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기업들은 연구개발(R&D)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 후지쯔 본사 전경. 원내는 필자.
최근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기초연구를 수행하기보다는 이를 대학에 맡기고 그 결과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쓰쿠바대학 조형물 앞에 선 필자.
불황이 길어지고 경제 사정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짐에 따라 일본의 기업은 연구개발(R&D)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로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국가간 경쟁을 기술력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관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최근 R&D 투자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기초연구에 대한 직접투자를 줄이고 응용연구를 증가시키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일본 기업이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비율은 90년 6.4%에서 99년에는 5.8%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미국은 4.3%에서 7.1%로 상승했다. 이는 일본 기업이 기초연구를 줄이기보다는 자사에서 담당할 수 없는 기초연구를 대학과 국립연구소에 맡기거나 대학·국립연구소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영의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R&D 전략을 재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외 타업종 기업과의 전략적인 제휴를 모색하며 사내벤처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 많아졌다. 물론 동종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는 회피하고 있다. R&D 전략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재의 확보인데 최근에는 해외연구소 운영을 통해 해결책을 구하고 있다.
자본금이 500억엔을 넘는 대기업의 45.1%가 해외연구소를 갖고 있다. 해외연구소 설립 지역으로는 미국이 가장 많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 연구소를 갖고 있는 국가 중 일본이 251개사로 가장 많으며 2위 그룹인 영국과 독일의 2배 정도로 일본의 미국 의존도를 짐작케 한다. 해외에 연구소를 설치하는 이유는 해외 수요에 대응하는 제품 개발, 인재 확보, 정보 입수 등이다.
일본 기업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활동에 있어 생명기술(BT)과 정보기술(IT) 분야는 구미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의약품과 소프트웨어 등 10여종의 첨단기술에서 일본이 미국에 앞서 있는 분야는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이들 분야에서 국가의 전략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는 전업종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으나 최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맹렬히 추격하고 있어 세계 선두기술대국인 일본이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나노기술(NT) 분야는 연구 테마의 폭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 및 국립연구소와 산·학·관 연계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대기업의 대부분이 NT 분야에서 산·학·관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대학공동연구센터와 기술이전기관(TLO)을 통한 대학과 중소기업의 협력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대학의 연구성과를 민간기업에 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98년 ‘대학기술이전촉진법’이 시행된 후 현재 전국적으로 23개의 TLO가 운영되고 있는데 대기업의 경우 TLO의 활용도가 높고 중소기업은 낮지만 최근 벤처붐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중소기업과 대학의 공동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우리나라처럼 전반적인 학생의 자질 저하와 관련해 젊은 연구자에 대한 기업의 평가가 엄격해지고 있다. 대학 졸업생의 자질 저하는 과학기술에 관한 기초지식을 비롯해 적극성·패기·독창성·창조성·탐구심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기업연구관리층은 젊은 연구자의 자질 저하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기업가들은 독창성과 창조성이 풍부한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해 대학 교육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실험실습 위주의 교육을 강조한다. 기초지식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창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마련된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 젊은 연구자의 질적 개선방안을 포함시키는 등 신규인력의 질적 향상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고급인력이 부족한 편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민간기업에서 여성 연구자의 활동공간이 아직은 넓지 않다. 여성 연구자의 비율이 2% 미만인 기업이 절반 정도며 여성 연구자가 10% 이상인 기업은 20%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가연구기관도 마찬가지여서 여성연구자의 비율이 평균 9%로 여성인력의 활용이 미진한 편이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IT를 연구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T 없이는 세계 각국과의 정보교환이 어려워 최신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구성과를 DB화하는 기업이 많으며, 폭넓은 연구영역의 기반이 되는 NT의 대두와 테마의 세분화는 연구현장에서 지식공유를 촉진시키고 있다. 기업연구의 효율화에 IT가 크게 공헌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최광학 주일과학관 stcounsl@sepia.ocn.ne.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