는 국내 최초·최고·최대 인쇄회로기판(PCB)업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전자산업 태동기였던 65년 단면PCB(당시는 대덕산업)를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데 이어 70년대 후반 양면PCB를, 82년에는 현재 정보통신기기의 주력 제품으로 사용되는 다층PCB를 처음으로 선보여 한국 PCB산업이 세계 5위의 생산 및 기술대국에 진입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설립이래 30년간 대덕전자가 생산한 PCB는 라디오·흑백TV·오디오·컬러TV·전화기에서부터 컴퓨터·반도체메모리·휴대폰·네트워크시스템 등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전자제품에 처음으로 장착됐고 양산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마디로 대덕전자의 역사는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대덕전자는 설립이래 오로지 PCB만을 개발·생산,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PCB 전문업체로 자리매김해 있다. 특히 대덕의 재무건전성·성장성·복리후생 등 기술외적인 가치까지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는 우리만의 평가가 아니다. 미국 포브스지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우량 중소기업 200개를 선정하는데 대덕은 국내 중소기업 중 유일하게 5년 연속 우량 중소기업에 선정됐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전자부품산업에 PCB라는 기초 말뚝을 박고 오로지 외길 30년을 개척, 대덕전자를 세계가 인정하는 PCB 전문기업으로 일궈낸 사람이 바로 김정식 현 대덕전자 회장(73)이다. 소재도 없고 기술도 없고 심지어 제품을 구매해 줄 기업도 거의 없던 산업화 초기부터 PCB라는 전자부품을 들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 결과 대덕전자는 노텔네트웍스·지멘스·솔렉트론·FIC 등 세계 굴지의 IT업체에 최첨단 PCB를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김정식 회장을 국내 PCB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대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 중국진출 등 신시장 개척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김 회장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 김정식 회장
약력
△1929년생 △1946년 조선전기공업학교 졸업 △1955년 공군대위 전역 △1956년 서울대 통신과 졸업 △1958년 대영전자 대표이사 △1965년 대덕산업 대표이사 △1979년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 △1985년 히로세코리아 대표이사 △1986년 대덕산업 회장 △1989년∼현재 대한전자산업진흥회 부회장 △1991년∼현재 해동전자기술진흥재단 이사장 △1996년∼현재 서울대 총동창회 및 서울대 공대 동창회 부회장 △현 대덕전자 대표이사 회장
△상훈=1975년 기술개발 상훈 상공부 장관상, 1979년 은탑산업훈장, 1982년 기술개발유공 국무총리표창, 1985년 1천만불 수출탑, 1990년 동탑산업훈장, 1993년 전자공업대상, 1993년 5천만불 수출탑, 1994년 경제정의기업상, 1997년 TDX 1000만회선 돌파 유공자 국무총리표창, 1998년 1억불 수출탑, 1999년 조세의 날 모범납세자 대통령표창, 1999년 전자산업 40주년 기념 금탑산업훈장, 2000년 경제정의기업 대상, 2000년 2억불 수출탑, 2001년 자랑스런 가톨릭경제인상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전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올해 전자부품업계는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같은 난관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국내 전자부품업계에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새해부터는 IT경기를 위시한 세계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3분기나 돼야 세계 IT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IT부품의 재고소진 진척정도와 선진국 IT업체의 구조조정 마무리 여부도 관건이 되겠지요. 다만 반도체·LCD 등 대표적인 IT경기지수 부품수요가 서서히 늘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우리 부품업계는 세계적인 IT경기 버블이란 복병을 만나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지금도 그 시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해 국내 전자업계는 물론 모든 국민에게도 최우선 아젠다는 ‘다시 해보자’는 정신과 각오라고 봅니다. 70년대 ‘잘살아보자’는 정신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라를 일으켜 세웠듯이 지금 우리는 다시 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사느냐 죽느냐만 남은 절박한 시점입니다.
―좀 지나친 위기의식 같은데 그 정도로 국내 전자부품산업이 처한 상황이 벼랑끝입니까.
▲다른 전자부품도 마찬가지지만 PCB도 장치산업입니다. 하루가 급변하는 IT기기의 기술 발전추세에 대응하려면 초기투자가 최소 1000억원 이상 소요됩니다. 그런데 하도 기술 진보속도가 빠르고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 투자시기를 잡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투자 결정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잘못된 투자를 다시 번복하면 됐으나 이제는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월드컵 축구처럼 한번 경기에 지면 그만입니다. 재경기는 이제 없습니다.
기술개발과 투자는 경영자의 몫이지만 생산성도 문제입니다. 주위에서 중국, 중국 하길래 노조 간부들과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중국은 인건비가 우리의 2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제조업에서 중국과 경쟁하기는 이제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자부품업체들이 중국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국경이 없는 글로벌 경제시대 아닙니까.
―중국 이야기나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중국이 세계 전자부품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국내 세트업체 및 부품업체들이 대중국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강력한 경쟁 상대이자 거대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중국은 이제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WTO 가입이후 중국은 분명 우리의 최대 시장이 될 것입니다. 반면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만 해서는 안됩니다. 원칙에 충실하면 중국의 벽을 넘어 무한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칙이란 한발 앞선 기술개발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일본 경제평론가 오마에겐이치의 지적대로 우린 사실 고유기술이 별로 없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지요.
