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너나 할 것 없이 움츠린 모습이다.
그러나 1월 비디오시장은 따뜻한 작품으로 가득 차있다.
휴먼 드라마를 비롯해 블록버스터, 코미디, 호러, 에로 등 장르도 다양하다. 겨울방학 기간이라 볼 만한 애니메이션이 그 어느때보다 다양하다.
게리 마셜 감독의 ‘프린세스 다이어리’는 경기침체와 가치관 혼란에 빠진 요즘 우리에게 ‘세상에 뭐 신나는 게 없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소방서를 개조한 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여섯살의 미아는 푸석푸석한 곱슬머리에 친구들 앞에서 변변히 말도 못하는 왕따 소녀.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제노비아왕국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 ‘귀여운 여인’으로 줄리아 로버츠를 단박에 신데렐라로 띄워 올렸던 게리 마셜 감독의 또 다른 역작이다.
‘잉글리쉬 브라이드’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젊은 군인들과 맺어졌던 전쟁신부들의 사랑과 고난을 그려낸 휴먼드라마다.
릴리는 전투중 휴가를 나온 캐나다 군인 찰리와 눈이 맞아 결혼하지만 그의 허풍에 속았다는 걸 깨닫는다.
전쟁나간 남편의 시골 촌구석엔 척박한 농장과 심술맞은 시어머니 그리고 장애인 시누이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남자의 거짓말, 후회해도 소용없는 현실, 고부간의 갈등, 속아 넘어간 여자, 영화 후반부 남편과의 갈등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하는 정서가 담겨있다.
공포영화의 거장에서 갑자기 사회로부터 격리돼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 감독의 삶을 그려낸 ‘갓 앤 몬스터’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제일스 왜일은 한때 세계적 거장으로 칭송받는 감독이었지만 동성애 문제로 불명예 은퇴한 뒤 은둔생활을 한다. 그런 그에게 젊은 한 남자가 나타난다.
동성애 등 인간의 내면속 갈등과 현재의 상황이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고통, 그리고 구원의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여준다.
연극무대에서 명성을 쌓은 이안 맥컬린의 연기가 압권이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왕의 춤’은 보기 드물게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
열네살의 어린 왕 루이14세는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 륄리가 만든 무곡에 맞춰 춤을 춘다. 루이는 자신을 위해 작곡하고 자신의 춤을 돋보이게 하는 륄리는 총애하는데….
음악이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프랑스식 전통을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제공하는 작지 않은 이점이랄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겨울방학 아이들과 함께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장르다.
월트디즈니의 야심작 ‘아틀란티스-잃어버린 제국’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이전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화 같은 그림도, 코믹한 캐릭터도, 감미로운 선율도 없다. 하지만 인디애나 존스식 액션 어드벤처의 모험이 화려하다.
사라진 언어를 연구하는 마일로사지가 수천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은 전설의 제국 아틀란티스를 찾아나선다. 전통적 애니메이션에 입체영상을 결합한 이 영화는 시각효과면에서 그 어느 애니메이션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뭐니뭐니 해도 블록버스터 작품을 선호하는 마니아에겐 ‘혹성탈출’과 ‘쥬라기공원 3’가 제격이다.
‘혹성탈출’은 프랭클린 섀프너 감독과 찰턴 헤스턴 주연 68년작의 2001년판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배트맨’ ‘가위손’을 연출한 할리우드의 괴짜감독 팀 버튼이 연출했다.
‘쥬라기공원 3’는 ‘주만지’로 잘 알려진 조 존스턴 감독의 가족영화.
초반에 공룡이 사람을 죽이는 몇 장면이 나오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인물위주의 묘사에 치중, 영화 내용이 상대적으로 밝은 편이다. 자극적 묘사를 크게 줄였으면서도 이야기 자체를 가족영화처럼 새롭게 단장했다.
작품성 뛰어난 우리 영화로는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상고를 졸업한 5명의 스무살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일상을 올망졸망 엮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 앳된 여학생이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사회생활이라는 삶의 적응과정을 여성특유의 심리로 꿰뚫어보는 여성심리 해부극이다.
한일 공동제작의 ‘고’는 빠른 리듬의 신세대 감각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제일동포 3세이자 고등학생인 스기하라는 어느 곳에서도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든 싸움꾼이다. 복서 출신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23전 전승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야쿠자가 찾아온다.
영화속에서 그의 성장기는 군더더기 없이 빠른 리듬을 타고 흘러가고 이방인의 내면과 성장기의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려진다. 지난 2000년 일본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3세 가네시로 가즈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밖에 ‘이한치한’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공포물이나 스릴러물을 골라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발렌타인’은 대중에게 공포와 스릴을 주는 일종의 마조히즘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