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지폐와 동전은 큰 탈 없이 1월 1일부터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거래가 시작된 첫 날인 1월 2일 유로화는 달러, 파운드, 엔화와 대비해 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강세는 1월 3일 ‘유로 부족 공포’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병참 훈련’으로 일컬어진 유로 화폐의 실질적인 도입은 경제통합을 향해 사실상 큰 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유럽이 장기침체를 겪게 될 경우, 유로화는 비로소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금년 내 또는 수년 내에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유로화와 이를 밑받침하는 제도는 개별 경제 주권 상황으로의 회귀를 강요하는 각국의 정치 세력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불가피하다. 유럽의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에 선행, 진행되는 한 유로화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수면 바로 아래 잠복해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유로화 통용 지역 경제의 발목을 잡게 할 것이며 미 달러화가 국제 거래와 안전한 금융 거래를 위한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게 만들 것이다. 유로화는 3년 전 가상통화로 도입된 이래 국제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했으며 1유로의 가치는 지난 99년 처음 거래 당시 1.7147달러에서 2001년 말에는 0.90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유로의 약세는 새로이 창설된 유럽중앙은행(ECB)과 ECB의 결정이 유로존의 이질적인 국가 경제들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지 불확실하다는데 부분적으로 그 이유가 있다.
유로화의 가장 어려운 테스트는 경기 후퇴가 유로지역의 일부 또는 전체를 휩쓸 때 나타날 것이다. 유럽은 단일국가가 가지는 경제적 동조화가 결여되어 있다. 그 결과 경기 후퇴는 각각의 국가들에 차별적이고 때때로 갈등을 빚는 대응을 요구하는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일경제에 이로운 것이 그리스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ECB는 그러한 차이를 메우고 신호의 복잡한 배열을 고려하여 적절한 대응을 적기에 결정해야 한다. ECB는 그러한 점에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임무는 유럽연합(EU)가 확대될 경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ECB의 임무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된 명령권으로 더 쉬워진다. 그러나 작년과 같이 이러한 사전 제약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통화정책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EU의 2% 상한선에 근접하지 않는 한 금리하향 조정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며 특정 국가에서만 성장을 촉진해야 할 경우 특히 그럴 것이다.
이것은 유럽 정치인들을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뜨릴 것이다. ECB의 기술 관료와 달리 정치가들은 유권자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며 이 유권자 가운데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먼 국가의 동료 유럽인을 위해 자신의 번영을 기꺼이 희생할 사람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통화의 장기적 가치는 경제적 기초와 발행 국가의 정치적 안정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안정되고 번영을 누리는 미국은 강한 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일본의 엔화는 사상 최저의 약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화는 유로지역의 경제 규모와 경제력에 힘입어 달러화와 엔화의 중간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나 주권 국가들의 연합이 가지는 본질인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제한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로는 달러에 맞서 중요한 입지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며 세계적으로 선호되는 통화로서의 자리 매김은 달러화에 훨씬 못미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최근 유로화의 승리는 대체로 기술적인 부분일 뿐이며 더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