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비롯해 한해를 보내고 맞는 연말연시와 함께 하는 겨울방학은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요란하고 멋진 휴가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겨울방학은 이 요란스러운 휴가에 동승하려는 영화들의 대회전이 예고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올 겨울방학, 그리고 새해 벽두의 격돌은 공교롭게도 팬터지 장르의 영화 두편으로 모아지고 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가 그것이다.
두 작품의 격돌은 마법(해리 포터)과 상상적 신화(반지의 제왕)의 세계를 다루는 팬터지 장르라는 공통분모의 토대위에서 2년에 걸쳐 겨울방학 시즌에 나란히 개봉돼 자웅을 겨룬 작품이다. 이때문에 언론매체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해리 포터’보다는 늦게 개봉했지만 ‘반지의 제왕’은 겨울방학 시즌 최대의 화제작이다. 팬터지 장르를 열었다는 원작인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명성을 후광으로 삼아 최고의 시각효과와 3500억원이라는 최대의 제작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스펙터클이라는 이 영화의 홍보문구, 그리고 ‘어드벤처의 시작은 반지의 제왕뿐’이라는 조지 루카스의 코멘트는 과장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반지의 제왕’의 화려하고 압도적이며 웅장한 이미지는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매혹을 깊이 각인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가상의 현실이 구현된 광경은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신화의 시대, 인간과 요정(엘프), 난쟁이(드워프)와 난쟁이보다 더 작은 종족 호빗, 그리고 마법사와 몬스터가 등장하는 중간계(middle earth)가 시공간적 배경이 된다.
이 중간계는 실제하지 않는 오로지 톨킨의 상상력에 기반한 세계다.
피터 잭슨 감독은 톨킨의 세계를 스크린위에 정교하고 장엄하게 재현해 놓았다. 이로써 B급 호러의 괴짜감독 피터 잭슨은 창조주 톨킨의 대리자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검증받게 된 셈이다.
작품내용은 절대악의 힘을 부활시키는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인간과 요정, 호빗과 난쟁이로 이뤄진 반지원정대가 조직돼 모험에 나서고 그 와중에 직면하게 되는 악의 무리와의 힘겨운 싸움이 골격을 이룬다.
골격만 보면 진부하고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선악의 대결구도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선과 악에 대한 선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절대악을 상징하는 반지에 대한 다양한 존재의 반응을 제시함으로써 미묘한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드러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반지로부터 강한 유혹에 시달린다. 신비롭고 위대한 요정의 여왕조차 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반지의 힘은 무정형이며 그 인물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욕망을 자극하는 데 있다. 그래서 요정의 여왕은 세상을 더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반지의 유혹에 빠질 뻔하고, 인간 군주는 자신의 백성을 악의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 반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반지는 곧 그 인물을 장악해 버림으로써 악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호빗종족의 프로도(엘리야 우드)만이 반지를 파괴할 사명을 부여받고 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탱해 나가는 것은, 그가 먹고 담배 피우고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온순하고 낙천적인 종족이기 때문이다. 호빗종족의 그같은 성향이야말로 권력이나 권위, 현시욕같은 것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신화적 상상력,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가상의 이미지들의 거대한 향연이다. 러닝타임 3시간이 조금 부담스럽고 3부작 시리즈물인 까닭에 이야기의 완결이 아니라 거대한 신화 및 전설에 대한 프롤로그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시대 웅장한 신화 하나가 창조되는 데 있어 그쯤은 접어둬도 괜찮을 듯싶다.
영화평론가 조혜정 수원대 교수 chohyej@hotmail.net
새해를 맞이해 e엔터테인먼트 M&M면에 격주로 게재되는 외고가 ‘조혜정의 시네마떼크’와 ‘임진모의 음악리서치’로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기존 ‘엄용주의 영화읽기’와 ‘이기원의 악학궤범’은 폐지됐습니다.
새로운 필진인 조혜정은 현재 수원대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이며 임진모는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