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서구문명의 대표적인 국가 미국에 테러가 가해졌다. 수천명이 사망하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내렸다. 테러를 가한 측에서는 적진의 중핵을 공격함으로써 상대에게 치명타를 날리고자 한 의도의 결과에 환호했고, 테러를 당한 미국 측에서는 자신들의 무너진 자존심 회복을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낯선 눈물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해 버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잿빛으로 만들었고, 화해와 공존을 바라는 인류의 기대를 저버리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세계사는 국가간 대립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마치고 이제 문명의 대립단계에 들어섰다”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론이 주목받았다.
냉전의 갈등이 사라진 후에도 일상적인 삶의 세계는 조금도 더 안전해지지 않았고, 다극화·다변화한 갈등과 혼란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 서구인들에게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파고들었다. 미디어시대에 걸맞는 단순한 논리와 실시간으로 중계된 테러에 대한 대중적 공포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깊이 파고들었다.
93년 발표된 ‘문명의 충돌’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러시아정교와 이슬람, 힌두 문화와 이슬람 문화,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 등의 갈등이 국지적 차원에서 대립과 전쟁의 원인이 되고 향후 세계에서 국가·지역·민족 단위의 문화(문명·종교)는 갈등과 대립의 원인제공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명간 경계를 명확히 하고, 다른 문명과 만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정치만이 숙명적인 전(全)지구적 대결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서구문명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유교와 이슬람 문명권이 동맹을 맺는 악몽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 예측의 결과로 나타나는 각 문명간 충돌은 강력한 대립과 다층적인 영토분쟁,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때문에 결국 온 지구를 핵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진단 후에 마지막 장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즉 문명간 협력, 특히 서구문명간 협력과 단결을 언급한다. 그래야만 서구문명이 계속 세계 패권을 쥐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팅턴의 진단은 가혹하다. 끔찍한 시나리오다. 이런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론에 대응해 프랑크푸르트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헤센평화및갈등연구소장인 하랄트 뮐러는 98년 ‘문명의 공존’을 통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문명의 공존’은 제목에서 보여지듯 ‘문명의 충돌’에 대한 집요한 반론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랄트 뮐러는 헌팅턴의 분석이 가진 의미와 유용성은 옛 냉전시대의 이분법과 똑같은 질서를 현재의 세계에 부여하는 단순함이라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계속 돼온 ‘우리대 그들’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라는 변화의 회오리 속에서 지속적인 변혁에 대한 불안과 도전에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이정표로 ‘문명의 충돌’이 환영을 받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은 현실을 왜곡시키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이제 그 부분에 대한 경고를 발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문명의 충돌’의 선구자이자 출발점인 현실주의는 무질서한 혼란상황의 국제관계에서 권력의 획득을 위한 군사력의 증식,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동맹과 조약의 빈번한 체결을 통해 살벌한 세상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이며 전쟁을 통해 세력 불균형의 수정이 이뤄지게 되는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하랄트 뮐러는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말하는 서구문명은 가설에 함유된 오류를 점검하기 위해 소위 중립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의뢰인에게 유리한 물증만을 수집하고 불리한 반대 증거는 관대하게 무시하는 변호사와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학문의 옷을 입은 흑백논리, 미디어사회가 요구하는 간편한 진리와 해석의 도식으로 치장한 것이 바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며, 고전적인 정치의 옛 형식 안에 문명의 측면을 부어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 불필요한 이론이라고 역설한다. ‘문화패권’이 아닌 타문화의 존재와 고유가치를 인정하며 헤게모니적 지배욕구를 내세우지 않고, 인류 전체의 적응력과 유연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소통능력이 강화된다면 문명간 공존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충돌 방지와 완화를 위한 하랄트 뮐러의 대안은 명확하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서는 안정과 개방이 핵심이며, 전인류에 대한 소통능력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지식은 적대적 대결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대화에도 중요한 것이며, 그 대화를 위한 소통능력의 강화가 상호 문명간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충돌과 공존. 현상황에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문명 상호간 공존이 좀더 바람직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존의 조건으로 제시된 소통능력의 강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랄트 뮐러는 각 문명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그 차이를 보편화할 수 있는 매체, 공존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는 정보통신이라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상호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정보통신의 활용성 확대를 통해 각 문명의 객체와 객체가 대화를 나누고,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게 될 때 문명간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급과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모든 나라가 전화를 비롯한 정보통신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각 문명의 공존의 조건인 통합된 소통능력의 확대는 기존 정보통신 시설과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하랄트 뮐러가 말한 인류의 소통능력이라는 것은 매체의 활용일 뿐 정보통신 시설과 기술 자체는 아니다. 각 문명의 차이처럼 소통수단 강화를 위한 정보통신 매체에도 시설과 기술에 차이가 있고, 이는 각 문명간 원활한 소통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서 급진적이고 과감한 새로운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구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기존 정보통신 매체가 아닌 새로운 네트워크의 개발이다. 정보통신 시설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 그것은 인터넷이다. 활용 여부에 따라 모든 통신망을 통합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공존을 위한 활용도구로서의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록 우리의 순수한 기술이 아닐지라도 사용자 측면에서의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세계 최고의 밀집도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은 전세계의 통신사업체가 주목하고 있을 만큼 새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지금의 결과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뤄졌다. 국내 사업체간 경쟁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통신사업체도 경쟁 대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세계의 유수 통신사업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우리의 인터넷사업에 관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우리가 이룩해 놓은 초고속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개발한다면 하랄트 뮐러가 제시한 인류 공존을 위한 소통수단으로서의 매체를 우리가 주도하고 조율할 수 있다. 기존 PSTN의 진화(NGN)가 아닌, xDSL 자체를 가입자로 활용하는 인터넷전화망(VoIP)을 구성해 PSTN과 PCS 등 모든 통신망을 통합하는 전혀 새로운 네트워크(NNGN)를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환경은 우리나라가 유일하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보통신사업에서의 선점은 성공의 절대조건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말 기다릴 시간이 없다. 먼저 봤으면 먼저 결단을 내리고 먼저 행동해야 한다. 1년 후도 예측이 안되는 것이 인터넷사업이다.
임오(壬午)년 새해, ‘메가패스 장군’을 통한 전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대해본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