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1)추억을 나누는 로봇

◆ 혹시 로보사피엔스란 말을 들어보셨읍니까 ?

지혜로운 인간을 뜻하는「호모사피엔스」과「로봇」의 합성어로 인간처럼 지능적인 미래의 로봇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전자신문은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기술의 미래와 사회적 파장을 분야별로 짚어보는 ‘로보사피엔스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연재, 독자 여러분을 닥쳐올 로봇세상의 한가운데로 안내할 것입니다. 편집자 ◆



한 노부부가 오래전 앨범을 넘기며 얘기를 나눈다.

 "이땐 참 좋았지 여보" "고생도 심했지만 그 시절이 참 그립구먼"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사람들은 자신과 공유하는 추억(기억)이 많은 상대에 대해 각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란 인간관계도 따지고 보면 과거 삶의 기억 중에서 반복적인 패턴을 지닌 인물정보를 유형별로 분류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타인과 공유할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이란 인간이 사회적인 삶을 지속하는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자 지능을 갖춘 로봇이 사람과 공존하기 위해 꼭 도달해야할 기술적 지향점이기도 하다.로봇도 과거의 기록을 저장할 수는 있지만 아직 사람의 `기억`처럼 광범위한 일상의 정보와 지식을 쌓아두진 못한다. 급진적인 로봇과학자들은 인간과 닮은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 두뇌의 정보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과학자 한스 모라벡은 아예 뇌의 내용물 자체를 복사해서 로봇에게 이식하면 시공을 초월해 영생불멸할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펼친다. 일부에선 수억년에 걸친 진화로 완성된 생화학적 신경체계(두뇌)와 개발된지 50여년에 불과한 컴퓨터를 대등하게 비교하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지만 과학자들은 코웃음치며 두고 보라고 장담한다.

 결국 오는 2010년쯤엔 사람들과 `일상적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들 지능형 로봇은 주인에게 지시받은 명령 외에도 주변의 상황정보를 나름대로 인지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갖출 전망이다. 주인이 창밖을 보며 “올겨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라고 이야기할 때 과거 날씨기록을 검색해 “지난 겨울도 눈이 많이 내렸다.”라고 맞장구치는 로봇이 현실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일상적인 기억」을 가진 로봇의 출현은 로봇의 진화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는 로봇에 대해 인간이 각별한 친밀감을 느끼고 단순한 기계 이상의 존재로 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걸음만 더 나가면 주인의 독특한 어투와 표정, 몸짓까지 기억한 뒤 그대로 흉내내는 사이비(似而非) 휴먼로봇의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한 가장이 밤늦게 집에 들어선다. 그는 얼마전 아내를 사별한 처지다. 대문이 열리자 정겨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정용 로봇이 반갑게 걸어나와 자신의 양복을 받아주는 것이다. 진짜 아내는 아니지만 로봇이란 이유로 친숙한 서비스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로봇이 허드렛일을 하는 자동기계에서 벗어나 인간과 추억을 함께 나누고 제한적이나마 사회활동을 수행하는 존재로 나설 시기는 의외로 멀지 않다.인간의 고유한 정신기능으로 간주해온 `기억력`이 로봇에 이식되는 순간 우리들 삶의 방식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긍정적인 발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