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39)공존과 통합 그리고 조율(중)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공간의 3차원 세계에서도 그 단순함을 넘어선 우연과 필연의 복잡한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음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객체는 무수히 많은 우연과 필연을 통해 또다른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고, 하나씩 하나씩 포개져 인류의 역사를 만든다. 인류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역사이며, 인터넷도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

 1969년 9월 2일,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컴퓨터 과학부 실험실. 클라인로크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과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 컴퓨터회사 관계자 등 수십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발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스탠퍼드 연구소의 컴퓨터에 ‘접속(log in)’이란 메시지를 보내려다 ‘l, o’ 두 글자를 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도 만족하고 환호했다. 전화로 글자를 받았는지 확인해야 했던, 사진 한장 남기지 않은 초라한 테스트였지만, ‘인터넷(아파넷)’의 탄생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많은 발명처럼 인터넷 역시 과학자의 우연한 발견과 미 정부의 안보전략이 뒤얽혀 전혀 뜻밖의 결과를 낳은 경우였다. 1957년 인류의 우주시대를 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놀란 미 정부는 핵 공격에도 군사통신망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전화네트워크처럼 한 지역이 파괴되면 여기에 물린 수천 개의 접속이 무력화되는 중앙 집중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즈음 링컨 연구소에 있던 래리 로버트는 고등연구 계획국에 새로운 통신망 연구를 제안했다. 이미 패킷형태의 통신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클라인로크와 친구인 로버트는 개발 계획서를 함께 제출했고, 1969년 UCLA와 스탠퍼드 연구소 사이에 첫 통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초라하지만 복잡한 인터넷의 효시, 아파넷의 탄생이었다. 우연과 필연의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진 새로운 존재는 통합의 힘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장을 던져주고 있고, 문명과 문명간 공존을 위한 대안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의 특징은 통합이다. 먼저 정보통신 매체간 통합. 기술적으로 유선통신망과 무선통신망을 손쉽게 통합시킬 수 있다. PCS, CDMA, 위성통신, 전력선통신, CATV 등 모든 통신매체를 통합한다. VoIP 기술을 통해 음성과 데이터의 통합뿐만이 아니라 스위칭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음성을 데이터로 전환하고, 데이터를 음성으로 전환하여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 수 있다. 따라서 동영상 등 모든 콘텐츠를 통합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양방으로의 통합이다. 향후 통신기술의 발전요소는 어떻게 인터넷과 효율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또한 인터넷은 지역과 공간을 통합한다. 시간까지도 통합이 가능하고, 소유의 개념도 통합한다. 사이버 상에서는 선과 악의 개념도 통합한다. 비즈니스에 활용되었을 때 인터넷은 통합을 통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001년 2월 첫째 주에 발행된 주간 경제지 ‘한경비즈니스’에는 ‘틴 타이쿤’이 뜬다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10대들의 비즈니스에 관련된 특집으로, 10대들의 창업을 디지털 시대와 인터넷이 주축이 되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들 대부분이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상거래에 있어서, 선 구매자에게 완성된 상품제공과 함께 일반 수요자에 대한 판매를 통해 확보된 수익의 일정부분을 이익으로 분배”하는 인터넷 비즈니스가 관심을 끌었다.

 즉, 제작중이거나 기획중인 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선 구매(예약구매)한 후 상품제작이 완료되면 상품을 제공받고, 일반인들에게 판매하여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일정부분을 선 구매자가 이익으로 분배받는 아이템이다. 이 경우 상품 제작자는 일정부분의 제작경비를 선 판매한 대금으로 확보할 수 있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며, 선 구매자는 기본적인 구매물품을 확보할 수 있어 투자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운영회사는 일정부분의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는, 참여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 비즈니스 모델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기존의 한계를 무너뜨린 통합적인 요소 때문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통합하고, 소비자와 투자자를 통합한다. 제작과 투자에 대한 위험성도 통합한다. 상품제작을 위한 투자유치는 곧 판매와 통합된다. 장르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온라인, 오프라인이 통합된다. 사업개발 주체가 10대 소년으로, 창업자의 나이 한계를 통합한다. 또한 특허권을 활용, 전세계를 통합하는 독점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사례 일뿐, 이미 하나의 아이템으로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모델들이 수없이 개발되고 사업화되고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개발을 상용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보편적으로 마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사이버 주식거래는 총 거래규모의 80%를 넘어섰다. 다른 나라에서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거래량이다. 인터넷홈쇼핑도 무서운 속도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의 세계 경제질서, 그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인터넷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환경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2000년 2월 노자와 21세기라는 TV 강의가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학문을 통합하여 전달하는 능력을 발휘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TV 강의였다. 김용옥 교수는 강의 마지막날 장문의 글을 낭송했다. 그 중에 하나, 우리 민족의 문화적 통합적 능력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다.

 “모든 인류역사의 만남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만남은 20세기를 통하여 동양의 모든 전통과 서양의 모든 전통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의 본격적인 구조적 해후를 시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의 장이 초라하게 보이는 우리 이 조선반도에서 처럼 격렬하게 이루어진 유례가 없습니다. 20세기 조선의 역사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가꾸어온 모든 문명과 문화의 양태들이 격렬한 만남을 시도한 최전방의 격전지였습니다.”

 여기서 김용옥 교수가 말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문화와 문명의 통합능력이다. 독자적이며 주체적으로 흡수한 우리의 기독교 수용 과정은 이 지구상 가톨릭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 자외적(自外的)으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내적(自內的)으로 기독교를 흡수한 유일한 선례가 되는 것처럼, 모든 문화와 문명이 이 작은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흡수되고 통합되어 각 객체별로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민족의 특성이 인터넷 사업의 특징인 통합에 잘 적응되어 있다는 말로 바꾸어 인식할 수 있다.

 인터넷의 특징은 통합이다. 통합되지 않으면 인터넷이 아니다. 그 통합은 곧 힘이다. 그 통합을 통한 양적 확산은 질적 비약을 낳게된다. 시설과 활용성, 우리의 민족적 정서를 적극 활용한다면 비약을 통한 가공할 만한 힘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인터넷이 개발될 때의 씨줄과 날줄이 엮어지는 상황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터넷 개발당시 인터넷의 미래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이 조심스럽지만, 우연과 필연이 엮어져 만들어지는 새로운 우리의 세상을 느끼게 된다. 만일 5000년 역사전개 과정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일지라도 이 기회는 정말 소중한 기회다.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새해, 둥둥둥 북소리 크게 울리며 말고삐를 당기자.

 앞서 달려나가는 사람에게 갈채와 환호를 보내자.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