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체인식기술 이야기>(1)말로 거는 이동전화기

 정보기술(IT)의 또 다른 정점은 인식기술입니다. 지문은 물론 목소리·얼굴·홍채 심지어 땀샘 구조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각종 보안시스템에 응용되는 인식기술은 이제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입니다. 워낙 다양한 IT 및 생명기술(BT)이 동원되는 생체인식 분야는 그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고 개발이나 상용화 과정의 에피소드도 끊이질 않습니다. 전자신문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재미있는 생체인식기술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연재, 독자 여러분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드리며 과학과 상상의 세계로 안내할 것입니다. 편집자

 

 ‘본부! 본부!’, ‘우리∼집’…. 한때 유행했던 이동전화단말기 광고 카피다. 손도 안대고 말로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멋진 아이디어. 덕택에 5년 전 광고모델 안성기는 추격전의 와중에도 본부와 통화할 수 있었다.

 음성인식 이동전화기는 한달에 수십만개가 팔려나가는 대성공을 거뒀다. 지하철에서 웬 남자가 ‘OO놈’하고 전화를 걸더니 직장상사와 통화를 하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습관을 바꾸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때의 열광으로 끝났을 뿐 말로 전화를 거는 ‘신기(神技)’를 구사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인식률이 떨어졌기 때문. ‘잘 안되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졌다. 광고문구가 유행한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한몸에 끈 이후라 영향은 더 컸다. 방송 3사가 중계하는 권투시합에서 온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1회전 KO패를 당한 격이다.

 인식률이 떨어진 것은 이동전화기 CPU에 담기에는 프로그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음성인식기술은 크게 화자종속방식과 화자독립방식으로 나뉜다. 화자종속은 단순히 비슷한 음성을 찾아내는 방식. 따라서 언어에 상관없이 사용되나 목소리가 바뀌면 인식을 못한다. 감기라도 걸리면 먹통이 된다. 화자독립은 목소리에 관계없이 음절을 인식한다.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언어장벽이 있다. 당시 쓰인 것은 이스라엘 ART의 화자종속 프로그램이었다. 상대적으로 계산량이 많은 화자독립 프로그램을 이동전화기에 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탑재한 화자종속 프로그램도 크기를 작게 하기 위해 계산량을 줄여 넣었다는 것이 당시 연구원으로 참여한 HCI랩 권철중 연구소장의 전언이다.

 그는 그럼에도 “지금은 CPU의 성능이 10배가량 좋아진데다 프로그램의 용량을 많이 줄여서 인식률이 높아졌다. 숫자음 다이얼링 기능을 제외하고 음성으로 전화를 거는 기능은 거의 완벽하다. 올 하반기가 되면 음성인식 전화기가 잇따라 출시돼 새로운 붐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음성인식기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기술수준도 상용화 단계에 거의 와있다는 평가다. 취재를 위해 전화한 기자를 취재원과 연결시켜준 것은 음성인식기계였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음성인식업계에서 ‘본부! 본부!’라는 말은 쓰라린 추억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