―중국진출과 관련,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공동화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데요.
▲중국이 기회의 땅만은 아닙니다. 일본을 보세요. 핵심기술과 연구개발은 본토에 남겨두고 후공정, 단순조립만 중국으로 이전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일본의 지혜를 배워야지요.
또 중국방문시 중앙정부 및 지방 성장 등 중국 관리들의 세일즈 정신에 감복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중국 관리들은 정말 세일즈하는 자세로 한국기업을 대하더군요. 모든 행정편의는 물론 비즈니스 전망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정말 중국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화제를 바꾸어 대덕전자는 설립 이래 30년간 줄곧 PCB사업에만 주력, 오늘날 국내는 물론 세계 굴지의 PCB 전문 메이커로 자리매김해 업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외길경영을 고수해온 비결은 무엇인지요.
▲저는 이 사업을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일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PCB사업만큼 기술이나 상품이 빠르게 변하는 사업은 없다고 봅니다. 항상 앞서 기술을 연구하고 고객이 요구하는 상품을 개발하다 보면 다른 것에 눈을 돌릴 틈조차 없습니다.
―현재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인터넷·디지털로 대표되는 신경영조류로 인해 심각한 경영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고 봅니다. ‘변신이냐 전문화냐’는 근본적인 경영화두부터 글로벌화·e비즈니스 등 여러가지 경영난제가 밀려들고 있지요. 이같은 신경영 패러다임에 대처하는 방안은 무엇이라 보는지요.
▲경영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기업의 경영패러다임도 변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나 기업경영의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기술과 품질, 고객만족은 경영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변하고 경쟁이 심화된다고 해도 오히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경쟁력을 갖게 되고 생존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일례로 지난 IMF때 국내 대부분의 전자부품업체들은 투자를 줄였습니다만 대덕전자는 창사이래 가장 큰 투자를 실시했지요. 앞으로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빌드업기판이라는 초미세패턴 PCB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보았지요. 운이 좋았는지, 이 투자전략이 적중해 대덕전자를 먹여살리는 효자상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사업다각화 등 여러가지 유혹과 변신 기회가 많았을 것으로 보는데요.
▲유혹도 있었고 어려움도 많았지요. 선도기업의 어려움은 벤치마킹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성과 도전의욕이 없으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지요. 기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위기의식으로 경영을 했습니다. 망할 수 있다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내실을 다져가면서 경영을 했습니다. PCB사업에는 내년이 없습니다. 오늘 거래하는 구매선이 내일 오더를 주지 않으면 그 날로 끝입니다. 30년을 그러한 심정으로 경영하다 보니 이제 체질화된 것 같군요.
―인터넷·벤처바람으로 기존 전통 전자부품업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혹은 소외감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요. 또 전자부품 등 전통제조업에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제 기업의 생존은 기업 스스로가 대처해야 합니다. 정부가 할 수 있다면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지요. 노사정책 등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을 배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제조업은 신념입니다. 저는 평생 이 신념을 갖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PCB를 할 것 같군요.
요즘 벤처로 성공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래 기업을 운영해온 사람으로 한마디 한다면 제발 집념을 갖고 밀고가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탕주의·요행주의보다는 멀리 보고 사업을 했으면 합니다. 최소 3년 이상 사업을 하다보면 남는 게 있어요.
―지난 30년을 회고해 볼 때 가장 어려웠던 시기와 보람있던 기억은 무엇인지요.
▲누구나 사업초기에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70년초 일본서 기계를 들여와 PCB를 만들었는데 팔 곳이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샘플 수준에 그쳐 정말 사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가전용 PCB를 생산하는 대덕산업(현 대덕GDS)이 있어 위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보람이 있었다고 하면 78년 국산 전전자교환기용 PCB를 국산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지금은 부품 중에서 반도체를 빼면 PCB의 비중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대덕전자도 대덕GDS를 포함, 6000억원 정도의 외형을 갖게 됐구요.
―세계 전자산업 및 PCB산업은 이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출현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보는데 대덕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라 보는데요. ▲PCB산업은 항상 새로운 기술과 상품에 발빠른 도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자력을 가져야 합니다. 21세기초부터 PCB산업은 기술과 시장, 경쟁에서 급속한 변화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하면 됐으나 이제는 일본과 우리가 동시에 갑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정말 경영자의 결단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제 국내 PCB업체도 세계 굴지의 전자·정보통신업체와 거래하는 시기에 접어들었고 세계적 구매력을 갖고 있는 전자전문제조서비스(EMS)의 출현은 PCB업계에 도전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고 보는데 회장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물론 EMS의 출현은 기회이자 위기도 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경쟁력입니다. 기술, 품질, 서비스, 납기, 코스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특히 중국 PCB산업의 부상은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 문제는 올해 저를 포함해 국내 전자부품업계가 가장 고민해야 할 화두인 것 같군요.
<정리=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