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한국벤처연구소 소장, 한양대 교수)
한국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후반기에 구상돼 김대중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돼 왔다. 현재 벤처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 코스닥 시장의 설립,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 등은 96년과 97년에 이뤄진 것이다. 현 정부의 벤처정책은 기대밖의 성공과 함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벤처발전을 향한 올바른 정책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벤처가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는 시장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강력한 정책드라이브에 의한 육성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타난 역기능 현상이다. 벤처생태계의 급팽창 과정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높이기 위한 실행위주의 정책은 활발했지만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전략적 브레인 기능과 정부부처간 조정기능이 결여돼왔다. 또 신경제와 인터넷에 대한 과잉 기대심리가 작용했고 그 결과 과잉투자가 이뤄졌다. 부동자금이 벤처로 몰리면서 자금의 공급과잉과 함께 벤처거품이 형성됐다. 이러한 거품에 편승해 치밀한 사업계획이나 확실한 수익모델 없이 창업하거나 기술개발과 혁신보다는 머니게임에 몰두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벤처기업의 투명성 결여와 시장감시기능의 취약으로 인해 작전세력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또 코스닥의 급락은 많은 투자자들의 손실을 가져왔고, 이는 반 벤처정서와 맞물려 현 정부의 벤처정책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초래했다.
차기 정부는 벤처생태계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시행착오를 수습하면서 보다 건전한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산업계와 협력해 벤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시장의 신뢰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소수의 사례를 확대 해석해서 벤처업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벤처업계도 바람직한 경영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확산해야 한다. 혁신성·유연성·투명성·창조성·효율성·도전정신·윤리의식 등의 바람직한 가치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기업에 체화시키고 사회적인 규범과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적 지원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전략으로서 벤처정책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활성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벤처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큰 첨단기술이나 신기술 기반사업에 도전해 창의성과 혁신을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의 발현이다. 또한 세기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식경제사회에서 사회의 발전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성장엔진이다. 따라서 일시적 혼란과 위기가 있더라도 이를 과감하게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정책의지가 필요하다.
셋째, 시장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벤처캐피털의 사이클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투자와 회수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벤처투자 재원으로서 장기적 안목의 안정적인 자금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제도적 보완을 통해 연기금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또 회수시장으로서 인수합병(M&A) 시장의 역할이 보다 확대돼야 하며 기술거래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이와 함께 코스닥 시장의 건전성이 회복돼야 한다. 주가조작 등 각종 불·탈법행위를 신속히 파악, 차단하기 위한 감시 시스템이 바르게 작동해야 한다.
넷째, 벤처지원육성의 제도적 기반이 발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설립돼 있는 창업보육센터의 전문성 강화 및 기능확대가 요구된다. 즉 벤처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정보제공, 경영상담, 기술상담, 자금알선, 교육훈련, 실험실습 인프라 제공 등 가치창출 기능이 보완돼야 하며 대학·국공립연구기관·지방자치단체·금융기관 등과 네트워크 형성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대학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선후배간 네트워크 구축, 실험실 벤처 등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벤처 글로벌화 전략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협소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수출 및 해외직접투자를 통한 글로벌 시장확대가 필요하다. 중국의 약진을 비롯한 해외 시장의 변화가 가져오는 기회 및 위협요인을 평가해 시장별로 효과적인 진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또 현지 전문가 네트워크의 구축, 현지 지원센터의 기능향상을 통해 해외진출의 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
이러한 전략들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실행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정책브레인 기능과 조정기능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전략과 연계된 중단기적인 실행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벤처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수반한 복잡성이 높은 사회현상이다. 따라서 현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효과성이 높은 정책처방을 제시해야 하며, 정책부서간 조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엔 벤처전문인력의 양성과 조사연구 기능의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