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사장인 성기수 박사는 오랫동안 컴퓨터업계의 대부 혹은 컴퓨터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고희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화두는 항상 20대 청년의 그것이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 또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그는 정보기술(IT)업계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 1호로 기억된다. 백발이 성성한 그를 어렵게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말띠해의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금기현 IT산업부장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주로 용인에 있는 집에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1주일에 2∼3번쯤은 서울에 나와 지인들을 만나는 일을 즐기고 있지요. 가끔 정책대안 사이트인 화이낫(http://www.whynot.or.kr)에 들어가 법인세·교육세·정치개혁 등의 토픽을 놓고 토론하기도 합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사장이란 직함이 있기는 하지만 비상근직이라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그동안 컴퓨터분야에서 일하면서 국내 IT산업에 대해 특별한 식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국내 업계가 희망이 있는 것인가요.
▲현재 우위에 있는 부문이 있기는 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뒤져있는 부문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선 부문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이 분야에서 묵묵히 일해온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디지털강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선 사회적인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이 선결돼야 할 것입니다. 우선 기업하기 위한 환경조성 차원에서 교육·정치·경제·법률적인 부문의 여건이 마련돼야 하고 조세나 환경문제 등도 개선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주변 환경은 최악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이나 D램, 자동차 부문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지요. 만약 10년전에 이같은 악조건을 극복했다면 일등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겠지요. 굳이 얘기하자면 우선 교육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현재의 획일적이고도 통제일변도인 교육정책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인간성과 창의력이 파괴돼 가고 있습니다. 다양성과 창의력, 선의의 경쟁풍토가 조성되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른바 미국식 교육으로 일컫는 방목식, 더 나아가 국립공원식 교육제도로 과감히 바꿔나가야 합니다.
물론 이같은 대개혁은 교육부를 없앨 정도의 획기적인 정부조직 구조조정이 단행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 국력의 원천이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교육, 특히 규제받지 않는 교육에 있다고 볼 때 세계적인 벤처기업들은 모두 명문대학 주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할 것입니다.
―교육환경의 개혁이 기초가 되기는 하겠지만 교육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얘기지요. 우선 조세제도문제부터 얘기해볼까요. 조세제도야말로 새로운 기업환경을 제공하는 키(key)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세제도야말로 사회부패구조를 줄일 수 있으며 디지털혁명을 촉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입니다.
특히 과거 시대의 유물인 기존의 복잡하고 불공평한 세금제도를 철폐하고 ‘에너지소비세’라는 간접세 위주로 바꾸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겠지요. 세원을 에너지 수입시점에서 확보한다면 세금 관련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이 수천만장의 세금고지서와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와 주택에 붙은 과소비성 거품도 사라질 것입니다. 전국토가 면세지역이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금융센터·쇼핑천국·관광대국의 길이 열리고 에너지 수입도 격감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은 법인세를 30%에서 10%로 내린 후 세계적인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영국으로 몰려들었지요. 결국은 법인세·이자세·배당세 등 모든 세금을 없애는 조세정책의 대혁신이 필요합니다.
―이제 화제를 바꿔 향후 컴퓨터 HW·SW 기술발전 전망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인터넷 세상으로 더욱 진화되리라는 생각입니다. 인터넷 혁명이 앞으로 더 많은 사회적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는 얘기지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발전의 급진전으로 모든 기기들을 말 한마디로 작동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홍채나 지문·혈관인식 등을 통해 ID체크가 가능하나 앞으로는 모든 것을 말로 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이같은 미래 세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구시대의 법률을 신시대에 맞게 고치는 노력도 필요하지요. 전자정부 구축도 이런 노력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시는지요.
▲확실하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만들어 놓았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새 천년은 몰라도 적어도 앞으로 100년 동안은 인터넷을 앞세운 미국 주도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인터넷 언어인 영어를 무기로 한 미국의 시대가 상당기간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마치 2000년전 로마와 기독교 문명이 인류 역사에 라틴어를 통해 큰 영향을 준 것처럼, 그리고 3000년전 중국과 불교가 동남아시아에 수천년간 영향을 준 것처럼 21세기에는 인터넷과 영어를 앞세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펼쳐질 것으로 봅니다.
―얼마전에는 슈퍼컴퓨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슈퍼컴퓨터의 파워가 곧 국력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풀어 얘기하면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과 국력이 비례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이제는 과학자도 혼자 모든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디어를 내 이를 형상화, 이론화하는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슈퍼컴퓨터가 처리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모든 기초과학에서부터 응용과학에 이르기까지 슈퍼컴퓨터가 관여하지 않는 작업이 없습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슈퍼컴퓨터를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인식하고 국가차원에서 슈퍼컴을 도입하고 관련센터를 건립하는 등 국가가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슈퍼컴센터의 슈퍼컴 도입은 연방예산으로 책정, 관리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최근들어 정부가 슈퍼컴퓨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벤처기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한때 벤처기업은 한국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가요.
▲여전히 벤처기업은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단지 벤처기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최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벤처기업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벤처기업 연구소엔 밤낮없이 연구에 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벤처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20개 벤처기업이 창업되면 19개 기업은 망하고 겨우 1개 정도의 기업만이 성공합니다. 이를테면 벤처캐피털이 20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기업은 평균적으로 1개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모든 벤처기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게 문제라는 거지요.
―끝으로 올해 국내 IT경기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국내 IT시장에 대해 항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법제도·환경 등 제반 여건이 최악이고 세계적인 경기가 부진했는데도 불구하고 통신·반도체·가전·자동차 등에서 비교적 선전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연초부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습니다. 중국의 경기가 여전히 성장세인데다 미국도 회복세를 타고 있지요. 따라서 여러가지 장단기적 변수가 있기는 하겠지만 국내 IT경기도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리=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성기수 박사 약력
△1934 경북 성주 출생 △1958년 서울대 공대 졸업 △1963년 미 하버드대 졸업 △1958년 공사사관 △1965년 경제개발협 조사역 △1967년 과기연 전자계산실장 △1973년 동 전자계산부장 겸 전자계산개발실장 △1977년 동 전산개발센터담당부장 △1981년 동 시스템공학센터소장 △1983년 전문전산교육장 개설 △1989년 과기연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장 △1993년 동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장, 동명정보대학 총장 △2000년 세계사이버기원 대표이사 △2001년∼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사장