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작과정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주부터는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과 그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애니스토리’를 연재키로 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그동안 인기를 모았거나 제작중인 국산 애니메이션의 탄생 배경과 제작 노트를 자세히 소개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내가 처음 DDS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개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 감독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시놉시스 개발이 끝이었다. 속된말로 프로젝트가 엎어져 버렸다. 그 후 나에게 런딤 극장판 감독일이 새로이 주어졌으니..., 개 대신에 로봇인 셈이었다.
3D 작업은 처음인데다가 극장판 작업 역시 처음이었다. 물론, 3D 작업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긴 했지만 처음하는 작업에 어찌 두려움이 없겠는가.
나에게 감독일을 맡겼을 때는 작품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3D에 대한 무지도 ‘당신이 책임지시오’하는 것이었다. 내 몫의 책임을 다하고 감독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책무였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 난 런딤과 함께 치명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런딤은 이미 13부작 TV시리즈로 제작중인 작품이었으므로 원작을 극장판에 맞는 포맷으로 바꾸는 작업이 선행됐다. 13부작 런딤 콘티는 내무릎을 조금 넘는 높이였다. 그 많은 콘티를 싸들고 감독과 작가 둘은 각색작업에 착수했다.
여름방학 개봉을 목표로 한 작업. 원작에는 죽은 걸로 설정된 주인공의 어머니가 재등장하고 악역을 담당한 여자 캐릭터를 비정한 미혼모로 만들기도 하고..., 가계사를 뒤바꿔 놓고, 그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며 작업을 진행시켰다. 하지만,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하는 건 불가능했다. 기존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작업을 진행할 때 마땅한 회의공간이 없는 관계로 우리는 작가집에 칩거하다시피 하며 일을 진행했다. 그 작가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우리 때문에 자리를 피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는 동생과 식사 한 번 하자고 얘기해놓고 결국은 밥 한끼 못 사주고 말았다.
작가들은 시나리오에, 나는 콘티정리에 매달렸다. 가위질에 익숙해 있던 나는 죽일 부분은 가차없이 잘라 쓰레기통으로 집어 넣었다. 나는 굉장히 빠른속도로 일을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숙달된 가위질은 노련한 칼질 앞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예전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작가 하나는 노련한 칼질로 내 가위질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무뎌진 칼날을 똑똑 잘라가며 어찌나 빠르게 칼질을 하던지..., 가위보다 칼이 한 수 위라는 사실을 그 때 실감했다.
1차 콘티 작업이 끝난 후, 우린 콘티에 따라 가편집을 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신(scene) 브레이크 다운작업이 선행돼야 했다. 신 브레이크 다운작업 중 엑셀에 익숙하지 않았던 작가는 졸음에 겨운 나머지 클릭을 잘못하여 ‘내림차순 정열’을 꾸욱 눌러 버리기도 했다. 번호대로 정리돼 있던 신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만 것이다. 밤샘 작업한 작가는 사색이 되었고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결국 클릭을 잘못한 작가가 해결을 봤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베타 편집 작업을 위해 우리는 여의도로 건너갔다. 우리는 작업을 빨리 끝내고 63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앉아 한강도 바라보고, 차도 마시자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그 낄낄거림은 한숨으로 변하고..., 우리는 모니터와 편집실의 방음벽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왔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1차 시나리오가 나오고, 우리는 리딩작업을 했다.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극 중 캐릭터 유미라가 강두타에게 ‘대장님 갈까요’라는 대사를 한다. 그런데 작가는 ‘갈까요’를 ‘길까요’로 잘못 타이핑해 우리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했다.
기어서 가든, 뛰어서 가든 우리는 앞으로 행진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우리 스태프들은 런딤을 ‘달려라 딤’으로 부른다. 하지만 정작 달리는 건 로봇이 아니라 우리 스태프들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하며...,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극장 개봉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마라톤 완주길에 오른 것이었다. 실제작과 후반작업에서 어떤 난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예상도 못한 채...
<디지털드림스튜디오 한옥례 감독 cartoony@dds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