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7)정근모 호서대총장

 

 “21세기 과학기술계의 최대 이슈는 융합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분야만을 고집하는 전문가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고유의 전문성을 갖고 팀워크를 낼 수 있는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과학기술계의 숙제입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과학자 정근모 호서대 총장(64)이 새해 과학기술계에 던진 화두다.

 정 총장은 한국 과학기술인력의 배출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한국과학원(KAIST)의 주춧돌을 놓았으며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번이나 역임하며 과학입국을 이루기 위한 정책적 틀을 마련했다. 그는 현재 호서대 총장,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헤비타트) 이사장, 한국위험통제학회 초대 회장 등 국내에서뿐 아니라 미국 국립공학한림원 회원, 스웨덴 왕립공학한림원 회원, 세계원자력한림원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과학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위대한 과학자보다는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불리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신앙인으로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 총장은 “지금은 과학기술 한 분야에 매진한다고 존경을 받는 과거와는 다르다”며 “이제 과학기술인 스스로 과학이라는 폐쇄된 울타리에 안주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사회지도층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후배 과학인들을 격려했다. 임오년 새해를 맞아 정 총장으로부터 한국 과학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들어본다.

 

 ■대담=양승욱 생활전자부장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를 맞는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큰 틀에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20세기는 사실 과학선도 기술개발의 시기였습니다. 물리학의 오랜 숙원을 양자론·상대성이론 등으로 해명했고 생명과학에서는 DNA의 구조를 규명하는 쾌거를 이뤘지요. 한마디로 분석의 세기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이렇게 밝혀진 기술이 생활속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생활가치화가 최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적용·응용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입니다. 기술은 사실 가치중립적입니다. 어떻게 쓰느냐, 즉 약이 되게 하느냐 독이 되게 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지난해 9월에 일어난 사상초유의 테러사태는 기술문명의 한계와 어려움을 최대로 부각시킨 것이었다고 봅니다. 사건의 발단은 테러리즘이었지만 정보화와 과학기술의 성과를 맹신해온 데 따른 폐해가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이제 테러리즘이 아니더라도 하이테크기술이 만들어내는 폐해로 여기저기 멍이 드는 일이 비일비재할 겁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과학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과학기술은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봐야 하는 것이지요.

 ―최근 위험통제학회를 발족, 초대 회장에 취임하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겠군요.

 ▲위험통제학회는 사회 전반의 잠재적 위험을 연구해 실무에 적용함으로써 실제로 문제가 터졌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생명복제 기술의 양면성 등이 연구대상의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국가 재정이나 과학기술 및 산업시설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문학과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등 학제간의 벽은 물론 산학연간의 차이를 넘어서 모두 힘을 합쳐 연구하고 정보를 공유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그동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수혜에 들떠 한동안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인간복제·유전자조작 등 과학기술의 취약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위험통제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백악관에 위험통제국이 대통령 직속으로 있고 대학에선 위험통제를 학문의 한 분야로 가르치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이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근무하는 많은 연구원들이 아이덴티티를 확보하지 못해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바람직한 과학기술 정책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연구기관의 관료화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부흥을 위해 정부주도로 만든 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이같은 정책은 과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따라서 역할분담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초기술연구는 인재양성이 가능한 대학에 맡기고 실용기술연구는 기업과 대학이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이제 출연연구기관은 공공분야 즉 예를 들면 환경이나 원자력, 국방 등 새시대에 걸맞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산업의 전면에는 대학과 기업과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이상적인 모델로 2000년 봄 총장으로 취임하신 호서대를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실용기술 연구를 위해 자체적으로 벤처투자 및 벤처인큐베이팅에 나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호서대는 충남 아산으로 캠퍼스를 옮기면서 이용할 수 있는 부지만 100만여평에 달합니다. 사립학교에서 이만한 캠퍼스를 운영한다는 것은 각종 연구지원이 얼마만한 규모로 이뤄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같은 좋은 연구환경에 하이테크 기업체와의 협력을 위한 기반도 마련돼 있습니다. 천안과 아산지역에는 삼성반도체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물론 4000여곳의 중소기업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대학 연구인력과의 협력이 손쉽지요. 대전지역의 대덕밸리처럼 앞으로 이 지역에도 6만여평 규모의 장영실밸리가 구성될 겁니다.

 ―대학 얘기가 나왔으니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가 큽니다. 특히 총장께서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서울과 지방간 격차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실제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로컬라이제이션이란 말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을 합성한 말입니다. 이제 인터넷의 등장으로 대학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느냐는 결정적인 한계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이버스페이스상의 거리는 서울대나 지방대나 같은 겁니다. 사실 외국의 경우 수도나 도심지에 대학이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일수록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지요. 따라서 관건은 특성화입니다. 호서대의 경우 디지털 문화콘텐츠 관련분야로 특성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만큼의 서울의 어느 대학 못지 않게 훌륭한 연구실적과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렇게 대학을 특성화하다보면 지방이냐 서울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는 지방대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학생들 스스로 터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IT분야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IT기술만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드러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미래기술의 발전방향과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대학들이 언제부턴가 학과제를 떠나 학부제로 돌아서지 않았습니까.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학제간 연구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만 알아서는 사업도 학문도 정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네트워킹이 중요해진 거지요. 산학연관이 뭉쳐 서로 원활히 의견을 교환해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만 발전된 미래 비전과 가치있는 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과학기술은 통합과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경계가 모호해질 겁니다. 이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혼돈에 빠질 것입니다. 과학기술연구도 정책수립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간의 팀워크가 생명입니다.

 ―지난 한해 남북간 과학기술협력이 빅이슈로 꾸준히 다뤄졌습니다. 올해도 남북간 과학기술협력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남북한간에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협력은 꾸준히 이뤄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도 민감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요. 바로 북한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신임을 얻고 투자를 유치하고 남북간에 서로 신뢰를 회복하려면 원자력과 생화학무기 등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남한에서 제공하는 IT기술이 어떤 식으로 전용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기술계에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나 바람을 말씀해주십시오.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지나치게 자기 분야에만 매몰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자기가 관심있는 연구활동에만 천착하면 다 된다는 생각이지요. 과학기술자들의 성향이 기본적으로 몰입지향적이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과학기술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지대해질텐데 “난 사회나 정치나 행정은 모른다”고 고개를 돌린다면 너무 무책임하지요. 중국의 경우 지도자들의 40%가 테크노크라트로 채워져 있습니다. 과학에 대해 모르면 지도자로 나설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도 과학자들이 이 사회의 리더이자 지도층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책임있는 자리에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사익이 아닌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과학정책의 수립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과학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약력

 △1939년생 △1955년 경기고 1년 수료 △1959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63년 미시간주립대 이학박사 △1966∼67년 MIT대 핵공학과 연구원 △1967∼71년 뉴욕공과대 전기물리과 교수 △1971∼7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원장 및 교수 △1975∼82년 뉴욕공과대 핵공학과 교수 △1982∼86년 한국전력기술 사장 △1988∼90년 및 99년∼2000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90년 및 94∼96년 과학기술처 장관 △87∼2000년 아주대 석좌교수 △현재 호서대 총장 △저서:미래를 개척하는 길(1990), 21세기로 가는 길(1993),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2001), Energy as a Driving Force of Economic Development-Energy Supply and Use in Developing Countries(1988) 등 다수

 <정리=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